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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13억 벌면 뭐하나

입력
2021.10.04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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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파트 구입 갈등으로 파혼하고 7년 만에 13억 원의 시세 차익을 얻은 남자의 사연이 화제가 됐다. 사연은 이렇다. 30대 회사원이 전문가 추천으로 강남에 약혼자와 상의 없이 아파트 계약을 했다. 뒤늦게 안 약혼자는 강남 거주를 반대했다. 직장과 친정에서 멀다는 이유였다. 남자가 부동산 계약 포기를 하지 않자, 커플은 결국 갈등 끝에 파혼했다. 그 후 남자는 7년 만에 거액을 벌었다. 그 부동산을 추천해 준 전문가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 걸 자랑이라 떠들고, 언론들이 받아썼다.

나는 이 사연을 듣고 남자가 부럽기는커녕 딱했다. 남들이 좋다 하는 강남에 부동산 하나 잡으려고 사랑을 잃은 이 사연에 우리는 슬퍼해야 한다. 더군다나, 남자는 약혼자와 상의 없이 집을 구했다. 이건 무신경한 실수가 아니라 관계의 폭력이다. 이 남자에게 사랑은 도대체 뭐였을까.

이 남자는 사랑을 위해 헌신과 희생을 준비하는 대신 돈 계산부터 했다. 돈은 삶의 일부지만 사랑은 전부다. 인생의 대차대조표에서 사랑을 빼면 뭐가 남을까. 요행히 번 13억 원이 7년 전 가슴 뛰던 젊은 날 사랑의 상실을 보상해줄 수 있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가여운 인생이다.

시인 백석의 연인이었던 김영한 여사는 자신이 운영하던 요정 대원각을 불교계에 통째 시주했다. 성북동에 있는 지금의 길상사다. 당시 시세로 1,000억 원이 넘는 재산이었다. 김 여사는 한 인터뷰에서 "1,000억 원이 백석의 시 한 줄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사랑의 가치는 이런 것이다.

또 하나, 이 남자는 인생에서 가장 귀한 재화가 시간이라는 사실을 놓쳤다. 인생의 시간은 무한히 널린 게 아니다. 아주 짧고 찰나처럼 지난다. 약혼자가 직장에서 먼 강남에서 출·퇴근을 한다면, 하루에 서너 시간은 길에 버려야 한다. 젊은 시절의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내 삶의 본질적 행복을 위해 써야 할 천금 같은 시간이다. 젊은 시절은 세상을 가장 열렬히 느끼는 때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한계 효용은 급속히 떨어진다. 인생의 행복을 뒤로 유예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당신이 바라던 그 훗날에는, 당신의 시든 몸만 있을 뿐이다. 몸이 시들면 세상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의 시간은, 미래에 있을지 모를 이익을 위해 함부로 희생시켜도 좋을 만한 것이 아니다.

집값 상승을 노려 오늘의 불편과 불행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꿈꾸는 미래도 도착하고 보면 오늘과 다름없는 날이다. 표정만 바꾼 또 다른 일상일 뿐이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강남에 50억 원 아파트를 깔고 산다고 대단한 행복을 누리는 게 아니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의 주주들이 몇 천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동화 속에서 사는 것도 아니다. 인생 거기서 거기다.

세속적 욕망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김민기의 '봉우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우리가 봉우리에 오르려는 이유는, 사람들이 손을 들어 가리키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은 사회가 만든 것이라는, 서늘한 비판이다. 그리고 올라가보니 그곳은 정상이 아니라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이라고 노래한다. 삶은 그런 것이다. 내일 생길지 모르는 13억 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랑이 중요하다. 귀하게 오늘을 살아야 한다.



이주엽 작사가, 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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