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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북미·유럽 일색에서 탈피한 노벨문학상

입력
2021.10.07 22:48
수정
2021.10.07 23:1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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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잔지바르 출신 압둘라자크 구르나?
아프리카 흑인 작가로는 35년 만의 수상

탄자니아 출신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7일 스웨덴 한림원에 구르나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스톡홀름=AFP 연합뉴스

탄자니아 출신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7일 스웨덴 한림원에 구르나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스톡홀름=AFP 연합뉴스

최근 9년간 줄곧 북미와 유럽 문인을 선택해 온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는 제3세계 출신 작가의 손을 들어줬다. 탄자니아 출신 압둘라자크 구르나(72)의 수상으로 200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존 맥스웰 쿠체 이후 근 20년 만에 아프리카 태생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됐다. 흑인 아프리카 작가로는 1986년 나이지리아 출신 월레 소잉카 이후 35년 만이며, 탄자니아 태생 작가로는 처음이다.

세계 최고의 도박사들은 올해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맞히지 못했다. 구르나는 영국 베팅사이트 나이서오즈가 점찍은 유력 수상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림원을 향한 인종·성별 등 다양성 부족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아시아·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주로 언급되는 이름은 케냐 소설가 응구기 와 시옹오였다.

노벨문학상은 1901년부터 지난해까지 117명의 수상자 중 95명이 유럽 또는 북미 출신이었다. 101명의 남성이 수상한 반면 여성 수상자는 16명에 그쳤다.

한림원은 2018년 내부 미투 문제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 후 지리적·성별적 다양성을 고려할 것을 약속했지만 2019년에 또다시 2명의 유럽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와 페터 한트케의 손을 잡았다. 지난해에는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을 선택해 "부분적 쇄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스웨덴 최대 일간지 다겐스 뉘헤테르는 지난 주말 "노벨문학상은 깨어날 때가 됐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10대 시절 난민으로 영국으로 이주한 구르나의 인생 여정도 한림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한림원의 이번 결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심화된 유럽의 오랜 난민 위기 중에 나왔다"고 촌평했다.

국내 전문가들의 평가도 비슷하다. 왕은철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이슬람과 서구의 긴장 관계가 고조되면서 한림원이 구르나에 더 주목한 것"이라며 "2001년 미국 뉴욕 9·11 테러 당시에도 인도 이민자 3세 출신으로 영국령 트리니다드섬에서 출생한 비디아다르 수라지프라사드 나이폴이 받았다"고 풀이했다.

다만 구르나의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이 진정한 '유럽 중심주의' 탈피라기보다는 한림원의 정치적 선택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이석호 아프리카문화연구소 소장은 "유럽은 아프리카 식민주의의 공격 대상이지만 잔지바르는 지배의 역사가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 본토와 맞물려 직설적으로 유럽만 비판하지 않는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수상은 정치적이고 보수적으로 읽힌다"고 꼬집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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