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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고발 전쟁터' 된 여야 대선 정치판

입력
2021.09.28 11: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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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관련 3건·'고발 사주' 관련 1건
정치 축소·정치의 사법화 초래 가속화
고소·고발에 맞서는 수단도 고소·고발

전용기(왼쪽)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이재명 지사 대선캠프 관계자들이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을 고발하기 위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찾고 있다. 박민식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캠프 기획실장이 박지원 국정원장을 고발하기 위해 경기 과천시 공수처 청사를 찾고 있다. 뉴시스·왕태석 선임기자

전용기(왼쪽)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이재명 지사 대선캠프 관계자들이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을 고발하기 위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찾고 있다. 박민식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캠프 기획실장이 박지원 국정원장을 고발하기 위해 경기 과천시 공수처 청사를 찾고 있다. 뉴시스·왕태석 선임기자

'고발장 들고서 검찰청사 앞에서 사진을 찍는 정치인들'

선거철이면 으레 등장하는 정치권의 '고발 전쟁'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이다.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여야는 의혹이 제기된 상대당 후보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히기 위해 고발장을 들고 경쟁적으로 수사기관을 찾고 있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될수록 정치권의 자체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지고, 정치는 사법부와 수사기관의 '최종 판단'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여야 1위 대선후보, 고발도 1위?

정치권은 고소·고발을 선거전에서의 전략적 선택지 중 하나쯤으로 여긴다. 각 정당이나 대선 후보 캠프가 상대 후보나 관계자를 고소·고발한 건은 이달에만 6건에 달한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내곡동 땅 의혹, 박영선 민주당 후보의 일본 아파트와 관련해 '마구잡이 소송전'을 벌였던 전철을 밟고 있는 셈이다.

대선 국면 정치권 '고소·고발 전쟁' 주요 사례. 그래픽=김문중 기자

대선 국면 정치권 '고소·고발 전쟁' 주요 사례. 그래픽=김문중 기자

유력 후보일수록 고소·고발에 더욱 적극적이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수세에 몰렸던 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측은 지난 19일 이후 세 차례에 걸쳐 6명을 허위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 대상도 정치권에 국한하지 않았다. 대장동 부지에 건설되는 터널 등 시설이 이익 환수가 아니라고 주장한 대학교수와 이를 보도한 기자 등도 고발했다.

'고발 사주 의혹'으로 궁지에 몰렸던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도 반격을 위해 고발 카드를 사용했다. 윤 전 총장 대선캠프는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에 제보한 조성은씨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지난 13일 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고소·고발이란 '공격'을 받은 정치인들이 반격 수단으로 삼는 것 또한 고소·고발이다. 27일 이 지사 측으로부터 고발당한 곽상도 의원은 이날 "이 후보의 이번 고발은 무고죄에 해당하는 것 같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고발 사주 의혹 문건에 자신의 고발장이 포함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13일 윤 전 총장을 포함한 당사자 7명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문제점, 정치권도 안다

민주당 조신(왼쪽부터) 성남중원지역위원장, 백종덕 여주양평지역위원장, 임근재 의정부을지역위원회 당원 등이 2019년 10월 31일 헌법재판소에 선거법 250조(허위사실공표죄) 1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주당 조신(왼쪽부터) 성남중원지역위원장, 백종덕 여주양평지역위원장, 임근재 의정부을지역위원회 당원 등이 2019년 10월 31일 헌법재판소에 선거법 250조(허위사실공표죄) 1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치권도 온갖 문제에 대한 판단을 수사기관과 법원에 떠맡기는 행태의 폐해를 잘 알고 있다. 김태년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1월 7일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을 고발하려는 국민의힘에 "국회가 스스로 국회의 역할을 제한하고 정치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며 "국민의힘이 정치의 사법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지사는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사흘 앞두고 '친형 강제입원' 사건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했다. 2심까지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가 대법원의 원심 파기환송으로 기사회생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이유에 대해 한 국회 관계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뉴스를 만들어 이목을 집중시키고 수사기관이 상대를 손쉽게 조사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락한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주의의 품격을 높이려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는 주문도 잇따르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7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고소·고발 남발은 정치인들이 검찰이나 법원을 통해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행동"이라며 "그러다보니 무죄 판결만 나면 모든 책임이 없는 것처럼 여긴다"고 말했다. 국민의 대표자인 정치인들이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이 이를 신뢰하게 만드는 '입헌주의 복원'이 절실하다는 게 한 교수의 지적이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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