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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에 하나씩' 로켓배송의 그늘..."명절엔 이들의 땀 기억해 주세요"

입력
2021.09.18 14:00
수정
2021.09.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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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물류센터는 추석을 앞두고 가장 붐비는 곳이다. 하루 수백 만개의 택배가 몰린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까지 늘어 물류회사들은 연일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수 만 명의 노동자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는 물건을 옮기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그들의 현실을 직접 들여다봤다.

1년차 쿠팡친구 A씨가 새벽배송 중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기 위해 벗어놓은 신발. 조소진 기자

1년차 쿠팡친구 A씨가 새벽배송 중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기 위해 벗어놓은 신발. 조소진 기자

8층에 멈춘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유민수(가명·31)씨는 문 중앙에 신발 한 짝을 내려놨다. 그리고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컬링 자세를 하며 상체를 숙였다. 박스 하나가 808호 문 앞에 미끄러져 도착했다. 어느새 유씨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돌아오고 있다. 닫힐 뻔한 문이 다시 열렸다. 남겨둔 신발 한 짝 덕분이다. 그러고 보니 질주하던 그의 한 쪽 발엔 신발이 없다. 유씨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배송이 꼬여요. 처음엔 기프트(물건)를 이용했는데 박스가 구겨져 항의가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이 방법을 택한 거죠.”

유씨는 ‘쿠팡친구’(쿠팡 배송노동자)다. 서울과 경기 지역을 오가며 10개월째 이 일을 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오후 9시 30분부터 다음날 아침 7시30분까지. 추석이 다가오던 이달 초 그의 밤을 동행했다.

'되는 대로 밟는' 쿠팡카...던배(던져서 배송)·컬배(컬링 배송)까지

한 쿠팡친구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배송을 하고 있다. 조소진 기자

한 쿠팡친구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배송을 하고 있다. 조소진 기자

“네네 빨리 타세요. 출발합니다.” 밤 11시 아파트 단지 앞에서 만난 그는 인사할 겨를도 없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단지 안에 들어섰는데도 속도가 줄지 않는다. 계기판을 보니 시속 40㎞. 유씨는 “죄송해요. 시간을 아끼려니 어쩔 수가 없네요”라고 했다. 경비실에 뛰어가 공동현관 카드 키를 받아온 그는 부리나케 짐을 싣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때부터 곡예가 시작됐다.

문이 열릴 때마다 순식간에 박스와 비닐포장, 프레시백이 현관문 앞에 흩뿌려졌다. 화려한 '던배(던져서 배송)'와 '컬배(컬링 배송)' 기술도 선보였다. 한 번에 3초를 단축할 수 있는 비결이라 했다. 한 라인당 유씨에게 주어진 시간은 200초 정도다. 한 동에 3개 층이 있다면, 600초(10분) 안에 마쳐야 한다는 말이다. 유씨는 “제발 누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지 않길 기도하죠. 한 사람이 타면 기본 1분은 깎이니까”라고 했다.

유씨의 업무는 ‘시간과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단 1초라도 줄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기세였다. 단지 내에서 다른 동으로 이동할 때는 탑문을 닫는 시간을 아끼려 열어둔 채 운전을 했다. 현관 앞에 상품을 둔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서두르다 움직이는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심지어 쿠팡 차의 시동도 끄지 않았다. “정차 시엔 시동을 끄라고 교육을 받긴 하지만… 그 시간도 아깝죠.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파트 단지를 나온 유씨가 불법 유턴을 하며 말했다.


