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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여자가 가난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입력
2021.09.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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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여성은 시를 쓸 쥐뿔만 한 기회도 갖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돈과 자신만의 방을 그렇게도 강조한 이유이지요.

버지니아 울프

Her View : 여성의 관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3> 왜 여성은 쉽게 가난해지는가 (9월 16일자)

독자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돈'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혹시 여러분은 여자라서 얼마를 '더' 손해 보는지, 계산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그냥 고시원 말고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여성 전용' 고시원에 들어간 적은 없나요? 자취방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현관에 내어 놓은 '남성 신발'은 얼마였나요? 늦은 귀갓길 수상한 사람을 피하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가 필요 없는 음료수를 샀던 적, 한번쯤은 있죠? 이 모든 비용은, 어쩌면 내가 여성이 아니라면 쓰지 않아도 됐을 돈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주머니에서 새는 돈도 화나는데, 알고보니 우리 사회가 '여성이 쉽게 가난해지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 생각해봤나요? 함께 따져봐요!

■ 여성은 돈을 '덜' 번다

=국내 상장기업 노동자 1인당 평균 임금 성별 격차 3,000만원

여성가족부는 2020년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상장법인 2,149곳과 공공기관 369곳의 1인당 평균임금 성별격차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조사 결과, 상장법인 전체의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은 7,980만 원, 여성 1인당 평균임금은 5,110만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평균임금의 성별격차는 35.9%에 달했습니다. OECD 통계에서도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5%로, 여러 해 동안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 여성은 돈 되는 일을 못 얻고, 돈 안 되는 일을 더 한다

=2020년 여성 고용률은 50.7%. 맞벌이 가구에서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 노동 3시간 7분(남성은 54분)

여가부가 발표한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의 고용률은 50.7%로, 남성(69.8%)에 비해 19.1%포인트나 차이가 났습니다. 그마저 비정규·저임금 직종에 집중됐습니다. 고용의 질이 낮은 이유로 '경력단절'이 이유로 꼽힙니다. 좋은 첫 직장을 잡았더라도, 결혼과 출산을 계기로 퇴사에 내몰리고, 이는 곧잘 경력단절로 이어져, 더 좋지 못한 일자리에 재취업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가정 내 성역할이 고정된 풍토 상 여성들은 '보이지 않고 경제적 환산이 어려운' 가사 노동 혹은 돌봄 노동의 짐도 짊어지고 있습니다.

■ 여성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수많은 생애 경로들

- "굳이 딸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낼 필요가 뭐 있어?" (진로·진학)

- "우리는 여자 안 뽑아. 어차피 결혼하면 다 그만둘 텐데." (채용)

- "여자는 곧 애를 낳으니까 핵심 업무를 못 맡겨." (보직·배치)

- "여직원들은 조직에 충성하지도 않는데 좋은 기회를 줘도 될까?" (교육·훈련)

- "조직의 리더는 아무래도 남자가 해야지." (승진)

= 이 모든 요소가 여성이 저임금 직장에 안착하거나,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더 이상 승진할 수 없게 하는 차별 기제로 작동합니다.

■ 반론1: '동일 노동, 동일 직급에 임금 차별하는 회사가 어딨어?'

성별 임금 격차를 논의할 때 흔히 맞닥뜨리는 반론입니다. 그럴 듯해보이기도 하는 것이, 임금 테이블을 따르는 대기업 공채 시스템에서는 같은 연차의 동일 직군이 다른 임금을 받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성별 임금 격차는 단순히 3년 차 남자 사원이 또 다른 3년 차 여자 사원과 다른 월급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채용, 배치, 순환·보직, 교육·훈련, 승진 등 전반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기회와 조건을 제공하지 않은 결과로 성별 임금 격차가 생겨난다는 총체적 의미예요. 물론, 엄격한 급여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영세 업체에서 '깜깜이 연봉 계약'을 하는 경우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차별은 제대로 집계되지도 않은 상황입니다.

