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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죽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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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9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서 사람이 죽었다. 세탁기 수리기사 윤승환(44)씨다. '세탁기에서 전기가 느껴진다'는 고장 접수를 받고 출동했는데 손을 뻗어도 콘센트를 뺄 수 없었다고 한다. 건물이 낡아 전기 차단기를 내리기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좁은 공간에서 세탁기를 밀다 사고가 났다. 세탁기 뒤쪽의 급수 밸브가 파손되면서 튄 물에 감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9월 27일 오전 11시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에서 사람이 죽었다. 건물 외벽을 청소하던 A(29)씨다. 달비계(간이의자)에 앉아 작업을 하다 15층에서 추락했다. 몸을 지탱하던 작업용 밧줄이 아파트 외벽에 붙어 있는 돌출 간판 모서리에 쓸려 끊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 등을 크게 다쳐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6월 '노동' 분야를 처음 담당하게 됐을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 이렇게 많은 죽음을, 매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직전에 맡았던 보건복지 분야도 죽음과 무관한 곳은 아니었다. 작년 1월 시작된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2,500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이 일터에서 죽고 있었다. 지난해 산업현장에서의 사망자수는 2,062명, 올해 상반기엔 1,137명이 일하다 죽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엔 '표정'이 없었다. 매일 오후 6시께 방역당국은 하루 동안 사망한 코로나19 환자의 연령대와 지역을 정리해 보내줬다. 그 이상의 정보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마주하는 죽음에는 어쩔 수 없이 돋보기를 들이대야 한다. 어쩌다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를 알아야 하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윤씨는 열한 살과 두 살 아이를 둔 아빠였다. 사고 당일 8건의 수리를 배정받았으나 오후 2시까지 2건밖에 처리하지 못했다. 윤씨는 그날도 점심을 걸렀다. A씨도 어린 자녀가 있는 가장이었다. 사고가 난 날은 그의 첫 출근일이었다. 일당 30만 원을 받기 위해 163m, 49층 건물에 올랐다.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해 2시간을 일했다. 하루아침에 아빠를 잃은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사건을 들여다볼수록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윤씨의 동료 김문석씨는 "혼자 하지 않았다면 승환이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명이 함께 작업했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노조 측은 위험한 작업은 2인 1조로 하도록 회사(삼성전자서비스)에 요구해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A씨를 고용한 청소업체는 사고 사흘 전 한국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안전 장비(보조용 구명 밧줄)을 구비하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시정조치가 이뤄졌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고가 날 때마다 고용노동부는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위험 경보를 발령하지만 달라지는 게 없다. 올해만도 열두 명이 달비계에 앉아 일하다 추락해 숨졌다.
현장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은 '사람이 죽어야 그나마 언론이 관심을 가져준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 죽어도 도무지 바뀌지 않는 현실이다. 1년에 여섯 명이 아닌, 매일 평균 여섯 명이 죽어나가는 현실 앞에 점차 무덤덤해지는 세상이다. 이 죽음의 행렬을 누가,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사람이 먼저다'를 내세우며 대통령에 오른 분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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