중국출장 때 조심해야 할 것들

입력
2021.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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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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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의 일이다. 학술회의차 한국에서 온 방문단의 한 인사와 조찬 모임이 있어 그 팀이 묵고 있는 호텔 로비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그가 내려올 곳으로 예상되는 엘리베이터 앞에 미리 가 서서 기다렸다. 그 방문단엔 막 장관으로 지명된 학자를 포함해 전직 정부 인사들과 정부에 자문 역할을 하는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면면이 고위급인 셈이다.

곧 한국 측 인사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섬주섬 식당으로 향했다. 그때 뜻하지 않은 광경을 목격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 옆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한 중국인 남성이 입을 자기 손목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들이 내려온다."

난 주위에 다른 사람이 있는 줄 알고 둘러보았지만 없었다. 곧 또 한 무리의 한국 인사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고 이 건장한 중국인은 다시 입을 손목에 대고 나지막이 말을 했다. "세 명." 아마도 손목에 무엇인가 통신기구를 차고 있는 듯했다.

해가 막 뜬 이른 시각에 베이징 5성급 호텔 로비에서 '자기 손목과 대화를 하는 이 중국인'의 모습은 나의 시선을 당겼다. 눈치가 없다는 말을 듣는 나도 그땐 뭔가 '촉'이 왔다. 제임스 본드 첩보영화에서도 종종 나오지 않던가.

조찬을 마칠 때쯤 나는 한국 측 인사에게 아까 목격했던 일을 말했다. "민감한 자료가 들어있는 노트북은 식사할 때도 들고 다니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가 보인 반응은 내가 예상치 않았던 것이었다. "아니 학자가 무슨 비밀이 있다고. 당신이 너무 민감한 것 아닌가?" 나만 뻘쭘해졌고 낭패감이 들었다.

후에 한국에서 일하면서 유사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한번은 학회 모임 후 회식을 하는데 좌장격의 원로 교수가 청와대에 있는 '대학 후배' 이름을 거론하며 자세한 외교 뒷담화를 늘어놓았다. 그 자리에는 한국어가 유창한 중국인 박사과정 학생이 앉아있었다. 눈치가 있는 다른 한 교수가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그 인사는 "민감한 얘기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했다.

미국 대학은 한국보다 더 학문적으로 자유롭지만 보안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학술 자료라 할지라도 더 철저하고 근년 들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몇 해 전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APARC) 펠로로 선정되어 캠퍼스에 도착하니 마침 새 학기 오리엔테이션 기간이었다. 캠퍼스에 행사용 간이 천막과 부스가 여러개 세워져 있었다. 그중 한 곳에 '노트북 무료 대여'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어 가보니 해외 학술 출장을 갈 때 사용할 노트북을 학교에서 무료로 대여해준다는 것이었다.

'고위험군 국가'(High Risk Countries)로 분류된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을 방문할 경우 개인 컴퓨터 휴대를 권장하지 않으며, 학교가 무료로 대여해주는 노트북을 가지고 가기를 '강력 추천'(strongly recommend)한다고 했다. 출장용 노트북엔 자료를 암호화하는 장치가 되어 있고, 반납 후 학교에서 다시 '공장 초기화'를 한단다. 출장 국가에서 이메일을 사용했으면 돌아와서 이메일 암호도 바꾸라고 했다. 특히 중국은 빨간색으로 '특별 케이스'(special situation)로 표시되어 있었다. 중국 출장 시 보안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거기엔 또 노트북 컴퓨터는 항시 지참하고 다니고 '호텔 안에 두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센터 방문학자·前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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