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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협상 카드로 쓰는 여자? '오징어 게임'의 위험한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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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본 글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화제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봤다. 빚에 허덕이며 삶의 절벽 끝으로 떠밀린 456명의 사람들이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한다는 내용이다. 한 명이 죽을 때마다 천장에 달린 거대한 돼지 저금통에 1억 원이 짜랑짜랑 쌓인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의 승자는 피가 묻은 456억 원을 손에 쥐고 게임을 떠난다.
밤늦은 시간까지 드라마를 정주행했으니 재밌었다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던 미장센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아쉽고 답답한 부분도 많았다.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정을 담아 말하자면, 나의 경우 오징어 게임이 전제하는 세계관과 여성을 바라보는 태도가 불편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2021년에 여전히 이런 방식으로 여성 캐릭터를 그리다니 놀랍다. 여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많이 말해왔는데…. 공부를 하나도 안 한 것인가? 한미녀(김주령)의 캐릭터는 너무 기괴하고 작위적이라서 살아있는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미녀는 "못하는 것 빼곤 다 잘한다"면서 무리의 가장 힘 센 자에게 섹스를 제공하고 안전을 약속받는다(곧 배신당한다).
극한 상황에 처한 여성이 그토록 기꺼이 섹스를 안전과 교환할 것이라는 발상은 남성의 상상이다. 실제 상황에서 여성은 오히려 섹스 때문에 안전을 위협받는다. 살아있는 여성이라면 힘 센 남성에게 섹스해주겠다며 먼저 다가가기보다는 공격성이 극에 달한 남자들 사이에서 매일 밤 강간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떨 가능성이 훨씬 높다.
자라면서 오징어 게임이 한미녀를 그리는 방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여성을 그리는 소위 팜 파탈 서사를 수도 없이 접했다. 이러한 서사들은 여성의 성(性)을 마치 여성이 가진 무기인 것처럼 다루지만, 실제의 여성은 자신이 가진 성(性) 때문에 유리해지기보다는 위험해지는 순간을 훨씬 빨리, 자주 접한다. 팜 파탈 서사는 남녀의 불균형한 권력 속에서 여성이 처하는 성적 착취를 가리고 이러한 착취의 현장을 마치 여성이 주도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나는 이러한 서사가 여성을 강간하면서도 자신의 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이것은 너(의 매력) 때문이라고, 그리고 너도 원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남성의 마음에서 빚어진다고 본다. 이 같은 서사는 자꾸만 세상 곳곳에 전염되고 또 너무도 해로워서, 성폭력 피해자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피해 당사자까지 스스로를 의심하고 검열하게 만든다. '그 일이 나 때문은 아니었을까?'
둘째로, 내가 아는 중년의 여성들은 한 남자에게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맡겨놓지 않는다. 그녀들은 그들이 얼마나 못 미더운 존재인지 애저녁에 깨닫는다. 한미녀가 마치 논개처럼 장덕수(허성태)를 껴안고 같이 죽는 장면에서 탄식했다. 장덕수를 업어치기해서 죽인 뒤 우승자가 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복수를 위해 죽였으면 죽였지,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함께 죽을 만큼 장덕수가 한미녀의 삶에서 중요한 존재였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불행한 과거를 가진 여성 청년이나 언제나 효도할 타이밍을 놓치는 불쌍한 어머니 등 단편적이고 도구적인 존재로만 등장한다. 마지막 화의 제목 '운수 좋은 날'도 무척 상징적이다. 현진건의 단편 소설 운수 좋은 날은 우리가 오랫동안 매 맞다 죽은 아내의 입장이 아니라 그를 때린 가정폭력범의 관점에서 읽도록 배운 소설 아닌가(2021년 9월 11일 한국일보 드라마 'D.P.'에는 분개하면서, 왜 여자 때리는 남자는 봐주나 참고). 성기훈(이정재)의 어머니나 김첨지의 아내나 중년 남성의 자기연민과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할 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기보다는 현실은 이렇다고 믿는 이의 신념을 드러낸다. 오징어 게임 역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만든 이가 상상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믿음을 드러낼 뿐이다.
