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 남발이라고?

입력
2021.10.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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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8월 명승으로 지정 예고한 포항 내연산의 관음폭포.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이 8월 명승으로 지정 예고한 포항 내연산의 관음폭포. 문화재청 제공

올해는 유난히 문화재청의 명승(名勝) 지정이 많았다. 뛰어나게 아름다워 문화재로 지정된 경치를 명승이라 한다. 올해 지정된 명승은 3일 현재 전남 장흥 천관산을 포함해 벌써 6개나 된다. 이 밖에 지정 예고된 것이 이미 5개가 더 있으니 올 한 해 최소 11개 이상이 명승으로 지정된다. 지난해 3개(전북 부안 직소폭포 등), 2019년 1개(전남 강진 백운동 원림), 2018년 2개(전북 군산 선유도 망주봉 등)에 비춰 그 수가 크게 늘었다.

명승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된다. 우리나라 명승 1호는 1970년 지정된 오대산 국립공원의 명주 청학동 소금강이다. 가장 최근 지정된 경북 칠곡 가산바위가 121호이니 50여 년의 시간에 비해 명승 지정이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다.

최근 명승 지정이 갑자기 많아진 것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역에서 많이 희망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전에는 명승 지정을 하려 해도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주민들이 꺼려했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명승으로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대가 생겼다. 관광지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문화재청이 일률적인 규제보다는 명승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다면 일정 수준의 제약을 많이 풀어주는 방침도 잇단 명승 지정을 이끄는 힘이다.

이전엔 명승 지정이 험난했다. 문화재청이 지정을 추진해도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경우가 허다했다. 반구대 암각화로 유명한 울산 울주 반곡천 일원이 대표적인 사례. 2001년과 2013년 실패 후 삼세번 만인 올해 명승 지정이 이뤄졌다.

명승 지적은 개발의 광풍에 우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더 이상 훼손할 수 없어,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자는 것. 풍경에 완장을 채우는 것이다. 최근엔 명승 지정이 아니더라도 풍경 보호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유네스코에서도 세계유산의 한 범주 안에 문화경관을 넣고 있다. 제주에선 천연 경관의 사유화가 우려되는 송악산과 중문 주상절리를 지키기 위한 문화재 지정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은 명승 남발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더 많은 지정을 독려할 때다. 국립공원 등으로 이미 보호받는 곳에 다시 명승 타이틀을 하나 더 얹는 것보다, 정말 훼손 가능성이 높은 풍경을 찾아 문화재 지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명승 지정만으로 끝은 아니다. 여전히 명승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 드물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명승의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한 체계적인 대응이 절실하다. 명승이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디딤돌에 그칠 게 아니라, 명승 자체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할 것이다. 옛 선비들이 떠났던 명승 유람이 21세기에도 폼이 날 수 있도록 말이다.

명승 지정으로나마 일부 풍경을 보전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문화재 지정 없이도 우리의 천연 경관을 유지할 수는 없는 걸까. 더 높이 치솟고 싶은 욕망, 그 사적 이익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풍경이 훼손되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어서다.

망가진 풍경에 더는 한숨을 쉬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강산’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이성원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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