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식용 금지, 무슨 합의가 더 필요한가

입력
2021.10.08 00:00
27면
서울 마포구 동교동삼거리의 한 빌딩에 동물해방물결과 국제동물권단체 LCA(Last Chance for Animals)가 내건 개 식용 금지를 촉구하는 대형 현수막. 뉴스1

서울 마포구 동교동삼거리의 한 빌딩에 동물해방물결과 국제동물권단체 LCA(Last Chance for Animals)가 내건 개 식용 금지를 촉구하는 대형 현수막. 뉴스1


"박지성, 네가 어디에 있든/ 너희 나라는 개를 먹지/ 네가 스카우저(리버풀)라면 더 심해질 수도 있어/ 걔들은 임대주택에서 쥐를 잡아먹거든."

영국 프리미어 리그 맨유의 팬들이 과거 박지성을 응원하던 '개고기송'의 일부이다. 누가 봐도 한국인과 가난한 노동자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다. 그런데 최근 맨유 팬들이 맨유와 시합 중인 울버햄튼 소속의 황희찬 선수를 향해 이 노래를 불렀다. 15년 전 "가사가 불편했지만 참았던" 박지성이 이번엔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개고기송을 멈춰달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박지성은 '현재 한국은 개식용이 사라지고 있고 다른 국제적 문화도 많은데 개식용으로 한국을 특징짓는 것은 한국인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비하로 인식되니 개고기송을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의 개식용에 대한 서구의 힐난은 매우 다양한 경로로 이어져 왔다. 그럴 때마다 한국 사회는 '문화제국주의'를 내세우며 개식용을 한국의 전통 혹은 문화로 주장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개고기송' 논란은 논점이 다르다. 박지성은 '개고기송'을 멈춰야 하는 이유를 현재는 개식용을 하는 한국인이 매우 적은데 여전히 일반적인 식문화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으로 들었다. 반박의 논거가 '전통문화에 대한 인정'에서 '세계시민으로 한국인에 대한 정당한 평가'로 요구의 내용이 바뀐 셈이다. 이런 변화는 한국 사회 내부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개식용 찬반 논란이 점화된 1988년 이후 개식용에 관한 시민들의 의식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2000년 한국식품영양학회지에 실린 한 여론조사에서는 86.3%가 개식용을 찬성했다. 하지만 올해 경기도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개식용 의향을 묻는 질문엔 84%가 '없다'고 답했다. 개식용 금지 법제화는 64%가 찬성했다. 여론조사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최근의 조사는 개식용 금지 법제화 찬성 비율이 우세하고, 개식용 의향은 '없다'가 압도적이다. 이미 시민의 다수가 개식용에 반대하고 금지의 법제화에 찬성하는 기류가 뚜렷하다.

물론 앞으로도 개식용이 정당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미래의 삶은 '생태적 공존'을 핵심적 가치로 포함한다. 환경보전과 그 실천 전략의 하나인 동물권 보장은 이제 지속 가능한 인간 삶을 위한 조건으로 상상되기 시작했다. 소와 돼지를 잡아먹기 때문에 개를 잡아먹어도 된다는 삐뚤어진 불모의 평등의식보다는 개식용을 금지한 이후 단계적으로 소와 돼지의 윤리적 도살을 고민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나는 현재의 한국사회를 개식용에 관한 찬반논란이 '금지'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한다. 사회적 합의 여부는 현상적인 논란 자체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논란의 담론적 실효성 여부로 판단되어야 한다. 외견상 논란이 계속되지만 그것이 흐름을 바꾸지 못할 것이 확실하면 이미 합의가 이루어진 것 아닌가. 대통령이 개식용 금지를 언급하고 여야 대선후보들이 앞다투어 금지의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제는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개식용 찬반 논란에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는 법제도와 정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논의의 초점을 정책적 실효성 여부로 모아가는 것이 시민의 새로운 몫일 것이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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