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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 팔아 월세 냈던 가수 이랑 "가난에 왜 침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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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박수소리가 부쩍 늘어 문화계를 풍성하게 할 특별한 '아웃사이더'를 조명합니다.
"1월 수입이 42만 원이었습니다. 어렵게 아티스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상금을 주면 감사하겠는데, 상금이 없어서 이걸 팔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랑은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받은 '최우수 포크 노래상' 트로피를 즉석에서 경매에 부쳤다. 1분도 채 안 돼 트로피는 50만 원에 낙찰됐다. 당시 그가 살던 집 월세와 같은 금액이었다.
"그 돈으로 월세 냈죠." 4년이 흘러 최근 서울 마포구 망원동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이랑이 말했다. 그는 '신의 놀이'(2016)에서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라고 노래로 질문을 던져 트로피를 잠시 거머쥐었다. 명예만 강요받는 가난한 예술인, 한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청년의 절망, 고발 그리고 '악플' 테러. 이런 순간이 쌓이면서 이랑은 시대의 흉터 같은 존재가 됐다. 이 시대의 모순을 끄집어 내 노래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흔적이다.
그런 이랑이 '늑대'가 돼 돌아왔다. 2집 발매 후 5년 만에 3집 '늑대가 나타났다'를 8월에 냈다. 동명 타이틀곡에서 이랑은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고 읊조린다. 이번에 이랑은 늑대, 마녀를 자처해 어딘가의 부조리를 들춘다. "노래가 맨 앞에서 울며 싸우고 있다. 지금 가장 정직하고, 가장 아프고, 가장 치열한 음반"이란 평(음악의견가 서정민갑)이다.
벽 페인트칠이 비늘처럼 일어난 허름한 건물 2층. 이랑은 6명이 함께 쓰는 66㎡(20평) 남짓의 작업실을 쓰고 있다. "차 드실래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랑은 딸기향이 나는 차를 내왔다. 값이 비싸 그는 먹지 않고 손님에게만 내주는 차라고 했다. 70여 분의 만남, 이랑은 주저 없이 말했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빈곤으로 인한 폭동에 대한 노래다. 이곳저곳에서 찾아 가난에서 해방되지 않았나.
"처음으로 계약한 집은 월세 15만 원짜리 옥탑방이었다. 이사만 20번 다녔다. 재난지원금 25만 원 받고, 노동자다. 가사에도 있지만, 일단 내 친구 모두 가난하다. 속상한 게, 이 가난이 모두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꾹 참고 사는 사람이 많더라. 난 가난이 모두 내 탓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우리들의 가난은 사회 탓이다. 노력한다고 모두 집을 살 수 없으니까. 불평만 쏟아내지 말고 좀 더 열심히 하면 될거야라고 말하기엔 다들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를 추적하고 싶었다. 그걸 견디다 못해 다들 혼자 외롭게 살고, 어디에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세상에서 삭제되고 있는 거니까."
-함성을 지른다, 민중가요처럼.
"촛불집회 때 시민이 거리로 나와 저마다의 얘기를 마구 쏟아냈다. 그때 앞에 서서 노래하고 싶었다. 다 같이 부를 수 있는 곡이 있다는 게 얼마나 부럽던지. 그곳에서 불리는 것을 상상하면서 곡을 만들었다. 거리에서 '철수, 영희가 나타났다'식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넣어 세상에 '내가 나타났다'는 걸 알리길 바랐다. 비혼,퀴어, 페미니즘을 노래하는 합창단이 함성을 보태줬다. 사회에서 소외된 그분들이 소리를 내주는 게 내겐 의미가 컸다."
-그간 이랑은 발언자였다. 그런데 '잘 듣고 있어요'에서 갑자기 청자가 된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날 보러오는 동포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에게 나란 존재가 힘이 되는 것 같더라.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즈음, 듣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공연 후 사회적 약자들이 내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고. 1~2집의 원동력이 분노였다면, 3집은 연대다."
