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남자들은 행복했을까

입력
2021.09.17 04:30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직장맘의 일상은 자책, 분투, 비장함 등으로 가득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죄송한데, 집에 갓난애가 있어서요.” A의 입에선 끝내 이런 말이 나왔다. 결코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던 말. 눈앞에서 극한보직이 거론될 때마다 하는 수 없었다. 그래. 매일 반복될 야근과 회식, 밤낮을 가리지 않는 상시 연락이 기본인 자리가 이 회사엔 이렇게 많았지. 내가 해냈던 게 원래 저랬지. 그래도 일 좀 해보자는 선배들 앞에서 “제가 이젠 애 엄마잖아요”를 말할 일이 이다지도 많았던가. 일찌감치 언니들이 경고했던 그대로구나. “복직하면 자괴감 들 거야. 그냥 뛰던 트랙을 모래 주머니 달고 뛴다고 생각해. 체력 챙겨.”

어떤 선배는 조금 더 강적이었다. 팀 리더들이 매일 야근을 당연시하는 보직. “제가 집에 어린애가 있어서”라고 난색을 표하자 안타깝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여자 후배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나름엔 격려와 걱정을 가득 담은 말이었다. 퓨즈가 나간 채 그 일을 받아들였으니 어떤 의미론 효과도 있었다. 그 말을 홀로 미워했다 이해했다 원망했다 용서했다 머리를 흔들곤 하는 건 A의 몫이었지만.

이후 펼쳐진 시간은 ‘죄송’의 연속이었다. 혹여 ‘애 엄마라 폐 끼친다’는 말이 나오진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발버둥의 결과는 아이 할머니를 갈아 넣는 외주육아였다. 한참 뒤 할머니까지 골병이 들고, 끝내 늦은 밤 아이를 돌볼 유일한 사람이 엄마밖에 남지 않고서야, 선후배들의 배려 속에 요란한 연속 휴가를 써 집안 사정을 수습했다. 달고 살았던 말이 또 주르르 나왔다.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 면구합니다. 미안해요. 민폐 끼치네요.”

보람도 있었겠지만, 강적 선배의 기대처럼 A는 엄청 보고 배울 사람이 돼 있진 못했다. 최근에도 한 후배는 이런 말을 듣고 왔다며 A 앞에서 분을 삭였다. “네 (여)선배들이 일을 시켜줘도 안 한다는 걸 어떻게 하냐.” 그곳뿐일까. 그의 주위엔 노동 강도가 높고 조직문화가 보수적인 일터에 속한 이런 직장맘이 수두룩하다.

결국 이런 극한 근무표를 누군가는 받아든다. 또래 아이를 둔 ‘애 아빠’ 동료나 미혼ㆍ비혼 선후배일 확률이 높다. 그들이 때론 기꺼이, 때론 반쯤 우는 얼굴로 이 일을 해내는 걸 볼 때면 마음이 더 복잡미묘하단다. 이런 회사에선 업무를 오전 6, 7시쯤 시작해 새벽 2시쯤 거나한 회식과 함께 끝내는 걸 관리자들이 당연시한다. 이 고난은 해당 노동자가 애 엄마라는 ‘이등’ 딱지를 붙이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강제 중단된다. 보호자 없이는 먹고, 자는 것, 어쩌면 숨쉬는 것도 불가능한 어린 생명이 집에서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 말고는 통하는 핑계가 없다는 거다.

그 자체도 가혹하지만 남는 의문은 이거다. 대체 다른 노동자들의 야근, 잦은 회식, 혹사는 과연 누가, 언제, 어떻게, 어디서부터 끝을 낸다는 것일까. 그 어린 생명을 돌보고 싶은 아빠 노동자한테는 더 매서운 눈으로 “눈치 챙겨”를 언급하는 불합리는 대체 언제 뿌리 뽑는다는 걸까.

A의 한탄과 남양유업 육아휴직 불이익 논란을 바라보며, 다시 궁금했다. 당사자의 분노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사태를 본 동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아빠 육아휴직은 더 바보 되겠는데.” “이직을 하든가, 애를 낳질 말든가.” “워라밸 소릴 꺼냈다간 끝장나겠군.” 누군들 행복했을까.

분투하는 직장맘을 회사가 콕 집어 미워할 까닭은 많지 않다. 그를 쫓아내고 다른 사람을 더 마음 편히 혹사시키겠다는 계산 말고는. 그래서 직장맘 불모지는 누구에게나 불행한 일터다. 이렇게 불행에 압도된 기업이 과연 소비자에게 충만한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을까. 그런 묘수를 나는 알지 못한다.

김혜영 커넥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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