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명동역 뒷골목 '재미로', 만화거리로 도약 꿈꾼다

입력
2021.10.01 07:00
수정
2021.10.01 15:1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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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49) 명동 재미로
명동쇼핑거리와 달리 관광객 발길 뜸한 골목
서울시, 2년 전부터 재미로를 만화거리로 조성
만화 팬이 아니어도 즐길 수 있는 만화거리

'명동 재미로'는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부터 남산 케이블카를 연결하는 서울 중구 남산동의 작은 골목이다. 우태경 기자

'명동 재미로'는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부터 남산 케이블카를 연결하는 서울 중구 남산동의 작은 골목이다. 우태경 기자

서울지하철 4호선 명동역부터 남산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이어지는 길이 450m 남짓한 작은 골목, 명동 재미로. 서울 중구 남산동에 자리를 잡아 명동과 남산이라는 서울 대표 관광지를 잇고 있지만, 대로(퇴계로) 건너편의 명동의 쇼핑가에 비하면 한적하기 그지없다. 묘하게 관광객들의 발길에 비켜서 있으면서 외면 아닌 외면도 받았던 골목길이다.

그랬던 재미로가 최근 반전하기 시작했다. 아기자기한 요소들로 가득한 '만화거리'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찾고 싶은 거리'로 뜀박질하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2년 전부터 만화거리 조성사업을 시작해 최근 1차 조성사업을 마친 재미로는 회색빛의 낙후된 골목에서 만화적 요소들이 가득한 다채로운 골목으로 재탄생했다. 2013년 이 일대를 만화와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중심지인 '애니타운'으로 조성하기 위한 사업에 착수한 지 거의 10년 만이다. 당시 사업에서 공모를 통해 낡은 골목에 붙인 이름 '재미로'도 한몫했다.

명동 재미로는 명동역부터 남산을 잇는 거리로, 명동쇼핑거리와는 퇴계로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명동 재미로는 명동역부터 남산을 잇는 거리로, 명동쇼핑거리와는 퇴계로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전시·체험·교육 등 만화 콘텐츠 통한 다양한 경험 가능

명동 재미로에 위치한 남산동 공영주차장 벽면에 일러스트 벽화가 빼곡히 그려져 있다. 우태경 기자

명동 재미로에 위치한 남산동 공영주차장 벽면에 일러스트 벽화가 빼곡히 그려져 있다. 우태경 기자

재미로를 따라 걷다 보면 강렬한 원색의 벽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상점들은 물론 주민센터, 공영주차장까지 곳곳에 설치된 일러스트들은 국내 전시 전문기업인 '프린트베이커리'의 디렉팅과 함께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국내 그래픽 아티스트 '그라플렉스'가 제작한 작품이다. 길의 중턱에는 두 손이 악수하며 '화합'을 상징하는 일러스트가, 길의 끝 부분에는 재미로를 찾은 이들을 웃음과 함께 '배웅'하는 스마일 일러스트가 설치돼 재미로를 걷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명동 재미로의 끝부분에는 '웃음'으로 보행객들을 배웅하는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우태경 기자

명동 재미로의 끝부분에는 '웃음'으로 보행객들을 배웅하는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우태경 기자

재미로에선 벽화뿐만 아니라 매 시즌마다 작가와 주제가 바뀌는 트렌디한 기획 전시를 비롯해 아트 클래스, 도슨트 투어도 즐길 수 있다. 길의 주요 거점마다 총 6개소가 설치된 문화 콘텐츠 공간 '재미랑'에서 이 같은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재미랑 3호에선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를 제작한 김청기 감독의 상설 전시전이 열리고 있으며, 나머지 재미랑에서도 페이퍼토이, 모빌, 필름카메라, 팝업북 제작 등 다양한 분야의 수업이 매주 진행되고 있다. 또 재미로 인근에 위치한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도 애니메이션 스톱모션 영상 제작, 캐릭터 VR체험 등을 비롯해 남녀노소 누구나 무료로 만화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도 이용할 수 있다.

명동역 인근에 위치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타요'를 이용한 버스 정류장을 이용해 재미로에 도착할 수도 있다. 우태경 기자

명동역 인근에 위치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타요'를 이용한 버스 정류장을 이용해 재미로에 도착할 수도 있다. 우태경 기자

충남 천안에서 재미로를 방문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는 김진형(26)씨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재미로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며 "코로나로 명동역이 전보다 한산한 것 같은데 이렇게 참신한 콘셉트로 볼거리를 많이 채우면 다시 사람들도 많이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재미로 인근에 위치한 숭의여대에 재학 중인 이하현(21)씨는 "명동을 떠올렸을 때 먹는 것뿐만 아니라 만화거리도 있다는 것도 알면 좋겠다"며 "길이 홍보가 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미로의 중턱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재미로 라운지. 이곳에선 일러스트 작품 전시와 함께 다양한 수업이 열린다. 우태경 기자

재미로의 중턱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재미로 라운지. 이곳에선 일러스트 작품 전시와 함께 다양한 수업이 열린다. 우태경 기자


만화 팬이 아니어도 즐길 수 있는 '만화거리'

이곳이 '만화거리'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만화 팬만 즐길 수 있는 거리라는 인상을 받기 쉽다. 바쁜 일상 탓에 만화와 담을 쌓고 있던 이들에겐 왠지 모를 소외감을 주거나, 만화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가 이곳에 없다면 속상해할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만화'는 분명 한계가 있는 관광 요소였다.