'쿠파고'는 당신의 배송을 초 단위로 기록하고 있다

쿠팡친구의 배송 모습. 접이식 카트가 지급되지만, 펴고 접는데 시간이 들어 대부분 그냥 손으로 들어 배송을 한다. 조소진 기자

쿠팡친구의 배송 모습. 접이식 카트가 지급되지만, 펴고 접는데 시간이 들어 대부분 그냥 손으로 들어 배송을 한다. 조소진 기자

쿠팡은 다른 회사 택배기사와 달리 하루 근무 시 배송을 두 번 한다. 밤 10시 30분부터 오전 3시까지가 1회전이고, 다시 물건이 있는 캠프로 돌아가 짐을 채운 후 오전 4시부터 오전 7시까지 2회전을 치른다. 배정되는 가구는 총 200개가 넘고 물건 수는 300개를 웃돈다. 정진영 공공운수노조 쿠팡지부장은 “마켓컬리는 평균 60개이고, 일반 택배사는 많아야 200개인데 쿠팡의 노동량은 살인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강도 높은 노동량의 배경엔 ‘쿠파고(쿠팡+알파고)’라고 불리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있다. 일반 택배사와 달리 쿠팡의 배송 구역은 매일 달라진다. 쿠파고가 그날 접수된 물량을 토대로 라우터(지역)를 짠 뒤 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단체 대화방에는 ‘APH(시간당 배송 건수)’가 공유된다. 기사마다 몇 개의 물량을 받았고, 몇 개의 배송을 완료했는지가 적힌 표가 실시간으로 뜨는 것이다.

그래서 유씨는 운전 중에도 틈틈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배송지가 달라지니 항상 앱을 통해 주소를 확인해야 하고 상품이 전달된 사진을 찍어 앱으로 전송을 해야 해서다. 어쩌다 배송이 지체되면 노란색 표시가 뜬다. 실제로 이동을 멈추고 잠시 대화를 하던 중 CL(캠프 리더)로부터 전화가 왔다. 용건은 단순했다. “무슨 일 있어요?”

한 쿠팡친구가 배송 중 단체대화방에 올라온 APH(시간당 배송 수)를 확인하고 있다. 조소진 기자

한 쿠팡친구가 배송 중 단체대화방에 올라온 APH(시간당 배송 수)를 확인하고 있다. 조소진 기자


"정규직 전환되려면 APH 높아야 하는데..."

쿠팡 관리자가 볼 수 있는 배송 속도 화면(왼쪽). 관리자는 쿠팡친구가 배송을 완료한 시간, 배송에 걸린 시간을 모두 볼 수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노란색으로 표시된다. 쿠팡노조 제공

쿠팡 관리자가 볼 수 있는 배송 속도 화면(왼쪽). 관리자는 쿠팡친구가 배송을 완료한 시간, 배송에 걸린 시간을 모두 볼 수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노란색으로 표시된다. 쿠팡노조 제공

‘무한노동’이 이뤄지는 배경엔 고용과 임금문제도 있다. 쿠팡은 2년 이상 일을 하면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된다. 1년 2개월 후면 유씨도 대상자다. 그래서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씨는 “APH가 잘 나와야 계약직 내 레벨도 빨리 올라가고, 정규직이 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진다”고 했다.

쿠팡친구는 이용자가 매기는 평점도 신경 써야 한다. 평점이 낮으면 정규직 전환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쿠팡친구는 "고양이 사료를 던지지 말아달라는 요구사항이 있었는데, 너무 무겁고 시간이 없어 신경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소진 기자

쿠팡친구는 이용자가 매기는 평점도 신경 써야 한다. 평점이 낮으면 정규직 전환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쿠팡친구는 "고양이 사료를 던지지 말아달라는 요구사항이 있었는데, 너무 무겁고 시간이 없어 신경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소진 기자

기본 물량(베이스라인) 이상을 배송하면 지급되는 인센티브도 무시할 수 없다. 반대로 기본 물량을 소화 못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계약 조건을 '노멀'에서 '라이트'로 내리는 식이다. 라이트는 물량을 적게 받는 대신 기본 월급의 75%만 받는다. 더구나 베이스라인은 공개되지 않는다. 유씨는 "베이스라인이 공개된 적이 한번도 없다"며 "분명 6개월 전과 똑같은 물량을 치는데 요새는 인센티브가 안 들어온다. 베이스라인이 올라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형식상으로만 존재하는 휴게시간

오전 3시 정각이 되자 쿠팡친구가 사용하는 앱(왼쪽)이 잠겼다. 하지만 앱 내에서 시간을 조정해 바로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조소진 기자

