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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신고에 "전근 갈래, 그만 둘래?" 이런 회사, 처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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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 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한국일보>
입사 한 달 정도 됐을 때였습니다. 그 사람이 면담하자며 자기 방 소파로 데려가 앉히더니 문을 잠갔어요. "나랑 하면 편하게 다닐 수 있다" "나한테 잘 보이면 앞으로 계속 일하게 해줄게"라면서 계속 성관계를 요구했습니다. 뿌리치고 문고리를 잡으려는 절 막아서곤 "이대로 나가면 어떻게 될지 잘 생각해 봐"라고 했어요.
일용직만 전전하던 저에게 이 직장은 간절했습니다. 비록 계약직이어도 4대 보험이 되는 곳은 처음 다녀봐요. 큰 문제 없으면 1년씩 계약이 연장된다고도 했고요. 정착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 사람은 제 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인사권자예요. 그런 사람이 다시 생각해보라니까 순간 '지금 나가면 해고인가?'라는 생각에 그대로 얼어붙었어요.
그 날의 성폭행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무실이 허전해지는 교대시간만 노려 또 일자리로 겁박하고 성폭력을 저질렀죠. 처음부터 대처를 잘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어요. 얼마 뒤 비슷한 상황이 되자 대처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강하게 밀어내고 실랑이를 벌였더니 그 사람이 "일단 나가 봐"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지독한 괴롭힘이 시작됐습니다. 원래 다른 근무자가 한 달에 한 번꼴로 하는 일을 갑자기 저한테 매일 시켰어요. 코로나19 음성 판정이 나오면 본사 지침은 출근인데, 저한테만 다짜고짜 2주 동안 무급으로 나오지 말래요. 바뀐 업무 일정표를 저한테만 안 알려주곤 마음대로 출퇴근한다며 윽박질렀습니다.
그래도 버텼어요. 제가 폭발한 건 가족을 건드린 협박 때문입니다. 또 성관계를 요구하는 그 사람한테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더니 "네 아들이 다니는 직장 홈페이지에 나랑 성관계했다고 올릴 거야"라고 했어요. 주변 사람들한텐 뭐라고 했는지, 동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어요. "왜 관리자를 힘들게 하냐" "네가 혼자 사니까 꼬리 친 거 아니냐"는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나만 숨기고 참는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면접 때 봤던 회사 이사에게 성추행 정도로만 알렸지만 누구 편도 들어줄 수 없다고 답하더군요. 제가 편들어 달라고 했나요? 창피함을 무릅쓰고 성폭행 사실까지 털어놨는데도 그 상사를 감싸고 돌았어요.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내용증명을 그 상사 이름과 회사 앞으로 보냈더니 그제야 반응이 오더군요. "이사 심부름으로 왔다"던 회사 고충처리담당자란 사람은 "그 사람을 해고하면 당신도 다니기 어려울 거다"면서 2시간이나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점을 가리키며 "여기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어요. 지역담당자라는 어떤 부장님은 절 찾아와선 "실업급여 받게 해줄 테니 한 달 동안 유급휴가 받고 계약 종료하자"고 했어요.
제가 원한 건 상사의 사과와 분리조치였어요. 그런데 조용히 넘어가려는 회사 때문에 전 두 번 무너졌습니다. 상사를 형사고소하긴 했지만 멀쩡히 회사 다니는 꼴을 볼 수 없어요. 회사에서 별다른 조치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사도 상사지만, 배신감을 들게 한 회사도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A씨(50대 여성·서비스업 계약직)
하루하루 회사에서 행위자를 마주쳐야 하고, 오히려 내가 그만둬 주길 바라는 노골적인 회사의 태도에 얼마나 힘이 드셨어요.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는 행위자에 대한 조치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수행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압박하고 나가게 유도하는 건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6항 '사업주는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 등에게 본인 의사에 반하거나 부당한 인사조치 등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를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A씨가 고충처리담당자와의 면담을 통해 회사 내 고충처리 접수를 한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사내 문제 제기가 잘 처리되지 않았을 때 신뢰는 더 크게 무너지게 되죠. 심지어 피해자가 스스로 그만둬 주길 원하는 게 느껴지면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은 훨씬 커집니다. 하지만 내부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고용노동부 진정을 통해 사업장이 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은 부분에 대한 시정과 처벌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행위자 조치와 징계, 분리 등을 하도록 하고, 나아가 추후 재발방지를 요청할 수 있어요.
진정을 넣기 전, 가장 중요한 단계는 '진정서 작성'입니다. 진정서를 쓸 때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내가 겪은 일들을 객관적으로, 감정과 구분해 정리할 것'을 기억하세요. 보통 피해자들은 이런 진정서를 써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건을 설명하는 내용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섞어서 쓰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판단에 혼란을 주거나 사건 파악을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사건에 대한 설명 문단과 내 감정에 대한 설명 문단은 구분하는 게 좋습니다. 행위자가 했던 행위를 서술하고, 그 내용과 분리해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건너기 싫었다' '회사에서 마주쳤는데 너무 놀라서 화장실로 숨었다'는 식의 구체적인 그 당시 감정을 표현하시면 됩니다.
이 진정서를 누가 보고, 나는 왜 제출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진정서를 읽는 건 담당 근로감독관이고, 그도 사람이거든요. 사건이 한눈에 파악이 되고 피해사실이 구체적으로 보여야 피해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고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피해자들은 진정서를 작성하면서 억울한 마음,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게 되고 그 감정이 거부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거든요. 이미 회사 태도로 신뢰가 무너졌는데 이번엔 잘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신고 후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느낍니다.
그런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나의 피해를 어떻게 잘 입증할 것인지, 누구라도 내 편을 들어줄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하세요. 근로감독관 조사에 출석하기 전에 따로 경위서를 적어 두거나 증거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여전히 진정서 작성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전문 상담기관에 도움을 요청해 보세요.
진정 접수 후 고용노동부 조사가 시작되면 대부분 회사는 압박을 느낍니다. 고용노동부 조사기간 중 의무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회사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A씨는 동료들로 인한 심리적 고통도 클 겁니다. 무시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아 봐도 외면하는 동료들 때문에 느끼는 고립감과 쓸쓸함, 외로움은 결코 가볍지 않죠. 사내 고충처리 절차를 믿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다시 시도해 보는 게 또 다른 압박이 될 수 있습니다. 괴롭힘 행동에 대한 중단을 요청하고 고충처리 신청을 이메일로 해 증거를 남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진정을 내고 사내 고충처리기구를 찾아가는 행위가 당장 대단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어떤 시도를 했다, 피해를 막아보려 했다는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애써 무시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부정적 감정에 빠지기보다는 어떤 대응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위안이 되기도 하거든요. 나중에 더 큰 피해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외부 심리상담소를 찾아가 보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심리상담은 사건을 객관화하고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마음을 정리해 보는 과정입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를 포함해 다양한 기관에서 운영하는 심리정서 치유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보세요. 나 혼자 지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손길을 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말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해결책이 궁금하시다면 누구라도 제보를 해주세요. 이메일(119@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대표번호 1670-1611)는 전국 11개 지부(서울·인천·부천·전북·광주·안산·부산·마산창원·대구·수원·경주)에서 '평등의전화'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차별과 성희롱을 비롯해 임금체불, 부당해고, 출산이나 육아를 이유로 하는 불리한 대우, 폭언·폭행 등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겪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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