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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차이나’ 베트남의 외골수 방역… 기회를 위기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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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 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한국일보>
꿈이 아니었다. 애플·구글·샤프·유니클로.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이 넘치는 글로벌 거대기업들이 지난해 베트남으로 줄지어 향했다. 항상 베트남을 동생 국가 정도로만 여기던 콧대 높던 중국은 바짝 긴장했다. 혈맹의 눈치를 보던 베트남도 더 이상 없었다. '포스트 차이나'를 거침없이 외쳤고, 내심 미중 무역 갈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더 길어지길 바랐다. 이기적이라 비난받더라도, 전례 없는 글로벌밸류체인(산업가치사슬ㆍGVC)의 급격한 변화는 베트남에겐 선물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을의 초입인 22일 현재. 전력 질주를 준비하던 베트남이 돌연 멈춰 섰다. 당연히 늘었어야 할 외국인직접투자(FDI)가 하향곡선을 그렸고, 이미 진출한 외국기업들은 중앙정부에 성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역특수의 조정 국면으로 보기에는, 베트남을 건너뛰는 GVC 흐름 역시 심상치 않다. 일장춘몽의 허무함이 아른거리는 베트남. 지난 9개월 사이 같은 땅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베트남이 GVC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해소된 2012년부터였다. 시작은 저렴한 인건비와 바다를 낀 입지 조건 등을 공유한 인접국들과 비슷했다. 다만 가속화의 수준이 달랐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빠르고 집약적으로 산업 인프라를 건설했고, 중앙정부는 투자 인센티브 정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 2018년 동남아 GVC 참여도 부동의 1위였던 싱가포르를 따라잡더니, 코로나19로 전세계가 출렁인 지난해에는 41.49%로 싱가포르(40.10%)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반등의 중심에는 전자ㆍ전기 글로벌 기업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미국의 애플. 이 회사는 지난해 중국 물량의 30%를 베트남에서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자사의 글로벌 공급망 200대 기업 중 폭스콘 등 21곳을 베트남으로 이전시키기도 했다. 2018년 7곳에 불과하던 베트남 진출 애플 계열 기업 수가 2년 새 3배로 폭증한 것이다. 뒤이어 구글은 중국에서 생산하던 스마트폰 픽셀4a에 이어 픽셀5 물량을 베트남 공장에 배정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베트남에서 노트북 및 태블릿PC 생산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일본도 흐름에 동참했다. 차량용 LCD모듈을 생산하던 샤프의 중국 공장 베트남 이전을 신호탄으로 △니토덴코(집적회로) △후지킨(반도체) △호야(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등 6개 일본 기업의 중국 공장도 줄줄이 베트남에 터를 잡았다. 여기에 의류기업 유니클로까지 미국 수출용 의류 생산 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말 그대로 GVC의 대세이자 주연으로 떠오른 베트남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달디 단 꿈의 파열음은 지난 4월 하노이 인근 북부 산업단지에서 처음 터져 나왔다. 코로나19 변이종이 하이즈엉성을 시작으로 박닌ㆍ박장성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시점이다. 당시 베트남은 그들이 유일하게 잘 하는 지역 봉쇄와 격리 강화의 몽둥이를 황급히 들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봉쇄 기간을 최소 2주, 길어야 한 달을 예상했다. 하지만 변이는 생각보다 무서웠고, 물류 이동이 막힌 상태에서 전 직원이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태는 두 달 넘게 이어졌다.
북부의 대혼란이 겨우 잡히기 시작할 무렵, 이번엔 남부 호찌민에서 터졌다. 변이종 상륙 이후에도 방역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은 결과, 지난 7월 중순을 기점으로 확진자가 일일 1만 명대까지 증가한 것이다. 미증유의 사태에, 중앙정부는 군에 의한 이동 차단과 배급 사회로의 회귀를 선택했다. 그나마 상황이 호전되던 북부 산단에도 최고 수준의 봉쇄령이 재발동됐음은 물론이다. 이후 기업들이 "물류 이동이라도 풀어달라"고 수차례 호소했지만, 짧고 굵은 방역 성공에 도취된 베트남은 봉쇄 수위만 계속 강화할 뿐이었다.