오전 3시 정각이 되자 쿠팡친구가 사용하는 앱(왼쪽)이 잠겼다. 하지만 앱 내에서 시간을 조정해 바로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조소진 기자

동행을 하며 가장 놀랐던 것은 ‘휴식이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야간 근무 시 오전 3시부터 1시간은 공식 휴게시간이다. 새벽 3시가 되자 유씨의 휴대폰에 ‘적당한 휴식은 필수!’라는 글자가 떴다. 그러자 유씨는 시간 숫자를 앞으로 조정했고, 앱의 잠금이 풀렸다. 규정상으로만 휴식이 존재할 뿐 실제로는 10시간 동안 쉼 없이 이동과 배송이 이뤄지는 셈이다.

배송기사 중엔 ‘찍배(찍어서 배송)’를 하는 경우도 많다. 휴식 시간에 앱이 잠겨도 주소 검색은 가능해 미리 배송을 해놓고 나중에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이다.


산재율 가파르게 증가하기도

쿠팡친구가 사용하는 앱 화면. 한 쿠팡친구는 "많게는 372곳에 들러 606개의 기프트를 배송해야 했던 적이 있다"며 "초록색 핀이 찍힌 곳을 2시간 안에 다 쳐야 했는데 엄두가 안 났다"고 말했다. 독자 제공

쿠팡친구가 사용하는 앱 화면. 한 쿠팡친구는 "많게는 372곳에 들러 606개의 기프트를 배송해야 했던 적이 있다"며 "초록색 핀이 찍힌 곳을 2시간 안에 다 쳐야 했는데 엄두가 안 났다"고 말했다. 독자 제공

빨리, 많이 배송하다보니 다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쿠팡친구의 산재 승인 건수는 특히 올해 들어 급증했다. 2017년 141건이었던 산재 승인은 2018년 193건, 2019년 334건으로 늘다가 지난해 758건으로 2배 가까이 불었다. 코로나19로 물류량이 많아진 올해는 상반기에만 1,112건. 이 추세라면 연말에는 2,000건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쿠팡 산업재해조사표에 따르면, 쿠팡친구의 다수는 ‘뛰다가’ 사고를 당했다. “배송 중 뛰다가” “긴급하게 내려오다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급하게 잡다가”. 쿠팡에서 제출한 재해개요에 적혀있는 문구다. 달리 말해 초 단위로 쪼지 않았더라면 덜 다쳤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야간 배송, 꼭 해야 할까요"

문을 여닫는데 드는 시간이 아까워 문을 열고 달리는 쿠팡카 모습. 조소진 기자

문을 여닫는데 드는 시간이 아까워 문을 열고 달리는 쿠팡카 모습. 조소진 기자

새벽 3시 무렵 1회전을 마친 유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차에 타고 내리시는 거 기다리다 몇 초씩 지연됐거든요. 2회전엔 신선식품 등이 많아서, 정말 초싸움은 지금부터예요.” 더 이상 동행하긴 힘들다는 얘기였다. 더 보고 싶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자 유씨는 ‘로켓’ 같은 소음을 남기고, ‘총알’처럼 사라졌다.

쿠팡이 심야 배송 가능한 이유는?

쿠팡, 마켓컬리 등 온라인유통업체는 택배업에 속하지 않아 오후 9시 이후 심야 배송이 가능해 새벽 6시에 문앞에 물건을 두는 '새벽 배송'이 가능하다. 또, 야간에만 근무하는 '야간 고정 노동자'도 있다. 다수의 노동자들은 심야수당을 받기 위해 야간 고정 노동을 택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야간 고정 노동자'인 이들의 건강 상태를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야간 노동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야간 노동을 막고 있다.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아무리 젊고 건강한 20대여도, 초 단위로 해야 하는 일을 그것도 밤새 한다면 뇌ㆍ심혈관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쿠팡은 야간 근무자들에게 6개월에 한번씩 특수건강검진을 받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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