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병 재활용? 한국에선 그냥 땅에 묻힙니다

입력
2021.10.06 04:30
시장 구조 탓 투명·녹색(소주)·갈색(맥주)병만 재활용
외국선 유리를 건축자재로 재활용하는데... 국내는?
기술 개발됐는데도 판로 없어... 개발 업체는 속 타
유리 재활용 스티로폼보다 낮아, 자연분해 100만 년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20>와인병

편집자주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두는 걸까.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다.


다양한 유리병 중 현재 국내에서 재활용되는 것은 왼쪽에 놓인 것들이다. 오른쪽의 와인병, 위스키병 등은 생산자가 직접 재사용하지 않는 이상 재활용이 안 돼 모두 버려질 처지다. 화려한 옷을 입은 화장품병 역시 재활용이 어렵다. 한지은 인턴기자

상점 진열대에서 와인병을 집어들 때, 한 가지 믿음이 있다. 유리는 플라스틱보다 재활용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 와인병 라벨에 새겨진 ‘유리’라는 분리배출 표시를 보면, 이 믿음은 굳어진다.

하지만 와인병은 재활용이 어렵다. 모두 땅에 버려져 매립된다. 각양각색의 수입 술병도 마찬가지다. 이 병들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재활용이 잘 안 되고 있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의 취재 결과, 이는 병 자체의 특성이 아닌 국내 유리재활용 시장의 구조 때문이다. 와인병 등으로 건축자재를 만드는 재활용기술을 개발한 업체조차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왜 일까.


와인병 라벨에 새겨진 분리배출 표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 표시를 '재활용 가능' 표시로 이해하지만, 국내에서 와인병은 재활용되지 않는다. 한지은 인턴기자




재활용하기엔 너무 짙은 녹색?

지난해 와인 수입 금액은 3,676억 원으로 처음 3,000억 원대를 돌파했다. 와인은 마트는 물론 편의점에서까지 쉽게 살 수 있는 친근한 술이 됐고, 아파트 분리수거장의 유리 수거함에서도 주민들이 내놓은 와인병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재활용에의 믿음은 소비자를 배신한다.


지난달 15일 경기 화성시의 유리재활용업체인 성민리사이클 공장 안에 경기도 전역에서 수거한 유리 폐기물이 쌓여있다. 이수연PD

지난달 15일 찾아간 경기 화성시의 유리재활용 전문업체 성민리사이클. 공장 한 쪽에는 경기도 전역에서 수거한 유리병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수많은 폐기물 중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선별하는 것이 성민리사이클의 역할이다.

이곳 김찬심 이사, 그리고 협력사인 유리가공업체 한국발포유리의 홍승길 본부장을 만나 수집한 유리병 중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물었다. 두 사람은 “투명, 녹색, 갈색 유리병이 재활용이 용이하다”며 여기에 해당하는 병을 집었다. 투명한 화장품병과 화요 술병, 소주병과 고량주병, 비타500과 원비디 등 드링크병이다.


현재 한국에서 재활용이 용이한 병은 투명, 갈색, 초록병이다. 사진 속 오른쪽 두 번째 소주병은 업체에서 회수해 재사용하는 병이다. 한지은 인턴기자

색깔이 확연히 차이 나는 파란색 위스키병과 하늘색 소주병은 재활용에 적합하지 않은 병으로 분류됐다. 다만 하늘색 소주는 제조사에서 회수해가는 ‘재사용’ 대상이다.

문제는 와인병이다. 분명 녹색인데도 “색깔이 다르다”며 재활용이 어려운 병으로 분류됐다. 소비자 입장에서 소주병이나 와인병이나 색 차이가 크지 않은데도 운명이 갈리는 이유는 뭘까. 김 이사는 “현재 유리병은 제병, 즉 또 다른 유리병을 만드는 용도로만 재활용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짙은 파란색 위스키병과 하늘색 소주병. 색깔로는 재활용이 어려운 병들이다. 하늘색 소주병은 업체에서 회수해 재사용한다. 한지은 인턴기자

사용한 유리병을 다른 병으로 재생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시장 논리에 따라 특정 색을 띤 병만 만들고 있어서다. 녹색ㆍ갈색병이 재활용이 잘되는 이유는 재질 때문이 아니다. 단지 초록색 소주와 갈색 맥주가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투명 유리는 혼합이 되어도 색상을 방해하지 않아 선호된다.


