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이 다시 불붙인 '더빙 VS 자막' 논쟁...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입력
2021.10.09 16:00
'오징어 게임' 영어 더빙 품질논란에 "자막으로 보자"
일반적으로 마니아는 자막, 대중은 더빙 선호 경향
영국 실험 결과 "선택권 부여해야 만족도 높아"

"이 자막이 다른 자막보다 낫습니다." 트위터의 한 넷플릭스 이용자가 '오징어 게임'을 보기 위해 영문 자막을 선택하라고 권하는 이미지를 올렸다. 트위터 캡처

넷플릭스의 한국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서구에서도 '더빙 대 자막' 논쟁이 크게 번지고 있다. 한국어를 모르는 영어 사용자는 자연히 번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번역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원래 콘텐츠를 완전히 즐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자막으로 봐야 원래 느낌 살아" 자막파


"오징어 게임을 더빙으로 봤나, 자막으로 봤나"는 질문을 던진 팟캐스트 운영자 존 로베트의 트윗. 80% 넘는 팔로어들이 '자막'을 택했다. 트위터 캡처


현재 '오징어 게임'을 보는 해외 네티즌 다수가 "더빙보다 자막판으로 보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 작가 출신 팟캐스트 운영자인 존 로베트는 트위터에 "오징어 게임을 더빙으로 보았나, 자막으로 보았나"는 설문을 올렸고 80%가 넘는 응답자는 '자막'을 택했다. '토르: 라그나로크'의 감독 겸 배우로 알려진 타이카 와이티티도 "더빙으로 오징어 게임을 볼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자막파'들이 더빙 대신 자막을 택하는 이유는 '더빙이 원래의 느낌을 훼손한다'는 것. 대중적 흥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예술영화'를 즐기는 '시네필(영화 마니아)' 성향의 일부 자막파들은 "영어 더빙은 원래 연기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선택"이라고까지 말한다. 더빙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원래 연기자의 말투나 맥락, 연기 의도나 분위기를 100%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더빙보다 자막을 택하는 것이 원래 콘텐츠의 언어를 습득하는 데에도 효율적이란 관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더빙보다 자막이 더 정확하다고 하는 이유는, 더빙의 경우 발음과 립싱크(입모양 맞추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입모양과 말하는 대사가 맞지 않을 경우 몰입에 치명적이라서 더빙판은 입모양에 맞춰 원래 대사 내용을 바꾸기도 한다. 자막은 이런 제한이 없기 때문에, 좀 더 본래 의미에 가까워진다. 사업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막이 더빙보다 훨씬 가격이 싸기도 하다.



"읽을 거면 책을 읽지 뭐하러 영상을 보나" 더빙파


노트북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에 넷플릭스 로고가 떠 있다. 넷플릭스는 영상을 보면서 다른 일을 하는 이들을 위해 대부분의 작품에 더빙을 제공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하지만 '더빙파'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글을 읽으면서 영상을 볼 바에는 책을 읽겠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자막은 더빙보다 불편하다. 예를 들어 더빙 영상을 보면 공포스러운 장면에서 눈을 돌릴 수 있지만, 자막이 달린 영상을 볼 때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또 '오징어 게임'이 제공되는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플랫폼의 경우, 사람들이 넷플릭스만 보지 않고 다른 일들을 하면서 영상을 보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자막을 보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넷플릭스가 2018년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독일어 오리지널 드라마 '다크'를 '완주(끝까지 봄)'할 확률은 영어 더빙으로 시청한 계정이 영어 자막으로 시청한 계정보다 높았다. 넷플릭스가 더빙을 기본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자막파'의 지적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넷플릭스 외국어 콘텐츠의 접근성 자체는 자막보다는 더빙판이 더 높다는 뜻이다.

