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한전

입력
2021.09.30 04:30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10년 호주 남동부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바이롱 석탄광산 사업에 뛰어든 한전은 환경과 현지 주민 동의 등을 허술하게 예단하면서 8,269억 원 규모의 투자금이 손실될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 한국전력 본사. 연합뉴스

자그마치 8,269억 원이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허공으로 날아갈 판이다. 뾰족한 대책도 없다. 마지막까지 호소한 법정에서도 잇따라 쓴맛만 봤다. 지난 2010년 호주 남동부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바이롱 석탄광산 사업에 뛰어든 이후, 좌초 위기에 빠진 한국전력의 해외 자원 개발 프로젝트의 실상이다. 최근 호주 법원은 한전에서 제기한 바이롱 석탄 사업 개발 불허에 대한 행정무효소송 2심을 기각했다. 이 사업 개발은 앞서 NSW주 토지환경법원과 항소심에서도 기각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현지에서만 세 번째 불허 판정을 받은 셈이다. 온실가스 영향과 지하수 오염 등을 포함한 환경적인 부분이 고려된 탓이다.

당초 이 사업은 바이롱 밸리 광산 부지 내 4억2,300만 톤 규모로 추정된 석탄 매장량을 염두에 두고 추진됐다. 이곳으로부터 발전용 유연탄을 조달하겠다는 한전 측의 계산에서다. 하지만 2012년 호주 주정부의 신광업정책 도입 과정에서 인허가가 지연됐고, 현지 환경보호단체들의 극렬한 반대도 뒤따랐다. 결국 이런 현지의 부정적인 기류가 법정 판결로 이어진 모양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드러난 한전 측의 안이한 행태다. “광산 매입 이후, 갑자기 환경 이슈가 부각되면서 현지 사정이 악화됐다”는 한전 측의 항변을 100% 수용한다고 해도 책임론에서 피해갈 순 없다.

우선 호주 국가 특성상 광산 개발에 필수적인 환경과 현지 주민동의 등을 허술하게 예단하면서 사업부터 밀어붙인 게 화근이었다는 지적이다. 기본적인 현지 사정 파악조차 소홀했다는 진단이다.

무엇보다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최소한의 ‘보험성 대응책’조차 사실상 전무했다. 세 번이나 ‘퇴짜’를 받은 마당에 한전 측은 지금에서야 “향후 계획을 검토해보겠다”는 한가한 답변뿐이다. 그 사이, 지난해부터 현지 한전 법인의 금융부채에서 나오는 110억 원대의 이자만 꼬박꼬박 빠져나가고 있다. 세계적인 대세로 자리한 ‘탈(脫)탄소-친환경’ 분위기를 감안할 때, 바이롱 석탄광산 사업 고수는 무리다. 바이롱 밸리 광산의 가치 또한 밑바닥까지 떨어질 공산이 크다. 최악의 경우엔 헐값으로 넘길 수밖에 없단 얘기다. “바이롱 광산 매각 목소리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고 전한 한전 내부 관계자의 귀띔이 예사롭지 않다.

스마트폰 액정화면조차 파손 위험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 놓는 게 일반적이다. 하물며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면서 만약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는 건 비상식적이다. 더구나 한전은 국내 최대 공기업이다. 한전의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의 혈세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리 점쳐 본 한전의 올해 성적표에선 한숨이 더해진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조9,515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던 한전은 올해엔 유가 상승 여파 등에 따라 3조2,677억 원으로 적자 전환될 조짐이다. 이 와중에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실로부터 전해진 ‘한전 전체 직원 8명 가운데 1명은 억대 연봉자’란 소식은 허탈감을 더해준다.

지금까지 진행된 정황만 따져보면 한전의 수천억 원 손실은 불가피하다. 손실을 최소화시킬 최적의 방안을 찾는 게 급선무이지만 더 중요한 건 보다 확실한 재발 방지책이다. 언제까지 어설픈 사업 추진에서 비롯된 한전의 손실을 국민 세금으로 충당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국민의 호주머니가 한전을 위한 화수분은 아니다.

허재경 산업1팀장


허재경 산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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