와인병은 녹색이지만 '소주 녹색'보다는 진하다. 약간의 차이가 재활용 병의 운명을 가른다. 한지은 인턴기자

이런 구조 탓에 와인병과 같은 애매모호한 색은 탈락 감이다. 홍승길 본부장은 “와인병이 일부만 들어가도 이런(소주병) 색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원료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불량 처리가 된다”고 설명했다. 또 와인이나 위스키 같은 수입 술병의 경우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는 원료가 첨가됐을 가능성도 있어 선호하지 않는다.

홍 본부장은 “재활용 과정에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는 단연 화장품 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직접 분류해뒀던 화장품 병 6개를 들고 와 취재진에게 보여줬다. 검정, 보라, 금색, 빨강 등으로 화려하게 코팅된 병들이다. 김찬심 이사는 “용기를 마케팅 전략으로 쓰다 보니 이렇게 재활용이 어려운 유리가 자주 나온다”며 “가뜩이나 플라스틱 사용 증가로 유리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런 병들은 버려지게 된다”고 말했다.


각종 유리 화장품 용기들이다. 유리는 투명, 녹색, 갈색만 재활용이 가능한데, 이 화장품 병들은 다른 색으로 코팅돼 재활용이 어렵다. 한지은 인턴기자


유리병, 외국선 건축자재로 재활용 활성화

유리병은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환생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자원이다. 모래에 열을 가해 만든 것인 만큼 녹이면 재가공이 용이하다. 재활용 가능한 횟수에도 큰 제한이 없다.

유리병이 플라스틱보다 더 친환경적인 재료로 알려진 이유다. 플라스틱은 화학적 특성상 재활용을 하더라도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복원할 수 없다. 재활용이 용이하다는 투명 페트병도 다시 콜라병으로 만들 순 없고 재생섬유로 쓰인다. 게다가 플라스틱은 가공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품질이 손상돼 최대 6번까지만 재활용된다.

재활용되지 않은 유리는 일반 쓰레기처럼 땅에 매립된다. 이는 플라스틱만큼이나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친다. 유리가 자연 분해되기까지는 약 100만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썩는 과정에서 플라스틱만큼 토양오염을 발생시키는 건 아니지만 훨씬 오래 남아 자연을 훼손하는 셈이다.

해결책은 있다. 유리병을 건축자재로 쓰는 것이다. 유리병은 파쇄해 인공 모래와 비슷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데 이를 가공해 콘크리트나 시멘트, 벽돌 등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색깔과 상관없이 모든 유리병을 쓸 수 있고 이미 깨진 유리나 사기그릇 등도 활용할 수 있다. 건축용 모래 채취로 인해 매년 우리나라에서만 여의도 면적의 약 100배에 달하는 산림과 강변, 해변이 훼손되고 있다. 이런 환경문제를 막는 데도 폐유리 활용은 각광받는다.

이미 해외 여러 나라들이 활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1960년대 말부터 일명 파유리 아스팔트(글래스팔트ㆍGlassphalt)를 연구하고 사용해왔다. 영국에서는 유리병을 활용한 건축자재를 축구장ㆍ공항 등의 바닥재, 방화벽 등에 썼다. 미국 역시 도로포장 및 주차장 바닥재에 활용한다. 2015년 기준 유럽연합(EU)에서는 회수된 유리병의 약 16%를 건설자재로 썼다.


지난달 15일 방문한 경기 화성시 한국발포유리 공장에 유리병을 파쇄한 인공 모래가 쌓여있다. 이수연PD


국내서도 기술 개발됐지만...

