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원팀이냐, 팀킬이냐... 대선 성적표, 경선 후유증 극복에 달렸다

입력
2021.10.11 13:30
0면
구독

이재명, 과반 겨우 넘긴 턱걸이 승리에
이낙연 측 무효표 문제 삼아 이의제기
대선 본게임 첫 승부처는 원팀 성사 여부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가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이낙연 경선 후보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가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이낙연 경선 후보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원팀은 민주당의 전통이고, 우리는 특정인의 당선에 대해서 특정인의 영광을 위해서 경선하고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더 넓게는 민주개혁세력의 재집권, 4기 민주정부의 창출을 위해서 팀원의 하나로서 함께 해온 것이다. 제가 최선을 다해 설명 드리고 부탁 드리고 원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의 원팀을 향한 호소는 간절했습니다. 대장동 의혹에도 경선 내내 대세론을 이어가며,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2017년 득표율(57%)에 육박하는 56% 정도의 최종 득표율로 무난하게 후보가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마지막 경선인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크게 뒤쳐지며, 과반(50.29%)을 가까스로 넘긴 턱걸이 승리였기 때문이죠.

당장 이재명 후보의 과반 저지를 통해 결선 진출을 노렸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측은 사퇴한 후보들의 득표를 무효표로 처리한 문제를 두고 이의제기에 돌입했습니다. 경선 후보의 득표를 무효표로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반영하면 이 후보가 과반에 미달하게 되는 상황이 되는 만큼,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 대표 측 의원들은 경선 불복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는 등 쉽게 물러설 뜻이 없음을 내비쳤죠. 이 전 대표 지지자들도 격앙된 분위기입니다. 민주 당사에 항의 방문하자는 메시지를 공유하는가 하면 권리당원 게시판에서는 "사사오입에 반대한다"는 글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사사오입'은 이 전 대표측 지지자들이 무효표 처리 방침에 항의하면서 해온 말입니다.

이 전 대표는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승복 여부에 대해 즉각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마음이 정리 되는 대로 말하겠다"며 "차분한 마음으로 책임이 있는 마음으로 기다려달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만 언급했을 뿐이죠. 이 전 대표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민주당의 원팀은 멀어질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 이낙연 대선 경선 후보가 3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인천 순회합동연설회 및 2차 슈퍼위크 행사에서 결과 발표 후 악수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 이낙연 대선 경선 후보가 3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인천 순회합동연설회 및 2차 슈퍼위크 행사에서 결과 발표 후 악수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대선은 말 그대로 '전력투구'입니다. 정당과 진영이 모든 걸 쏟아붓지 않으면 한 끗 차이로 밀리는. 원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상대와의 싸움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고, 대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역대 대선은 원팀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 게임 잊지 않으셨죠?" 사생결단 경선 '팀킬' 되지 않으려면) 2002년, 2007년, 2012년, 2017년 여야 대선 경선 이후의 상황을 정리해봤습니다.

한국 정치 초유의 경선불복 후단협, 그 끝은 초라

2002년 11월 20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오른쪽)와 정몽준(왼쪽) 후보가 심야회동에서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여의도 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으로 러브샷을 하고 있다. 손용석기자

2002년 11월 20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오른쪽)와 정몽준(왼쪽) 후보가 심야회동에서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여의도 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으로 러브샷을 하고 있다. 손용석기자

2002년 4월 민주당 국민경선은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쓴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비주류의 승리. 이인제 후보를 지원했던 당내 주류 동교동계는 정당하게 선발된 노무현 후보가 마뜩잖았죠. 명분을 만들긴 쉬웠습니다. 한일월드컵 열기 속에 치러진 6월 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이 한나라당에 완패하자, 그 책임을 노무현 후보에게 돌리기 시작한 거죠. 자진 사퇴 요구였습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론이 돌아선 건 중요치 않았습니다.

대선까지 남은 4개월. 월드컵 4강의 쾌거에 힘입어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대선출마를 선언하자, 동교동계는 후보 교체를 종용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2002년 10월 4일 결성된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 비극의 시작이었죠. 이름은 후보 단일화 촉구였지만, 사실상 노무현 끌어내리기 작전이었죠. 민주당 의원들은 엄연히 자당 후보가 있는데도 정몽준 띄우기에 열을 올렸고, 끝내 후단협 소속 의원 일부가 탈당까지 감행했죠. 노무현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맞서면서도, 당내 노무현 흔들기에 맞서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 초유의 경선 불복, 후보 교체 시도는 끝내 실패로 돌아갑니다. 노무현 후보는 자신에게 불리한 것으로 여겨졌던 여론조사 단일화에 전격 응했고, 승부수는 적중했습니다. 후단협의 얄팍한 노림수로 거대한 민심을 거스르기엔 역부족이었던 거죠.

경선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친이 VS 친박 파워게임

2007년 대선을 앞두고 8월 13일 열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박근혜(왼쪽), 이명박 후보가 각각 얼굴을 만지며 연설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7년 대선을 앞두고 8월 13일 열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박근혜(왼쪽), 이명박 후보가 각각 얼굴을 만지며 연설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처절하게 맞붙었던 대선 경선인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이후는 어땠을까요.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의 갈등은 경선 이후에도 쭉 지속됐는데요. 의원들은 물론 당직자, 지지자들까지 친이 VS 친박으로 갈려 만날 때마다 으르렁댔죠.

