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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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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음력 팔월 보름이 찾아왔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한다. 마음에 들어 더할 나위 없다는 말이다. 이맘때 무엇이 그렇게 좋다는 말일까? 흔히 의식주를 삶의 기본 요건이라 한다. 그중에서도 옷이나 집은 편한 것을 따라갈 수 있다지만, 입맛에 붙은 먹거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음식이나 음식 문화가 가장 마지막에 바뀐다는 것은 음식이 삶의 질을 결정할 만큼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음식이라 하면 우선 양이 넉넉하면 좋다고 여기는 편이라, 기쁘고 좋은 날에는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놓고 즐긴다. 다른 나라의 잔칫상도 푸짐하겠지만 한국의 잔칫상은 만만치 않다. 한국 최초의 국립 서양 병원인 광혜원의 언더우드(L. H. Underwood)가 1888년 조선에 도착한 후 15년간을 기록한 책이 있다. ‘상투쟁이들과의 15년’이라고도 부른 조선 견문록에서 저자는 낯선 서양인의 눈으로 조선인의 잔칫집을 묘사했는데, 조선인의 잔치는 ‘먹는 양이 어마어마한 곳’이라 했다. 저자는 한국 사람들이 잔치를 앞두고 일부러 며칠 굶고 오는 것처럼 보인다고 썼지만, 먹고 남은 음식을 소매에 넣어주는 나눔도 잘 잡아내고 있다.
먹거리는 양뿐만 아니라 질도 중요하다. 식품외식경제신문에서는 식품업계에 불고 있는 우리말 제품명을 살폈는데, 우리말 상표가 자연의 맛을 제대로 전하는 데 주목했다. 좋은 식품은 풍성함과 건강한 재료를 강조하는 편인데, ‘햇살담은 참깨간장’, ‘속까지 천천히 잘 말려 더욱 부드러운 소면’처럼, 우리말은 제품의 원료와 특징을 잘 표현해 음식에 신뢰를 준다는 분석이다. ‘신토불이’란 말도 있듯이, 먹거리는 자연을 담은 순수한 것이다. 실제로 ‘청풍명월, 황금곳간, 황금들녘, 비단고을, 가을뜨락’과 같이, 등급이 높은 식품의 이름에는 자연과 여유로움이 강조되어 있다.
하늘과 땅이 풍성한 과일과 곡식을 선물을 주는 때, 그때가 이때다. 그래서 당장 내 손에 쥔 것은 없어도 배부른 기분이다. 그런데 의식주의 여유는 인간 삶의 기본이 아닌가? 서양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있다면 한국에는 ‘곳간 인심’이 있다. 경주 최씨 부자는 큰 곳간으로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를 실천했다. 말 그대로 풍성한 한가위에, ‘곳간 인심’을 실천한 이들을 보면서 ‘더하기’의 짝이 되는 말은 ‘덜기’나 ‘빼기’가 아니라, ‘나누기’라는 것을 되새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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