자연은 원래 그렇게 엄혹하지 않느냐고? 그렇지 않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는 경쟁뿐 아니라 협력과 공생과 우정을 통해 진화해 왔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보는 사람들에 의해 오랫동안 오해받아 왔다.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최적자(the fittest)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개념은 원래 다윈이 고안한 표현도 아니고 그의 전도사를 자처한 허버트 스펜서의 작품이다. 다윈은 자신의 많은 저서에서 생존투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최적자가 돼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양한 예시를 통해 보여줬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최적자 생존이 아니라 '꽤' 적자생존에 가깝다. 최재천 교수는 최근 번역된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추천의 글 '손잡지 않고 살아남는 생명은 없다'에서 이렇게 쓴다. "가장 잘 적응한 개체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제거되는 게 아니라, 가장 적응하지 못한 자 혹은 가장 운이 나쁜 자가 도태되고 충분히 훌륭한, 그래서 서로 손잡고 서로에게 다정한 개체들이 살아남는 것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다양하고 정교한 우정을 발달시켜 왔는지를 보여준다. 장덕수처럼 가장 덩치 크고, 가장 힘세고, 가장 비열하면 잘 살아남을 것 같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공격성이 높을수록 (진화적 관점에서) 비용이 많이 들고, 싸워서 다치거나 죽을 확률도 높다. 저자들은 다정함이 자연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그 속성이 너무나 강력하게 유리한 생존 전략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다윈의 진화론을 무한경쟁을 옹호하고 약자혐오의 근거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협력과 공생은 생명체의 오래된 전략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진화를 설명할 때 자연선택이 아니라 공생을 그 중심에 둔다. 마굴리스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업적은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의 기원을 밝힌 '세포 내 공생설'이다. 세포 소기관 중 하나인 미토콘드리아가 처음부터 해당 세포에 있던 것이 아니라 외부에 떠다니는 박테리아로 존재하다가 더 큰 단위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 힘을 합쳐 공생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는 서로 다른 두 개체가 경쟁한 뒤 하나가 선택된 것이 아니라 두 개체가 마치 한 개체처럼 협력해 생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진화적 경로였고, 그래서 기존 생물학계를 놀라게 했다. 말하자면 한미녀가 장덕수를 꿀꺽 삼켰는데(!) 한미녀 내부에서 장덕수가 소화되지 않은 채로 남으면서 서로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새로운 한 명의 개체가 탄생한 셈이다.
또 다른 재밌는 예도 많다. 포르투기스 맨오워(Portuguese man o’ war)라고 부르는 작은부레관해파리(또는 고깔해파리)는 해파리처럼 보이나 해파리는 아니며 하나의 유기체가 아니라 서로 독립된, 그러니까 기원이 다른 여러 부분의 모음으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다. 각각의 부분들은 이동, 생식, 독성 물질 분비 등 제각각 역할에 충실하면서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살아간다. 말하자면 한미녀, 장덕수, 성기훈이 딱 붙어서 각자 잘하는 것을 하며 평생 살아가는 셈이다.
지구에 서식하는 육상동물 개체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개미 역시 수없이 많은 개미 개체군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사회로 기능하는 초유기체 동물이다.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은 우리 자의식에 속해 있을 뿐 아니라 음식물을 소화하고 비타민을 합성하는 등 몸의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미생물 군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생물군의 협력 없이 인간은 생존할 수 없다. 린 마굴리스는 그의 책 '공생자 행성'에서 우리는 여러 종으로 구성된 공생 발생적 존재이며, 다중 조성이 우리 종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떠도는 많은 이야기들은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 사실 안에 이미 가치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정해진 인간 본성이란 없다. 인간에게는 잔인한 본성도 있고 다정한 본성도 있다. 이 중 어떤 것을 발견하고 다루고 재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것이 사람들 사이의 믿음을 형성하고, 믿음은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 연대할 것이라 믿으면 가진 것을 나누고 어두운 때에도 편히 잠들 수 있겠지만 같은 상황에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고 적대할 것이라는 믿음은 칼을 숨겨두고 필요한 양식을 몰래 빼두며 정보를 감추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을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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