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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뱃속 암덩어리, ‘세 아들 뭐했나’ 원망했지만…

입력
2021.09.28 17:00
수정
2021.09.28 18:23
25면

<31> 이수영 외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수술장 한쪽에 마련된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중년 남자 셋이 초조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삼형제인 것 같았다. 할머니, 아들 부자이셨네요. 그러면 뭐해요. 할머니 몸이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몰랐는데. 아들자식 키워 봐야 다 소용없다니까요.

암 진단을 받은 부모를 둔 자식들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내용은 한결같다. 그동안 아픈 데 없이 건강하셨으니까, 바빠서 자주 찾아 뵙지를 못해서, 시골에서 내외분만 사시다 보니….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만큼 할머니의 복부 한가운데를 차지한 종양은 거대했다. 할머니의 배에서 그 어마어마한 종양을 마주한 순간 나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필시 배가 아프셨을 텐데, 분명히 종양이 겉에서 만져졌을 텐데, 가족 누구라도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종양이 한 뼘 크기로 자랄 때까지 까맣게 몰랐던 가족들의 무심함을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응급수술을 하면서도 절대 보호자를 탓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왔는데, 오늘만은 그 원칙을 어기는 한이 있어도 이 분노를 전하리라 독하게 마음먹고 상담실에서 보호자들을 마주했다.

막내 아들로 보이는 남자의 간절한 눈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 지경이 되도록 대체 뭘 하셨느냐, 어떻게 이렇게 종양이 커질 때까지 모를 수가 있냐고 따지려던 마음이 아들의 눈빛 하나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음 다잡고 날이 선 한 마디를 뱉어내며 잘라낸 종양을 덮고 있던 포를 걷었다.

"자, 이것 좀 보세요."

세 남자는 동시에 헉 하고 숨이 멎는 소리를 뱉어 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내 두 주먹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종양을 직접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들들의 얼굴에 후회와 회한의 감정이 서렸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삼형제의 죄스러워하는 마음이 표정으로 전부 전해졌다. 이번만큼은 차갑게 쏘아 주리라 다짐했건만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보호자들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입만 바라보며 애타게 다음 말을 기다리는 아들들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암은…완전하게 절제했습니다. 뱃속에 남아 있는 암은 이제 없어요."

그 한마디에 아들들은 오열하며 무너져 내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암이 너무 진행돼 절제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목포에서 화순까지 달려왔다. 그러나 종양내과 외래에서는 할머니 체력이 너무 약해 항암치료도 어려우니 증상 조절 목적으로 장루 수술이라도 받는 게 어떻겠냐고 다시 응급실로 보냈다. 며칠 사이 의사들에게서 전해들은 한마디 한마디가 보호자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수술장에서 극적으로 암을 완전히 절제해 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형제들이 오열하는 것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는 남자들 앞에서 더 이상의 말은 소용이 없었다. 암이 너무 커져서 주요 혈관과 달라붙어 있어 떼어내느라 애를 먹었다는 말도, 혈관 기시부에 바짝 붙어 있는 림프절을 제거하느라 출혈이 꽤나 있었다는 말도,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삼형제 앞에서 말문이 막혀버린 나머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상담실을 나섰다.

수술은 잘 마무리됐지만 할머니의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근 한 달간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기력은 수술 전부터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비록 두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은 수술이었지만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바닥난 체력으로 극복해 내기는 쉽지가 않았다. 할머니는 쉬이 일어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만 있었고, 장 마비가 지속되면서 미음 한 모금 넘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섬망 증상이 심해져 수액이고 소변줄이고 뭐고 라인이란 라인은 다 잡아 뽑으려고 하는 통에 양손을 묶어 두어야만 했다.

그런 할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삼형제가 아닌 간병인 아주머니였다. 각자 생업이 있기에 자식들이 직접 간병을 하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회진을 갈 때마다 간병인 아주머니만 환자 곁에 있는 것을 볼 때 섭섭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꼭 보호자가 환자를 돌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술 당일 상담실에서 보호자들이 흘린 눈물의 양을 생각하면 왠지 삼형제 중 한 명은 어머니를 지키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오열하던 보호자들은 다 어디 가고 간병인만이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분명 내 욕심이고 과도한 요구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고, 다행히 무사히 회복하여 퇴원한 할머니가 퇴원 후 첫 외래 진료를 오는 날이 되었다. 이번에는 막내 아들과 함께였다. 퇴원할 때는 휠체어에 앉은 채였는데 그사이 기력이 많이 회복되었는지 아들의 손에 의지해 걸어서 오셨다.

“할머니, 퇴원하고 잘 지내셨어요?”

“응, 뭐라고?”

나는 할머니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귀에 가까이 대고 또박또박 외쳤다.

“괜.찮.으.셨.냐.구.요.”

할머니는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동문서답을 했다.

“늙으면 죽어야 허는디, 안 죽고 살아서 자식들 귀찮게 허네잉. 우리 막내 아들 회사도 빼먹어불고.”

“아이고, 엄니도 참. 그런 말씀일랑 하덜 마씨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모실 것잉께.”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은 따스함으로 가득했다. 부디 삼형제의 보살핌 아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화순전남대병원 외과 조교수

화순전남대병원 외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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