참고 참던 글로벌 기업들은 결국 베트남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급증한 디지털 기기 수요를 맞추기도 바쁜 시점에, 원자재 입고는 고사하고 생산라인까지 막아서니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실제로 미국 전자제품 제조사 자빌의 베트남 공장은 30%로 제한된 공장 가동률로 인해 지난달 6,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격리 직원들의 백신 접종률이 87%를 넘었으나 당국은 "지역별 일괄 해제가 원칙"이라고만 답했다. 공장에 갇힌 직원들의 숙식비와 코로나19 검사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인텔 베트남 법인만 해도 봉쇄로 인한 인건비 등 손실 비용이 613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리성이 결여된 방역책은 변심과 포기를 부르고야 말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ㆍKOTRA) 하노이 무역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베트남의 FDI 유치액은 전년 동기 대비 2.5% 줄었으며, 코로나19 시대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17.3%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미 승인된 제조업 신규 투자 프로젝트 진행이 2019년 대비 45.1% 감소했다. 계획은 잡혔으나 불투명한 정부 움직임에 절반가량의 기업들이 투자를 미룬 것이다. 당장 납품 기일을 맞춰야 하는 기업들도 황급히 다른 선택지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현지에선 지난 4월 이후 베트남 내 글로벌 기업의 20%가량이 생산 차질을 이유로 물량을 타국으로 긴급 이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호찌민의글로벌 기업 관계자는 "GVC 특성상 한번 생산공장이 바뀌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물량이 다시 돌아오긴 힘들다"며 "지금 베트남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베트남 내 글로벌 기업들은 중앙정부에 말을 돌려서 하지 않는다. 지난 20일 주베트남 미국 및 유럽상공회의소 등 복수의 외국 기업 연합은 공동성명을 통해 "봉쇄가 장기화될수록 베트남은 더 많은 투자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며 "명확한 방역 로드맵과 생산 재개 시기를 빨리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베트남이 GVC 영역에서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탈중국 공급망 다변화 흐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도 강조했다. 충고의 형태를 갖춘, 사실상 최후통첩에 가까운 압박이다.
베트남 중앙정부는 뒤늦게 글로벌 기업 달래기에 나섰다. 팜민찐 총리는 지난 3일 직접 삼성전자 공장을 위로 방문한 데 이어, 14일에는 한국 기업대표단과 4시간이 넘는 간담회를 열었다. 팜빈민 부총리는 FDI유치 특별대책본부를 신설해 기업들의 애로사항 해결에 나선 상태다. 봉쇄 완화도 점진적으로 실행 중이다. 지난 16일부터 호찌민 7군 등 일부 남부 지역의 경제활동을 부분 허용했으며, 21일에는 수도 하노이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도 '15호 지시령'으로 한 단계 낮췄다. 중앙정부가 최근 내뱉은 모든 약속이 지켜진다면, 산업활동 정상화는 내달 중순 가능할 전망이다.
남은 변수는 중앙정부의 의지와 공단 규제권을 가진 지방 시ㆍ성(省)정부의 행정이 얼마나 일치하는지의 여부다. 중앙정부가 포괄적 방향을 제시하고 지방정부가 하위 행동령을 만들어 시행하는 현 구조가 있는 한, 모든 상황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여전히 "백신 접종 완료 기업인이 입국할 때 시설 격리기간을 일주일로 단축하겠다"는 지난달 중앙정부의 발표를 지키는 지방 정부는 거의 없다. 통행허가증을 가진 물류 배송 트럭 역시 성마다 다른 적용 방식으로 인해 멈춰 서기를 반복하는 게 지금의 베트남이다.
2012년 호찌민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 B사의 한국인 법인장은 "글로벌 기업 운영의 기본 축은 데이터에 기반한 예측가능성과 장기적인 수익률의 확보"라며 "위로와 구호에 그치는 베트남의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는 결코 현 사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B사는 올 하반기까지 베트남의 상황 변화가 없을 시 캄보디아로 공장을 이전할 계획이다. 기회가 위기로 변하고 있는 베트남. 그들에겐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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