국내에선 2019년 재활용된 유리병 27만 톤 중 0.3%에 불과한 1,000톤만이 건축자재로 쓰이고 나머지는 모두 제병 용도로 쓰였다.

2019년 EU의 유리병 재활용률은 76%인데 한국은 그보다 12%포인트 낮은 64%다. 국내 스티로폼 등 발포합성수지(82%)나 페트(80%) 재활용률보다도 뒤떨어진다. 제한된 재활용 방법 탓이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KORA)는 “코로나19로 술 수입량이 늘고 있어 이를 처리하기 위해 건설 등 다른 방식의 재활용을 모색하고 있고 그 비중도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건설 등 타 용도 재활용 비중은 4% 정도로 실제 상당히 늘긴 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건설 자재 활용이 활성화가 안 되는 이유는, 역시 돈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유리를 건축자재로 재활용하려면 모래 수준으로 갈아야 하는데 현재 재활용ㆍ제병 업체들이 하는 건 망치로 깨뜨리는 정도에 그친다”며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유리병을 만드는 것보다 경제성이 낮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15일 경기 화성시 한국발포유리 공장에서 폐유리가 건축자재로 가공되고 있다. 파쇄와 가공을 거친 유리는 모래와 비슷한 질감이며, 손으로 만져도 따갑지 않았다. 이수연 PD

유리병을 활용할 기술이 있어도 활용되지 않는 이유다. 포항시는 2018년 KORA와 협약을 맺고 폐유리병이 포함된 아스팔트를 도로 포장에 사용했다. 한국발포유리는 2019년 환경부 유용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의 연구지원을 받아 폐유리를 발포유리비드로 가공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발포유리비드는 단열재나 배수로 등 다양한 건축공정에 활용할 수 있다.

이는 당시 폐유리 처리를 위한 획기적인 진전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업체는 판로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홍승길 본부장은 "버려지는 유리를 가공해 건설자재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기존 자재보다 단가가 높아 시장 진입이 쉽지 않다"며 “재활용을 계속하려고 해도 시장이 확보가 안 되니 손해만 계속된다”고 말했다.

와인·위스키병, '재활용 어려움' 표시 면제 왜?

재활용이 어려운 와인ㆍ위스키병에 대해 정부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분담금을 20% 할증해 책임을 부과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유리의 EPR 분담금 단가는 1㎏당 평균 36원에 불과해 20% 할증해도 액수는 미미하다.

더욱이 ‘재활용 어려움’ 등급 표시는 면제된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와인병은 품질 보존을 위해 어두운 색을 쓸 수밖에 없고, 위스키병도 (유리와 분리되지 않은) 뚜껑 부분에 위조방지 캡을 넣어야 하는 사정상 당장 용기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라 표시를 면제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한다.

‘수입품이라 용기를 바꿀 수 없다’는 업계의 반발도 작용했다. 2019년 재활용 용이성 등급제 도입 검토 당시에는 미국 증류주협회 등이 환경부에 서한을 보내 "이번 조치는 무역에 불필요한 장애물을 만들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부분 수입품인 와인은 품질 탓에 용기 변경이 어렵다는 이유로 환경부의 '재활용 어려움' 등급 표시를 면제받았다. 이마트24 제공


재활용 분담금, 필요 산업 키우는 데 안 쓰여

할증한 EPR 분담금은 재활용 체계 개선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재활용 보조금이 재활용 방법과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분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리병을 건설자재용으로 분쇄하는 비용이 제병 용도로 분쇄하는 비용보다 약 4배 높지만, 재활용 업체들이 보전받는 비용은 제병 용도 수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업체들이 재활용률을 높이려 무리하는 대신 매립ㆍ폐기로 돌아서는 구조적 이유다.

홍수열 소장은 “EPR 분담금 할증은 생산자들의 용기 개선을 유도한다는 취지이지만 현재는 그런 효과 없이 단순 벌금에만 그치고 있다”고 꼬집으며 “이 경우 재활용이 어려운 유리병에 대한 분담금을 대폭 올리고 그 비용이 건설자재 등 다양한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투입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동영상 이수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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