이 한계를 극복한 것이 재미로다. 타깃 층을 만화 팬만이 아니라 '모든 시민'으로 확장했다. 골목의 콘셉트를 '만화와 함께하는 서울 여행'으로 삼고, 골목을 방문하는 누구나 색다른 경험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을 뒀다.

재미로의 초입에 위치한 작은 슈퍼 '강원식품'이 대표적인 예다. 이곳에서는 슈퍼마다 흔히 보이는 검은 비닐봉지 대신 건물 벽화에 그려진 캐릭터가 새겨진 봉투에 구매한 물건을 담아 준다. 김경애(61) 사장은 "손님들 모두 봉투가 이쁘다고, 특별하게 물건을 담아 가는 것 같다고 좋아한다"며 "처음에 만화거리를 조성한다 했을 땐 우려도 많았지만, 지금은 골목이 정돈되고 활기가 가득한 것 같아 정말 만족한다"고 말했다.

재미로의 초입에 위치한 슈퍼 '강원식품'에서는 건물 벽화의 캐릭터가 그려진 봉투에 물건을 담아 준다. 우태경 기자

재미로의 초입에 위치한 슈퍼 '강원식품'에서는 건물 벽화의 캐릭터가 그려진 봉투에 물건을 담아 준다. 우태경 기자

이렇듯 상인과 손님들 모두 만족하는 거리로 거듭나기까지 재미로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초창기에는 뽀로로 등 특정 캐릭터를 피규어로 형상화해 거리에 설치하는 형태에 그쳤다. 낙후되고 오래된 골목에 생뚱맞게 캐릭터 피규어가 들어서자 이질적이고 어색한 모습만 연출됐다.

그러다 접근 방식을 바꿔 주민, 상인, 중구청 등과 함께 골목의 특징을 반영한 콘셉트를 구축한 뒤 이를 바탕으로 다시 골목을 구성해 지금과 같은 모습의 재미로가 완성됐다. 재미로 조성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산업진흥원 애니타운팀의 이윤재 책임은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기존 동네 경관과 어우러지고 모든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만화거리를 조성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주민, 상인들과 워크숍을 네 차례 열고, 자치구와 주민들이 함께하는 재미로 활성화 추진단을 만드는 등 '이해관계자들 간의 소통'에 방점을 두고 지금의 재미로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명동 재미로에서 서울애니메이션센터로 가는 길에 위치한 오리 모양의 환기구. 재미로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됐다. 우태경 기자

명동 재미로에서 서울애니메이션센터로 가는 길에 위치한 오리 모양의 환기구. 재미로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됐다. 우태경 기자


코로나로 발길 뜸해진 명동..."재미로 통해 희망"

명동 재미로에 위치한 '재미랑 3호'에서 남산을 바라본 모습. 우태경 기자

명동 재미로에 위치한 '재미랑 3호'에서 남산을 바라본 모습. 우태경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상권이기도 한 명동과 인접한 탓에 재미로 역시 골목을 찾는 유동인구가 감소한 상태다. 재미로에는 식당, 카페를 비롯해 외국인들이 묶는 게스트하우스가 대부분의 상권을 차지하고 있어, 코로나19로 명동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줄며 재미로도 자연스럽게 활력을 잃게 됐다. 명동은 코로나19 이전에 연 700만 명이 찾던 곳이다.

최근 1차 거리 조성사업 완료만으로도 재미로가 화려하게 변신한 데다, 내년 2차 사업이 시작되면 더 큰 변화가 예상된다. 보다 더 많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들어설 예정이다. 재미로의 터줏대감들은 재미로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이숙경(59)씨는 "코로나19 때문에 거리를 찾는 유동인구가 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전보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아주고 거리 사진도 찍어 가는 등 반응이 좋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문화콘텐츠 업체들도 재미로에서 '미래'를 꿈꾸고 있다. 재미랑 3호를 운영 중인 피규어 제작업체 '시작코퍼레이션'의 이동한 대표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문화콘텐츠 업체들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재미로에 위치한 공간들을 임대하고 있어 재미로에 13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며 "이렇게 연관된 업체들이 모여 있는 거리가 국내에 없는데, 이곳에선 서로 힘들 때 조언도 구할 수 있고 협업도 할 수 있어 시너지 효과가 분명히 있고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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