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은 벨루가 하루빨리 바다로 보내주세요"

입력
2021.10.01 11:00
수정
2021.10.0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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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벨라와 루비의 방류 서둘러 달라는 '리틀 그레이'

편집자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 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핫핑크돌핀스는 최근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홀로 살고 있는 벨루가 '벨라'의 모습을 공개했다. 이들은 벨라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밝혔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저는 아이슬란드 헤이마이섬 벨루가(흰고래) 바다쉼터(생크추어리)에 살고 있는 벨루가 '리틀 그레이'(14세 추정∙암컷)입니다. 세계 첫 벨루가 보호구역인 이곳에는 저와 또 다른 벨루가인 '리틀 화이트'(14세 추정∙암컷)가 살고 있는데요. 저와 리틀 화이트는 어릴 때 러시아 바다에서 붙잡힌 후 2011년 중국 상하이의 한 수족관으로 옮겨져 쇼에 동원되어 왔습니다.

영국 테마파크업체인 멀린 엔터테인먼트가 상하이 수족관을 인수하면서 벨루가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로 결정했고, 2019년 6월 아이슬란드에 바다쉼터를 만들었지요. 동물보호활동가들과 시민들은 아이슬란드 바다쉼터가 다른 나라 수족관 고래류를 위한 롤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수족관에는 300마리가량의 벨루가가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에 있는 세계 첫 벨루가 생크추어리에 살고 있는 리틀 그레이와 리틀 화이트. 시라이프트러스트벨루가생크추어리 홈페이지 캡처

한국도 아이슬란드 바다쉼터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실제 한국 수족관 업체와 동물단체들도 아이슬란드 바다쉼터를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인 시라이프트러스트와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최근 한국 수족관 내 벨루가 벨라(12세∙암컷)루비(11세∙암컷)가 혼자 살고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동물단체들의 우려가 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외모는 귀엽지만 냉전시대에는 러시아 첩보작전에 이용되기까지 했을 정도로 지능이 뛰어나고 복잡한 사회관계를 맺으며 집단생활 하는 벨루가에게 단독 생활은 치명적입니다. 다른 고래류이긴 하지만 돌고래체험시설인 마린파크에 홀로 남은 큰돌고래 '화순이'가 세상을 뜬 것도 그만큼 스트레스가 컸다는 걸 보여줬지요.

벨라는 2019년 10월 벨루가 '벨리'가 사망하면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혼자 생활한 지 2년이 되어갑니다. 루비는 올해 5월 벨루가 '루오'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쿠아플라넷 여수에 혼자 남게 됐지요. 문제는 벨라와 루비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아쿠아플라넷 여수에서 다른 수컷들의 공격으로 좁은 뒤편 수조에서 지내던 루비. 동물자유연대 제공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은 벨리가 사망하면서 벨라의 자연 방류 계획을 발표했지만 벨라는 지금도 좁은 수조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측은 한국일보에 "지난해 7월부터 현재까지 4차례에 걸쳐 방류자문회의를 진행했다"라며 "벨라 건강평가 등을 마치고 국내외 방류지 선정을 다각도로 검토했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아직까지 방류지 선정을 위한 작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방류작업 논의가 지연됐다는 이유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방류 결정에 진정성이 없다고 보고 지난달 16일부터 23일까지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앞에서 벨루가 전시 즉각 중단과 조속한 야생 방류 이행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또 벨라를 관찰한 결과 수조 안에서 하염없이 빙글빙글 돌거나 죽은 듯이 가만히 떠 있는 이상행동이 목격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체험에 동원되다 최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마린파크 화순이. 마린파크 블로그 캡처

루비의 경우는 아예 방류 결정조차 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루비의 소유자는 해양수산부 산하 '2012 여수세계박람회 재단'이고, 관리는 아쿠아플라넷 여수가 맡고 있습니다. 아쿠아플라넷 여수 측은 방류계획에 대해 “해수부, 2012 여수세계박람회 재단과 논의 중”이라고만 밝혔습니다.

벨루가는 이미 한국 정부가 방류에 성공했던 남방큰돌고래와 다르게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러시아 바다로 돌아가거나 아이슬란드 바다쉼터, 내년에 지어질 캐나다 바다쉼터가 대안으로 꼽힙니다. 이는 다른 나라 정부나 연구소, 보호단체 등과의 협력이 필수적이고 현실적으로 빠르게 진행하기 어려운 것도 맞습니다.

국내 수족관 고래류 현황. 핫핑크돌핀스 제공


그렇다고 한국 정부와 기업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아닙니다. 벨루가 방류를 위해선 러시아 틴로 연구소, 아이슬란드 바다쉼터, 캐나다 바다쉼터 운영자 측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핫핑크돌핀스와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등에 따르면 캐나다 노바스코샤에 보호구역을 짓고 있는 고래생크추어리프로젝트 측은 한국 벨루가 인수에 적극적 의사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에 내년에 지어질 바다쉼터 조성지. 고래생크추어리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벨라와 루비 역시 화순이처럼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벨라와 루비가 저와 리틀 화이트처럼 수족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와 수족관 업체들이 하루빨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길 촉구합니다.

벨루가 '벨라'와 '루비'의 방류를 위해 대책 마련을 촉구한 벨루가 '리틀 그레이'가 낸 청원에 동의하시면 포털 사이트 하단 '좋아요'를 클릭하거나 기사 원문 한국일보닷컴 기사 아래 공감 버튼을 눌러주세요. 기사 게재 후 1주일 이내 500명 이상이 동의할 경우 해당 전문가들로부터 답변이나 조언, 자문을 전달해 드립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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