더빙이 원래 연기를 제대로 재현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질이 나쁘다고 단언하는 것도 옳지만은 않다. 다국적 콘텐츠 플랫폼은 예전과 달리 더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하고 있으며, 자연히 자막과 더빙의 현지화를 담당하는 전문 업체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유명 보이스오버 연기자 겸 프로듀서인 제프 하월은 BBC방송과 인터뷰에서 "언어에는 재현할 수 없는 문화적 뉘앙스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더빙 역시) 100%는 아니지만 가능한 원래 의미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은 자막 품질이 더빙보다 뛰어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영문 클로즈드 캡션(CC) 자막 번역이 오류가 많다고 지적하는 영미 메이어의 트윗. 위 트윗은 서구 언론에 크게 공유되며 화제가 됐다. 트위터 캡처


이번 '오징어 게임'의 경우 자막의 번역 역시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뉴욕 거주 스탠드업 코미디언 겸 팟캐스트 운영자인 영미 메이어는 트위터에서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클로즈드 캡션(CC)' 자막의 내용 일부가 원래 의미를 살리지 못한다고 지적했고, 다수 언론이 이를 인용해 큰 화제가 됐다. CC자막은 청각장애인을 위해 비언어적 소리나 상황의 맥락 등 추가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는 '오징어 게임'의 경우 '더빙보다 자막이 낫다'는 대세 평가와 충돌하는 분석은 아니다. 왜냐하면 CC자막 번역이 더빙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이다. 메이어는 일반 자막의 번역은 더빙과 달리 훨씬 낫다면서도 일반 자막 역시 모든 내용을 완전히 번역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또 메이어는 다른 트윗에서 극 중 북한이탈주민인 '새벽'이 평소에는 북한 말투를 숨기다가 동생을 만날 때만 북한 말투를 쓰는 부분을 두고 마음이 아팠다는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말투의 차이는 더빙판으로는 알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결국 외국인이 '오징어 게임'을 "완전히" 즐기려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을 때 봉준호 감독이 내놓은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수상 소감은 '더빙 선호'에 대한 '영화 마니아'적 비판이라기보다 '자막을 읽기 싫어서 외국어 영화를 안 본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외국어 콘텐츠를 즐기는 마음가짐일 수 있다는 뜻이다.



"더빙, 자막 모두 제공해 선택권 줘야 만족도 높다"


한국과 중국 드라마 등에 자막을 넣어 스트리밍하는 싱가포르 플랫폼 '라쿠텐 비키'의 화면. '비키'는 비디오와 위키의 합성어로, 참여자가 직접 자막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실제 한국 드라마 마니아들은 무보수로 팀을 꾸려 직접 자막을 만들어 넣는데, 마니아들의 활동이기 때문에 정확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더빙과 자막의 선호도는 국가별로도 다르다. 미국이나 영국의 대중은 애초에 영어권 밖 작품을 별로 즐기지 않기 때문에,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외국어 작품이 유행할 때 논란이 발생한다. 다만 넷플릭스의 기존 시리즈 사례에서 보듯, 굳이 본다면 더빙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오징어 게임'을 둘러싼 양상은 오히려 예외적이라 볼 수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은 더빙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다.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권도 더빙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와 폴란드 등은 원래 음량을 약간 줄이고 한두 명의 '렉터(lektor)가 자국어로 대사를 번역해 그 위에 녹음하는 '보이스오버' 방식을 택한다.

우리나라는 영화관 등에선 자막 사용이 일반화돼 있어 지상파 방송이나 항공기 안에서 더빙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북유럽과 발칸 반도 국가들도 자막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현상의 주된 요인은 흔히 영어에 대한 친숙도로 본다. 단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작품은 어느 나라나 대부분 더빙을 한다.

물론 가장 바람직하다 할 수 있는 방향은 더빙과 자막 모두를 제공하고 시청자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2010년 영국영화자문위원회(Britain Film Council)는 민간 조사기관 OTX 리서치에 의뢰해, 스웨덴 영화를 선정해 자막판만 볼 수 있는 그룹, 더빙판만 볼 수 있는 그룹, 둘 중 선택해서 볼 수 있는 그룹을 나눠 놓고 영화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다. 그 결과 영화에 대한 평가는 선택권을 준 그룹이 가장 높았다. OTX리서치는 "더빙과 자막 중 취향에 따라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주는 것이야말로 다수의 청중을 유치하고 영화에 대한 평가도 높이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분석했다.

인현우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