-'안티 이랑'도 적잖다. 듣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DM(SNS 메시지)으로 욕 많이 온다. 그런데 보고 싶은 거만 보면서 살고 싶진 않다. 여러 재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시대다. 내게 혐오적인 무리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런 이들도 보였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으니까. 당연히 피로감 있고 무섭다. 그러면서도 내가 얼굴 드러내면 '연대해 줄 사람도 분명 있을 거야'란 희망도 품는다."
-'듣고 있나요'가 후반에 느닷없이 '수궁가'처럼 진행된다.
"판소리를 2년 배웠다. 처음엔 소리 지르려고 시작했다. 화를 분출할 곳이 필요했으니까. 지금은 코로나19로 못 가지만. 판소리를 배우면서 술술 흘러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수궁가'를 특히 좋아했다. 역경과 고난에 토끼가 위기 대처를 너무 잘하잖나."
-판소리의 여성 서사가 지금 들으면 다소 보수적일텐데.
"판소리 선생님이 60대 여성분이었다. 민요에 여성혐오적인 가사가 있으면 '이 대목 이런 내용이니 부르지마'라고 했다. 다른 가사로 바꿔 불러도 된다면서."
이랑은 암 선고를 받은 친구를 돕기 위해 2019년 '엘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라는 이름의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랑을 포함한 30명의 예술가가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 동안 돌아가며 글을 쓰고, 독자에게 발송하는 서비스였다. 이랑은 '유대'란 뜻의 '본드(Bond)'란 단어를 좋아한다. 그는 만나지 않으면 서로 묶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외부 기고를 자주 하는 그는 직접 찾아가 원고를 건넨다. 커피믹스를 타 함께 마시며 20여분 함께 수다를 떠는 게 그의 소소한 취미다. 그런 이랑은 '보노보노'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미키오와 펜팔 친구다. 이가라시는 이 앨범 추천사를 이렇게 적었다. "이랑의 음악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마치 강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넘실거릴 듯 가득히 채워진 물. 그 안에는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그렇게 어딘가를 향해 흘러간다."
-'보노보노' 작가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이가라시씨의 고향으로 공연을 하러 갔고, '보노보노'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어려서부터 너무 좋아했다. 거기서 우연히 처음 만났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서로 공통점이 많더라. 그래서 자본주의 비판 등 다양한 주제로 서로 편지를 2년여 동안 주고받았다. 그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음악에 늘 노동이 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혁명은 자기 이름을 제대로 불리게 하는 것이라고 하잖나. 켄 로치 감독을 너무 좋아한다. 난 부자가 아니라 평생 일해야 하는 운명이다. 내 직군은 노동의 단가가 높지 않아, 일을 많이 해야 한다. 근데 일을 많이 하면 화가 난다, 피곤하니까. 하, 악순환이다."
-에세이 '괄호가 많은 편지'에 재난영화를 좋아한다고 썼더라.
"지금 세상과 똑같으니까. 지진 쓰나미 핵폭발 팬데믹 등 다양한 재난 상황에 놓여 있잖나. 그 역경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게 재난 영화고. 그래서 즐겨 본다. 최근엔 '핸드 메이즈 테일'(넷플릭스)을 인상 깊게 봤다."
이랑은 3집을 자비를 털어 만들었다. 말 그대로 독립적인, 인디펜던트 작업이다. 그는 "창작 지원 사업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이랑이 빨간색 커버로 된 앨범을 건넸다. '환란의 세대' 등 총 9곡이 실린 CD의 온라인 판매가는 2만 3,800원. 그의 작업실에 가기 직전 은행에 들러 3만 원을 뽑고 준비한 흰 봉투에 돈을 담아 그에게 건넸다. 예술가지만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에게 그것도 인터뷰 날 막 나온 앨범을 공짜로 받을 수는 없었다.
이랑을 만나고 난 뒤 약 2주 후, 비보가 날라왔다. 이랑은 건강에 탈이 나 곧 수술대에 오른다고 한다. 그는 SNS에 이렇게 남겼다. "과로의 아이콘으로 살지말라는 신호 같아요. 앞으로 휴식을 직업처럼 열심히 가져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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