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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무너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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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전세를 얻고 청약으로 아파트를 장만하는 건 서민들의 작은 바람이었다. 아주 풍족하지는 않아도 내 집 마련을 전후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그리 나쁠 것도 없었다.
이게 미친 듯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남들 하는 만큼만 노력하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살면 누구나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많은 이들이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도 했다. 적어도 지금의 중장년 세대까지는 이런 시절을 보냈다.
죄다 과거형인 건 서민의 삶을 지탱해온 그 상식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9,978만 원(KB국민은행 월간 주택가격동향)으로 12억 원 돌파가 코앞이다. 올해 들어서만 1억5,000만 원이 올랐으니 억대 연봉자들도 따라가기가 불가능한 상승률이다. 그나마 문턱이 낮았던 서울 강북 아파트도 중위 매매가격이 9억 원을 넘었고 무주택자의 희망인 청약은 바늘구멍이다. 수도권의 웬만한 단지는 자녀 두셋에 부모까지 모시는 무주택 중년이 아닌 이상 가점 부족으로 '넘사벽'이 됐다.
집값은 서민들이 월급을 착실히 모아 살 수 있는 수준을 초월했다. 금융권은 대출을 옥죄는 데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우회로도 막혔다. 무주택자는 매매는커녕 당장 전세자금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결혼이고 출산이고 뒷전으로 밀리는 게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 됐다.
이런 와중에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터졌다. 누가 설계를 했고 어떤 커넥션이 작용해 민간사업자들이 떼돈을 벌었는지는 수사로 밝혀낼 일이지만 현시점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수많은 소시민의 가슴을 후벼 파는 분노와 극한의 상실감을 선사했다.
대장동 의혹의 꺼풀은 '억' 소리와 함께 한 겹씩 벗겨지고 있다. 설립 자본금이 5,000만 원인 화천대유자산관리는 특수목적법인 성남의뜰 지분 1%로 배당금 570억 원을 가져갔다. 화천대유 자회사 천화동인 1~7호는 자본금 3억 원(지분율 6%)으로 3,463억 원을 받았다. 미국으로 튀었다는 천화동인 4호 실소유주는 8,700만 원을 투자해 1,000억 원을 먹었다고 한다. 드러난 민낯이 하나같이 상상초월이다.
배당금 이외에 수의계약으로 확보한 부지에서 나오는 분양수익도 수천 억대인데, 정작 대장동 원주민들은 헐값에 땅을 수용당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애초에 민간사업자의 배당금 상한을 설정하지 않은 상식 밖 주주협약도 드러났다. 그런데도 대장동 개발이 그동안 성공적인 공공개발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는 건 아이러니다. 단군 이래 공공이 가장 많은 개발이익을 환수한 줄 알았는데, 뚜껑이 열리고 나니 '역대급'으로 민간사업자의 배만 불려줬다.
누구보다 중립적이고 정의를 추구해야 할 대법관은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월 1,500만 원씩 받아 재판거래 의혹까지 불거졌다. '대통령 저격수'로 통한 검사 출신 야당 의원의 아들은 화천대유에서 6년을 일하고 퇴직하면서 50억 원을 챙겼다. 상식 선에서 절대로 불가능한 퇴직금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상식이 통하는 게 하나 있긴 하다. 대통령 자녀들 전담 공격수였는데 자신의 아들 퇴직금이 뒤통수를 쳤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던가. 공허한 가슴에 위안은 이것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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