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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상식· 법치 어디로 갔나

입력
2021.09.16 18:00
수정
2021.09.16 18: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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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발 사주'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발 사주'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고발 사주 의혹에 정치공작 대응 일관
배후·의도와 별개로 사건 본질 직시해야
비판하던 민주주의 가치 훼손 외면하나


온통 공작론이다. 배후와 의도만 난무한다. 뉴스버스의 고발 사주 의혹 보도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8일 “정치공작 하려거든 제대로 하라”는 호통 기자회견으로 대응했다. 제보자 조성은씨가 박지원 국정원장을 만난 사실이 알려지자 11일 “정권 차원의 총체적 음모”라고 역공을 폈다. 홍준표 캠프의 이필형 조직본부장이 여기에 동석했다며 14일 고발장을 제출했고, 홍 후보는 “막가파식 정치 공작”이라며 펄쩍 뛰었다. 국민의힘 공명선거추진단은 임무를 후보 검증에서 “흑색선전과 공작사건 대응”으로 슬그머니 옮겼고, 더불어민주당은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임명을 놓고 내홍에 빠졌다. 핵심 피의자인 손 검사마저 “국정원장 개입 의혹 등을 포함한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수사”를 요구하는 지경이다.

공작론과 프레임 전쟁의 십자포화는 대선 앞에서 예상된 일이나 사건의 본질을 파묻고 있다. 공정함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수사기관이 야당과 은밀히 결탁해 여권 인사들을 고발토록 고발장을 넘긴 일이 과연 사소한가. 제보자가 결함이 없어야 비로소 분노할 일인가. 뉴스버스가 친여 성향 매체와 인터뷰하면 고발장이 혼자 야당 의원에게 전송되기라도 하나. 공수처의 수사가 유례없다지만 수사를 안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배후나 의도 말고 사실만 직시해 보자. 이 사건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근간을 허무는 국기문란이 맞다.

윤 후보는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공정의 가치를 다시 세우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공정은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는 검찰의 독립성을 가리킬 것이다. 그가 말한 법치는 절차까지 무시하며 검찰총장을 찍어내려 한 권력을 비판한 말일 터다. 그렇다면 윤 후보는 정치세력화한 검찰의 행태를 비판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해야 옳다. 그가 무기 삼은 상식의 눈으론 마땅히 분노하고 부끄러워할 일이다. 대선 주자로 키운 정치 자산, 윤석열의 상식과 법치, 공정은 다 어디로 갔나.

윤 후보가 고발장 작성·전달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될지는 의문이다. 그와는 별개로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고발장을 보낸 텔레그램 계정은 손 검사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고발장과 흡사한 초안을 토대로 4개월 뒤 국민의힘이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 제출했다. 당에 고발장이 접수되지 않았다고 한 국민의힘 해명과 달리 그 초안을 건네준 것이 정점식 당시 당 법률자문위원장이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검찰의 부적절한 행태가 사실무근이라 하기 어렵다. 전·현직 검사인 손 검사와 김 의원이 물증 앞에서 꿋꿋하게 잡아떼는 모습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폭로의 의도가 의심스러우니 윤 후보가 공작으로 대응하는 게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이 딛고 선 상식과 법치, 공정의 가치를 지워버렸다. 순전히 현 정권에 맞섬으로써 유력 대선 주자로 성장했던 그는 이제 자신이 비판했던 정치에 똑같은 모습으로 편입했다. 정권교체의 희망이었든 권력욕에 사로잡힌 검사였든, 지금 그가 검찰의 국기문란을 비판하며 민주주의 가치를 옹호했다면 그는 정치인으로서 한 단계 도약할 수도 있었다.

모두가 혼탁함에 너무 익숙해진 건지 모른다. 정권과 대법원이 재판을 거래하며 헌법가치를 훼손하고도 대법원장과 판사들은 잘못이 없다고 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유죄 판결을 부정하는 여당 인사들은 2012년 대선 때 국정원 선거개입에는 “헌정 파괴”라고 했었다. 그러나 빈번하다고, 내 편 네 편 가릴 게 없다고,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고발 사주 의혹은 위중한 일이다. 무너진 헌법과 법치를 다시 세워 나라를 정상화하겠다던 윤 후보가 바로 세우고 정상화해야 할 바로 그런 문제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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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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