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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오늘도 덕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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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순이'
당시 우리를 부르는 말은 그랬다. 좋아하는 그룹의 공개방송을 따라다니거나, 사인회의 긴 줄에 밤새 서 있거나, 콘서트 앞자리 티켓을 겨우 구해 미친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우리를 세계는 그렇게 불렀다. 빠순이, 빠돌이. 너네 부모는 아니. 정신머리 없는 애들.
그런 혐오 표현은 이제 꽤 사라지고,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강렬히 좋아한다는 말이 요즘은 '덕질' 혹은 '팬덤 문화'로 바뀌었다. 팬덤 산업 규모는 약 7조 원, K-pop 열풍으로 Fan(팬)과 Industry(인더스트리=산업)의 합성어인 '팬더스트리'라는 말도 생겼다. MZ세대에게 덕질은 일상이다. 연예인, 인강 강사, 인플루언서,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도 덕질한다. 덕질로 투자도 하고, 굿즈도 만든다.
덕통사고(덕질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교통사고처럼 표현한 말)를 당한 이는 입덕(덕질을 시작)한 후 덕질용 계정을 만들고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를 위해 스밍(스트리밍)을 돌리고 오프(오프라인 행사)를 뛰고 포카(포토카드)를 모은다. 어른이 되어서도 빠순이 기질을 못 버렸냐며 누군가는 핀잔을 주지만, '어른스럽게 심드렁한 것'보다는 '아이처럼 쉽게 마음을 내어주는 게' 더 근사하지 않은가.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 힘들어진다. 되돌아오지 않는 마음이 서러워서나, 우리가 같이 놀던 놀이터에 내 마음만 덩그러니 남는 게 슬퍼서는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예고도 없이 여위는 마음이 허무해서, 함부로 식상해져서일 때가 잦다. 나이가 들고 세상 별일 다 겪으면서 '그게 뭐 대수라고'라며 모든 일에 덤덤해지는 게 좋기만 한 일인지 모르겠다.
주식과 부동산, 가상화폐, 투자의 세계에서, 최애를 덕질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부동산으로 한몫 잡은 집주인 말대로 정신머리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젊을 때 부지런히 일하고, 모으고, 벌고, 투자해서, 나중에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거나 정부 돈을 타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인물이 되는 게 한 인간이라면 해야 할 마땅한 도리인지도 모른다. 뭘 좋아하느라고 스밍을 돌리고, 포카를 모으는 일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
그렇지만 가끔 그런 두려움이 생긴다. 언젠가, 안정이 되면, 이 모든 게 괜찮아지고 나면, 지갑을 두둑이 하고 나면, 나는 그다지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즐기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애호하는 것이 없는 내 삶은 흑백영화처럼 색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좋아하는 것이 점점 줄어들면 나중에는 아예 좋아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삶이라는 게 정말 괜찮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은 결의 차이를 손으로 더듬어 세밀히 살필 만큼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느 정도 변화한다고 믿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낯빛부터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을 여기저기 헤프게 두고 다니는 것은 그만큼 삶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만든다. 나는 젊을 때부터 고요한 호수 같은 마음을 갖고 싶지는 않기에, 좋아하는 일에 함부로 마음을 내어주며 살고 싶다.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또박또박 힘을 주어 좋아한다고 말하고 살살 돌려가며, 가끔은 주물럭거리며 어떤 점이 어떻게 좋은지 날을 세워 관찰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에서만큼은 신중해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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