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한다, "금지를 금지한다"고

입력
2021.10.05 22:00
27면
빅터 플레밍의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빅터 플레밍의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몇 년 전쯤 1993년도에 출간된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읽었다. 주인공 '안진진'과 그 주변인의 삶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인생의 고민과 모순적인 상황들을 엮어낸 방식에 매료되어, 지인들에게도 읽어보기를 자주 추천했다. 어느 날은 책을 선물하기 위해, 도서 구매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한 리뷰를 읽게 되었다. 가정폭력범인 남자를 이해하는 인물들이 더 이상 창작되거나 소비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리뷰였다. 그 글에는 많은 공감 표시가 달려 있었다. 그 리뷰의 반응을 보며, 창작자로서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일었다.

'모순'이 90년대의 작품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작중 인물에게 윤리적인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논쟁이 되는 이슈다. 이러한 연유로 당대에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작품들이 현대의 시대감각으로 재평가되는 경우들이 많다.

이는 영화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빅터 플레밍의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멤피스의 명소 오피엄 극장에서 34년간 매 여름마다 상영되었지만, 인종우월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영화를 올려선 안된다는 여론으로 인해 더 이상의 상영이 취소되었다. 마찬가지로 HBO 맥스도 윤리적, 인종적 편견이 담긴 작품을 그대로 서비스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이유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의 내 상황은 말 그대로 모순적이다. 고전 작품에 현대의 윤리성을 기준 삼기보다 시대의 풍속화로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움직임 덕분에 내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어렸을 때의 나는 영화 주인공은 영웅적인 면모를 띠고 있는 남자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이상한 줄 모르고 자랐다. 그러다 성인이 되고 나서, 여성이 영화 안에서 소외되거나 조력자로만 기능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들이 대두되면서 앞서 목소리를 낸 이들이 마련한 발판으로 첫 장편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여전히 미약한 숫자지만 진취적인 여성 서사들이 탄생하며 유색인종, 성소수자 등의 인물들을 조명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었다. 백인들이 동양인 역을 연기하는 화이트 워싱을 지양하고, 영화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필연적으로 이러한 기준들은 검열을 하는 도구로 또는 메시지를 앞세우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앞으로의 10년 뒤, 30년 뒤, 100년 뒤의 역사 안에서 동시대의 작품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또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균형의 움직임은 흔들리며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입버릇처럼 시간을 버티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한다. 당장 소기의 성과를 이루더라도, 시간이 지나 금세 빛이 바래는 작품보다는 해변에 떠밀려 온 유리병처럼 우연처럼 발굴되더라도 녹슬지 않은 가치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으면 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목소리를 내되, 금지를 금지한다"라고. 완전한 금지 혹은 금기가 되어버리면 우리는 새로운 장르의 빛나는 작품을 만나기까지 더 오랜 시간 투쟁해야 할 수도 있다. 나 또한 새로운 창작자가 장벽을 발견하고, 좌절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겠다.



윤단비 영화감독·시나리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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