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하사 전역 취소 판결에… "소수자 인권에 고무적 판결"

입력
2021.10.0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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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성전환이 심신장애? 여성 기준으로 봤어야"
유족에 미지급 급여·순직보상금 지급 가능성 열려
법조계 "법원이 성소수자 차별 구조적 해결 모색"

국내 최초로 복무 중 성전환수술 이후 강제 전역 판정을 받은 육군 고(故) 변희수 전 하사가 지난해 1월 2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힌 뒤 눈물을 흘리며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최초로 복무 중 성전환수술 이후 강제 전역 판정을 받은 육군 고(故) 변희수 전 하사가 지난해 1월 2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힌 뒤 눈물을 흘리며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전환수술(성확정수술)을 한 고(故) 변희수 전 하사에 대해 심신장애를 이유로 전역하게 한 육군의 처분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시민사회와 법조계에선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한 전향적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전지법 행정2부(부장 오영표)는 7일 변 전 하사가 생전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전역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성전환수술을 한 변 전 하사의 상태를 남성 기준으로 판단해 "고의로 심신장애를 초래했다"고 본 육군의 전역 심사가 부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변 전 하사는 2019년 성전환수술을 받은 뒤 계속 군에서 복무하길 희망했지만 군은 강제 전역 처분을 내렸다. 그는 법원에 이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올해 4월 첫 변론을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은 이후 변 전 하사의 원고 자격을 승계해 소송을 진행해왔다.

"여성 기준으로 심신장애 판단했어야"

대전지법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전지법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재판부는 군의 심신장애 판단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성전환수술 직후 법원에 성별정정 신청을 하고 이를 군에 보고한 만큼, 군 인사법상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할 때 당연히 여성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군은 음경 손실 등을 이유로 변 전 하사에게 '장애'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그를 여성으로 본다면 이런 사안은 장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변 전 하사가 숨진 상황에 유족이 소송의 원고 자격을 승계할 수 있느냐는 쟁점에도 재판부는 "예외적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군인의 지위는 상속 대상이 아니지만, 전역 처분이 취소될 경우 변 전 하사의 의무복무 기간 만료일까지의 급여청구권이 발생하고 이는 유족의 상속 대상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앞으로 같은 문제로 위법한 처분이 반복될 위험성을 고려하면 국민 권리 구제 차원에서도 이번 소송을 통해 위법성 확인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다만 "남군으로 입대했다가 성전환한 여성의 현역 복무 적합 여부는 궁극적으로 군 특수성, 병력 운용, 국방 사회에 미치는 영향, 성소수자 기본 인권, 국민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국가 차원에서 입법적·정책적으로 최종 결정할 문제"라고 여지를 남겼다.

이번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변 전 하사는 전역 처분 시점부터 사망 전까지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나아가 그의 극단적 선택의 귀책 사유가 부대에 있다고 판명될 경우 복직과 동시에 순직 처리될 수 있다. 순직은 복무 중 사망을 뜻하는 만큼 유족이 소송을 제기하면 군이 보상심의위원회를 열어 사망 보상금을 지급할 수도 있다. 다만 육군은 이날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항소를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이 소수자 권리 적극 구제" 평가

고(故) 변희수 전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7일 오전 대전시 서구 대전지법 앞에서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변희수 전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7일 오전 대전시 서구 대전지법 앞에서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을 소수자 인권 향상에 고무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재판부가 성전환자에 대한 위법행위가 되풀이될 소지가 있는 만큼 구조적으로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판시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논평을 통해 "이번 사건을 먼 미래의 제도 개선이나 국민적 합의를 통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현행 법과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자리매김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군의 강제 전역 조치는 변 전 하사가 성별정정 허가를 받기 전에 이뤄졌는데, 재판부는 성전환수술을 했다면 법적 허가 전이라도 여성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성별 기준에 있어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이사는 "군은 판결의 엄중한 의미를 받아들여 항소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시민사회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군인권센터 등 32개 단체로 이뤄진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판결 직후 대전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의 결정은 부당한 차별을 바로잡은 사법의 쾌거이자, 지연된 정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 뼈아픈 교훈"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소수자 혐오와 차별, 배제를 군에서 배격하기 위한 국방부의 책임있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면서 서욱 장관의 사과를 요구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 자리에서 "국회에 14년째 차별금지법이 계류돼 있는데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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