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 에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집 짓기는 아들을 생각하는 아빠의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축구 선수를 꿈꾸는 아들이 집에서 마음껏 공을 차게 하고 싶다.' 올해 봄, 경기 남양주에 준공된 단독주택 'H. 스타디움(대지면적 726㎡, 연면적 240.98㎡)'은 작은 경기장을 옮겨 놓은 듯하다. 황무현(41)씨와 이채민(43)씨 부부, 초등학교 6학년 황성민군, 반려묘 한 마리가 사는 집은 서로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선물 같은 집이다.
원형 기둥, VIP 관람석... 경기장 콘셉트를 극대화한 집
H.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이 집의 중심은 축구장이다. 1층에 들어서면 집 앞으로 펼쳐진 축구장이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3대 3 경기가 가능한 축구장(65평)은 집의 내부 면적(63평·1층 필로티 제외)보다 넓다. 건축주이자 시공사 대표(제이아이피 종합건설)로 집의 시공을 맡은 남편은 "이 집은 건물보다 먼저 축구장을 토지에 배치했다"며 "축구장의 최소 규격이 나오는데 우선적으로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아빠의 '깜짝 선물'을 받은 아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축구장 공사하면서 아들을 현장에 못 오게 했어요. 완성되면 보여주려고 했는데, 마감할 때쯤 결국 알아버렸죠. 엄청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더라고요. (황무현)" 축구 하느라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들은 집에 오는 주말마다 이곳에서 축구를 한다. 아들만이 아니다. 축구장은 집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어가 공을 차게 만드는" 집 안의 '핫플'이 됐다.
집 곳곳은 경기장 콘셉트를 극대화한다. VIP 관람석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2층 발코니가 대표적이다. 발코니 기둥은 경기장처럼 원형으로, 발코니 난간은 투명 유리로 제작해 2층에서도 축구장이 잘 내려다보이도록 했다. 축구장 옆에는 아빠가 직접 만든 국기게양대도 설치했다. 국기를 달아 경기장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다. 스페인 프로축구리그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때로는 스페인 국기도 걸린다.
가족은 이사 오기 전 인근의 타운하우스에 살았다. 학교, 편의 시설 등 주변 인프라를 이용하면서도 단독주택의 장점을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한 동에 네 채가 붙어 있던 타운하우스이다 보니 층간 소음 대신 '측간 소음'에 시달려야 했고, 적은 가구가 모여 살아 공동주택보다 오히려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가족은 결국 우리가 살고 싶은 집, 우리에게 맞춤한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이 집은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을 함께해 온 부부가 서로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축구장이 있다고 하면 다들 대저택인 줄 아시거든요. 저희 금수저인 줄 아시고. (웃음) 그런데 둘 다 아니에요. 스타디움이라는 콘셉트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지, 내부는 사람 살기 편하게 지은 지극히 실용적인 집이예요. 저희 신혼집은 40만 원 월셋방이었거든요. 펜션에서도 살아보고요. 이 집 짓는데도 땅까지 다 해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 정도 들었어요. 차곡차곡 쌓아 온 거라 더 소중한 집입니다. (이채민)"
내부는 실제로 단열, 효율적인 동선 등 집의 본분에 충실하다. 이층집은 1층은 주방과 거실, 서재가 있는 공용 공간으로, 2층은 가족의 방이 있는 생활 공간으로 나뉜다. 단독주택이지만 복층 구조 대신 1층과 2층을 분리하는 것을 택했고, 천장도 일반 아파트보다 5~7㎝ 높이는데서 그쳤다. "집은 집다워야 한다"는 남편의 생각에 따라 개방감보다 단열을 우선한 결과다.
남편의 고객이 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사무실로 쓰이는 서재는 현관에서 출입구를 아예 분리했다. 현관에 진입해 왼쪽 문을 열면 생활 공간이, 오른쪽 문을 열면 업무 공간인 서재가 나온다. 방도 흔한 게스트룸 하나 없다. 방 4개는 안방, 아이방, 드레스룸, 서재로 방치되지 않고 사람이 늘 오가는 공간이다.
다채로운 색과 창... 컬러풀 하우스
외부 공간과 시공은 남편이 담당했다면, 내부 공간과 인테리어는 아내가 전적으로 책임졌다. 공간마다 달라지는 벽면의 색도 아내의 솜씨다. 서재는 따뜻한 느낌의 톤 다운된 핑크, 안방은 버건디, 주방은 짙은 청록색이다. 메이크업 일을 했던 아내는 집이 하나의 색으로 통일되기보다는 그가 좋아하는 색으로 다채롭기를 원했다. 그는 "주방 같은 경우 머무르는 사람이 편하면서도 저녁에는 바 같은 분위기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숲과 바다가 연상되는 컬러로 선택했다"며 "지인들이 카페나 레스토랑 같다고 해줄 때 보람 있다"고 말했다. 아내는 벽면을 벽지 대신 도장으로 마감해 언제든 원하는 색으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집은 지루할 틈이 없다. 창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네모난 창도 있지만 박공 지붕 모양 창(1층 서재)도 있고, 동그란 모양 창(2층 테라스)도 있다. 아내의 말을 빌려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인 세 식구의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3개의 화장실도 1층은 남편 취향대로, 2층 거실 화장실은 아들 취향대로, 2층 안방에 딸린 화장실은 아내 취향대로 만들었다. 아내는 "단조로움보다는 개성 있는 게 좋다"며 "나이에 맞는 옷을 입어야 예쁜 것처럼 집도 그때그때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넣어야 빛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집에 유독 많은 필로티, 발코니 등 '지붕 있는 야외 공간'은 주택살이의 만족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햇빛과 비, 눈을 피하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2층 테라스는 동그란 창과 식물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흡사 '비밀의 정원' 같다. 경기장 VIP 관람석을 본뜬 2층 발코니에는 평상을 두고 맞은 편 수묵화 같은 천마산을 바라보며 차나 와인을 즐긴다.
열린 공간 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많이 머무르는 곳은 1층의 필로티다. 축구장 앞에 자리한데다 집을 드나들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위치에 소파를 두었더니 가족, 손님 모두 수시로 편하게 앉아 있다 간다. 아내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야외에서 음악 듣고 밥을 먹을 수 있어 좋다"며 "발코니까지 나가지 않고 창문만 열어도 근처 냇가 물소리가 들리는데, 이만한 자장가가 없다. 저절로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가족은 이 집에서 아이도, 부부도 지금처럼 나답게,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마 다음에 오면 주방이 머스터드색으로 바뀌어져 있을지도 몰라요. (웃음) 우리 가족처럼 집도 틀에 구애받지 않고 매번 옷을 갈아 입는 집, 변화하는 집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집에서 살아갈 날들을 상상하는 부부의 목소리에 설렘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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