당시 기사를 보면 '친이계 의원과 친박계 의원이 우연히 마주치면 한 사람이 자리를 서둘러 떠났다', '지지자들끼리는 왜 경선에 승복하지 않느냐고 주먹다툼이 벌어졌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당직자와 의원들은 선대위에 아예 넣지 않거나, 참여시키더라도 "한직 몇 자리만 내주고 생색냈다" "곁가지 일만 시킨다"는 불만을 토로했다'는 내용이 생생하게 남아 있네요.

경선 이후 이뤄진 회동에서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이명박), "화합해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할 겁니다"(박근혜)라고 서로 덕담을 건넸지만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였을 뿐. 마음에 앙금까지 씻지는 못했던 거죠.

양측의 갈등은 MB정권 당시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이른바 친박 공천학살로 폭발했습니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친박계가 야당과 연대해 부결시킨 것도 전면전의 사례로 꼽히고요. 5년 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친박과 친이의 갈등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경선은 끝났지만, 양측의 파워게임은 끝나지 않고 이어졌던 겁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2012년 민주당, 그 끝은 패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들이 9월 11일 경기 부천시 오정동 경인방송 스튜디오에서 인천 경기권 방송토론을 하기에 앞서 사진을 찍으려고 준비하고 있다(왼쪽부터) 문재인 정세균 김두관 손학규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들이 9월 11일 경기 부천시 오정동 경인방송 스튜디오에서 인천 경기권 방송토론을 하기에 앞서 사진을 찍으려고 준비하고 있다(왼쪽부터) 문재인 정세균 김두관 손학규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2012년 민주당 경선은 대립, 갈등, 반목으로 점철됐습니다. 모바일 투표 룰 싸움에서 시작된 갈등은 경선 보이콧에 지지자들 몸싸움까지 벌어졌죠. 우여곡절 끝에 문재인 후보가 뽑혔지만, 경쟁 후보였던 손학규 정세균 상임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한데 모여 문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은 끝내 만들어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원팀도 물 건너 가게 됐죠.

친문 핵심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경선이 끝나고도 정당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선 후보들이 다 함께하는 그 평범한 사진을 볼 수조차 없었고, 대선 투표일이 되도록, 아니 대선이 끝날 때까지 민주당 경선 후보들이 함께 모여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그림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경선이 끝난 후 결과 앞에서 하나가 될 때에만 뜨겁고 화끈한 경선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죠.

당 중심이 아닌 후보 중심의 선대위가 꾸려진 것도 패착으로 지적됐는데요. 당시 문 후보는 용광로 선대위를 기치로 내세웠죠. 친문이니 비문이니 당내 계파를 초월하고 시민사회 인사들까지 끌어안으려는 구상이었지만, 현실에선 크게 시너지를 내지 못했죠. 여기에 더해 아름다운 단일화를 만들겠다던 안철수 후보는 중도 사퇴를 선언하며 결국 문재인, 민주당, 야권은 2012년 정권 교체에 실패하고 말았죠.

홍대 호프집에서 술잔 기울이며 '원팀' 외친 2017년 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왼쪽 셋째)가 2017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프집에서 경선 경쟁자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오른쪽)·이재명 성남시장(왼쪽 둘째)·최성 고양시장(왼쪽)이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왼쪽 셋째)가 2017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프집에서 경선 경쟁자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오른쪽)·이재명 성남시장(왼쪽 둘째)·최성 고양시장(왼쪽)이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조기에 치러진 2017년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은 원팀의 성공 사례로 그나마 꼽힐 만합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최종 후보로 선출된 직후부터 당내 통합을 위해 경선 경쟁자 끌어안기에 적극 나섰는데요. 2012년 대선 경선 당시 친문과 비문 갈등으로 시너지를 내지 못한 것이 대선 패배 요인으로 지적됐던 만큼, 단합 행보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경쟁 후보들을 직접 찾아가 따로 만나며 스킨십을 키우는 데 주력했는데요. 홍익대 인근에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 등과 가졌던 호프 회동은 지금도 원팀을 대표하는 자료 사진으로 쓰이곤 하죠.

"안 지사가 주는 술은 통합의 술, 이 시장이 주는 술은 공정의 술, 최 시장이 주는 술은 분권의 술입니다. 이것이 정권교체를 위한 것이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모아야 할 정신입니다" 문 후보가 당시에 외친 건배사는 각 후보들이 내세웠던 비전과 가치, 공약을 언급하는 전략적 배려가 담긴 덕담이었죠.

각 캠프 소속 의원들을 골고루 안배하며 통합형 선대위를 꾸리려는 노력도 통합 행보 중에 하나였습니다.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은 일단 막을 내렸지만, 명낙 대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 결말은 해피엔딩일까요, 새드엔딩일까요. 분명한 건 갈등을 조기에 봉합하지 못할 경우 대선 승리로 가는 길은 험난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경선 승자인 이재명 후보가 적극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간절했던 원팀을 향한 호소만큼이나 당의 화합을 위한, 진심을 다한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네요.

강윤주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