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의료사고 33건 '죽음의 의사'... 돌팔이인가 살인마인가

입력
2021.10.02 10:00
19면

<55> 웨이브 '닥터 데스'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닥터 데스'는 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수술을 이어가던 신경외과의 크리스토퍼 던치와 그를 멈추기 위해 나선 동료 의사들의 충격 실화를 다룬 8부작 시리즈다. 웨이브 제공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닥터 데스'는 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수술을 이어가던 신경외과의 크리스토퍼 던치와 그를 멈추기 위해 나선 동료 의사들의 충격 실화를 다룬 8부작 시리즈다. 웨이브 제공

2년간 의료사고 33건. 누가 봐도 이상하고, 고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2012년, 텍사스주 댈러스의 신경외과의사 크리스토퍼 던치는 동료 의사들에게 고발당하고 재판까지 가게 된다. 이후 던치는 미국 언론에서 '닥터 데스'라 불린다.

크리스토퍼 던치는 '신경외과의 미래'라고 불릴 정도로 촉망받는 의사였다. 절개 부위를 최소화해 흉터와 통증, 합병증 발생률도 낮은 최소침습 수술의 일인자로 평가받았다. 미국 최고의 병원 중 하나인 베일러 플래노 병원에서 스카우트한 이유다. 그러나 수술에서 연달아 사고를 일으키고 1년 만에 해고된다. 댈러스 메디컬 센터로 옮겨 세 번의 수술을 했는데 모두 문제가 생긴다. 메디컬 센터의 의사 로버트 헨더슨은 이전에 던치의 수술에 참여했던 의사 랜들 커비에게 상의하고, 던치의 만행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죽음의 의사 '닥터 데스'라는 별명을 갖게 된 크리스토퍼 던치는 2월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956회에 소개되며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화면 캡처·웨이브 제공

죽음의 의사 '닥터 데스'라는 별명을 갖게 된 크리스토퍼 던치는 2월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956회에 소개되며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화면 캡처·웨이브 제공

'닥터 데스'는 고발당한 후 던치의 행적과 그의 과거를 병행하며 보여준다. 던치는 어떤 인간일까? 재판에서 변호인이 주장한 것처럼, 제대로 수련의 과정을 수행하지 못한 무능하고 실력 없는 의사일까? 아니면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으며, 타인의 목숨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나르시시스트일까?

대학 시절 풋볼을 했던 던치는 주전에서 탈락하고 장학금을 받지 못하자 의과로 진로를 바꾼다. 아버지는 던치에게 엄한 편이었다. 사고로 죽은 동생에게 기대를 했었고, 던치에게는 큰 믿음이 없다. 하지만 던치는 영리하고, 추진력이 있으며, 사람들을 휘어잡는 능력이 있다. 던치의 의과 시절은 화려했다. 교수의 신임을 받아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도 우수하게 마쳤고, 줄기세포로 디스크 치료 연구를 하는 스타트업 디스크제닉스도 세운다.

사생활은 복잡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인 제리 서머스와 어울리며 늘 마약과 술에 취해 있다. 고된 수련의 과정을 거치며 마약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던치는 과했다. 연인도 그 이유로 떠나간다. 던치는 제리와 함께 간 스트립클럽에서 스트리퍼 웬디에게 한눈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던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타입이다. 수시로 거짓말을 하고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극심한 나르시시스트다.


던치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진심으로 믿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다. 웨이브 제공

던치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진심으로 믿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다. 웨이브 제공

크리스토퍼 던치는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웬디와 싸우다가, 던치는 "나는 신적인 존재야"라고 내뱉는다. 동료이자 애인이었던 킴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는 "당신은 세상 인간과 나 사이의 유일한 존재야. 나는 세상의 단 하나뿐인 존재야. 냉혹한 살인마야"라고 자찬한다. 수사나 은유가 아니라 진심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기에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너무 위대하기에 소수에게만 이해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타인과의 관계는 오직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한에서만 유지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을 얻어내며,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나르시시스트를 처음 만나면 자신감과 카리스마, 거침없는 스타일에 반하는 사람들이 많다. 던치를 무한 신뢰했던 환자들도 그랬고, 웬디와 킴이 그랬고, 제리 서머스도 마찬가지였다. 동네에서 마약을 팔던 제리는 던치의 회사에서 마케팅 이사가 된다. 제리는 늘, 던치가 자신이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연속으로 수술에 실패한 던치가 주춤한 것처럼 보이자, 제리는 자신의 목 수술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제리는 반신불수가 된다. 자신이 허상을 좇았음을 알게 되지만 차마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던치를 숭배했던 과거를 모두 부정해야 하니까.