■ 반론2: 'OECD 통계는 고위험·고임금 산업과 직종에 집중 종사하는 한국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중위소득을 분석 기준으로 삼는 OECD 성별 임금 격차 통계가 숙련도, 노동 시간, 산업 편향 등 변수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기준이 아닙니다. 모든 나라에 공평하게 적용했을 때에도,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 격차가 OECD 평균(12.8%)을 훌쩍 뛰어넘어 독보적 1위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사회는 성 역할 고정 관념과 성별 분업이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고부가 제조업에는 남성 노동자가, 저임금 도시 서비스직에는 여성 노동자가 많습니다. 기업 고위 임원도 남성이 압도적입니다. 궁극적으로 성별 임금 격차를 야기하는 핵심 요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우리 사회는 '여자 일'과 '남자 일'을 엄밀하게 구분해 차별의 근거로 삼을까? 승진을 거듭해 높은 연봉을 받는 여성 임원은 왜 극히 드물까?"여야 하지 않을까요?

■ 여성이 '더' 부자가 되는 것을 막는 그 밖의 차별들

- 여러분, 왜 결혼할 때 남자가 집을 하고 여자는 혼수를 할까요? 집은 '자산'으로 소유주의 명의가 오롯이 남고 자산 증식의 효과도 가질 수 있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가전제품은 감가상각이 큰 소모품에 불과한데 말이죠. 한 가정 안에서도 공공연히 아들에겐 집, 딸에겐 혼수를 해줍니다. 혹시 이거, 차별적 증여라는 생각 안해보셨나요?

-김연경 선수는 오랫동안 여자배구의 샐러리캡의 성차별을 비판해왔습니다. 샐러리캡은 리그 내 돈 많은 팀이 고연봉 선수를 독점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한 팀의 연봉 총액 상한선을 규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는 20-21 시즌에 남자부는 31억 원, 여자부는 23억 원으로 책정돼 있어 성차별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김 선수는 한국 리그에서 뛰기 위해 연봉을 깎아야 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낮게 책정된 상금과 연봉, 비단 여자배구만의 일은 아니랍니다.

※ 참고 : '성평등 일자리 차별없는 임금이 만듭니다!(2018, 여가부),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2017, 이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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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한국에서 여성이 더 받았어야 하는 임금의 액수를 구하시요." 책의 시작은 이 같은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그것을 '분실임금'이라 부른다.

우리는 이번 레터를 통해 다양한 층위에서 여성이 '돈을 적게 벌 수밖에 없는', 혹은 '자산을 모을 수 없는' 사회적 맥락과 제도적 미비함을 짚었어요. 오늘 레터를 마무리하면서, 여성을 구조적으로 작고 가난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그래도 덜 지치면서 일터에서 나의 성취를 온전히 지키는 방법을 함께 나누려 해요.
책에 따르면, 일터에서 남성은 '남자인데 가능할까?'라는 의심에 도전하고 능력을 증명하느라 추가적인 힘을 빼는 일이 없다는 점만으로 이미 여성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성과를 내지 않은 남성도 곧잘 승진합니다. '승진하지 않은 남성의 모습이 어색하다'거나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이유로도 말이죠(25쪽 등).
반면, 여성은 온전히 자신이 해낸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토대 위에 서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담대하게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여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스스로를 깎아내려서라도 공을 남에게 돌리며 겸손한 것을 여성의 자연스러운 미덕으로 여깁니다(60쪽). 겸손함, 자기반성, 양보처럼 여성에게 권장되어온 미덕은 평가나 연봉 협상 시, 마땅히 받아야 할 보수를 요구할 때 머뭇대게 합니다(61쪽). 자연스럽게 여성의 성취는 과소평가되고, 경제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구조의 변화가 먼저입니다. 하지만 허스토리는 개인적인 실천방식으로 '자신의 성취에 주인의식 갖기'라는 작은 행동을 제안하고 싶어요. 성취를 얻었을 때 "운이 좋았어요" "저는 한 게 없어요"라는 겸양도 좋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성취를 표현하는 건 어떨까요? 이에 관한 책으로는 밸러리 영의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를 추천해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쳐야 하는 온갖 검증을 버티며 자신의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 당신은 결코 나약하지 않아요. 자신을 의심하지 말아요.

※ 본 뉴스레터는 2021년 9월 16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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