던치는 수술실에서 환자들의 목숨을 관장하는 신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웨이브 제공

던치는 수술실에서 환자들의 목숨을 관장하는 신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웨이브 제공

던치의 과거와 현재를 보면서 궁금해진다. 던치는 나르시시스트이고, 소시오패스다. 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수술 당시에는 어땠을까? 단순히 미숙한 실력 때문에 생긴 사고일까? 아니면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위해를 가한 것일까? 대학 시절의 연인은 그가 연구를 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밀하게 집도를 하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헨더슨과 커비는 던치의 수술이 도저히 실수로만 치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뼈와 근육을 그냥 잘라버리고, 엉뚱한 곳에 나사를 박고, 암이라며 멀쩡한 조직을 떼어낸다. 신경외과의라면 너무나 당연하고 간단한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크리스토퍼 던치는 수술실에서 환자들의 목숨을 관장하는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의사는 인간의 몸,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약을 잘못 처방하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고, 수술실에서는 특별한 처치 없이 약간의 감염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다. 나의 손길 하나로 인간의 목숨이 왔다갔다한다. 나르시시스트의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일이 된다. 아무리 돈이 많거나 유명한 사람이라도 수술실에 들어오면, 내가 그의 목숨을 결정하는 신이다. 인간의 생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능감을 맛본다는 것은 나르시시스트에게 최고의 즐거움이자 마약이지 않을까.


'닥터 데스' 포스터. 웨이브 제공

'닥터 데스' 포스터. 웨이브 제공

수술 과정에는 담당의 말고 누구도 개입할 수 없다. 어처구니없는 수술을 하는 던치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여 다시는 그의 수술에 함께하지 않겠다고 한 의사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증언하지 않는다. 고발하지도 않았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고, 정치적 비겁함이 있고, 이윤을 추구하는 병원의 비열한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신경외과의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고, 해고를 하더라도 평판을 떨어트리면 병원의 손해가 된다. 던치가 다른 병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준다.

던치 사건 이후인 2019년 미국에서 의료과실로 5회 이상 벌금을 납부한 의사는 8,600명이고, 그중 4분의 3은 아무 징계도 없었다. 의료사고는 암과 심장마비에 이은 미국 최대의 사망 원인으로 매년 4만 명에서 최대 44만 명이 사망한다. 환자 10명 중에서 1명꼴로 진료 중에 상해를 입는데, 제대로 경위를 밝혀내고 처벌만 이루어진다면 절반 이상 예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어렵다. 던치가 종신형을 받았어도, 베일러 병원은 아무 처벌도 벌금도 없었다.


'닥터 데스'의 진짜 주인공은 던치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료 의사 커비(사진)와 헨더슨이다. 웨이브 제공

'닥터 데스'의 진짜 주인공은 던치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료 의사 커비(사진)와 헨더슨이다. 웨이브 제공

'닥터 데스'의 주인공은 사실 던치가 아니라 헨더슨과 커비다. 그리고 던치 사건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유죄를 받아낸 여성 검사 미셸 슈거트. 그들이 원한 것은 단지 던치의 처벌이 아니다. 던치가 다시 메스를 잡고 수술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희생자가 계속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들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치열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한국이라면 던치의 의사 면허는 정지나 취소되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이 그의 면허를 정지해야 한다고 고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리 수술이 아니었다면 처벌받는 경우도 없었을 것이다. '닥터 데스'를 보면서 한국의 상황을 떠올렸다. 환자의 생명을 최선으로 믿는 의사들이 압도적인 다수이지만, 소수의 '닥터 데스'는 한국에서 활개치고 다닌다.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도 그들은 의사이니까. 죽음의 신이니까.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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