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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저장창고?... 정부는 낡은 인식부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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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는 추석을 앞두고 가장 붐비는 곳이다. 하루 수백만 개의 택배가 몰린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까지 늘어 물류회사들은 연일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수만 명의 노동자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는 물건을 옮기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그들의 현실을 직접 들여다봤다.
물류센터의 노동 환경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15일 "정부나 연구기관 등이 나서 정확한 실태조사부터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물류센터는 외부인의 출입이 어려운 폐쇄적인 환경이고, 일하는 사람 90% 이상이 일용직이나 계약직이다. 그간 실태조사나 통계 등이 전무하다시피 한 이유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책을 얘기하려 해도 제대로 된 데이터가 하나도 없고 실태조사를 한 보고서도 찾기 힘들다"며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냉난방 시설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데도 누군가 죽거나 사고가 났을 때만 잠깐 주목을 받고 있고 잊히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안일한 인식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불과 1~2년 사이 물류센터가 급속도로 늘어났고, 풀필먼트(상품 보관·포장, 출하, 배송 등 일괄 처리) 시스템이 도입됐다. 물류센터가 'IT 공장'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 점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센터 한 곳에 수천 명이 모여 24시간 내내 일하고 있는데, 정부 정책을 보면 아직도 물류센터를 단순히 물품을 저장하는 창고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조차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야간노동'에 대한 대책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고 장덕준(27)씨 등 물류센터에서 야간에 일하다 과로사하는 경우가 빈발하자 정부는 올해 1월 유통업체들을 불러 야간노동을 최소화하고 새벽 근무 근로자의 건강관리에 신경 쓰라고 지적했다. 근무체계 조정 등 적극적인 개선 노력을 주문한 것이다. 이에 쿠팡 등 유통업체는 야간작업을 하는 근무자에게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하겠다는 정도의 개선책을 내놨다. 여전히 물류센터에선 야간에만 일하는 '야간 고정노동'이 가능하다.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제도적 감시가 발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쿠팡, 네이버, SSG닷컴 등은 풀필먼트 센터에 AI 알고리즘을 도입하거나 로봇 사용을 계획 중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도 빠른 배송, 효율적 관리를 위해 AI 알고리즘을 도입했지만,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는 더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알고리즘으로 기록·감시되다 보니 스스로를 옭아매게 돼 노동 강도가 저절로 강화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광석 서울과기대 IT정책대학원 교수는 "'속도전쟁'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알고리즘을 통한 노동통제 욕망이 끊임없이 생기고, 그걸 구현하려고 하는 게 지금의 쿠팡"이라며 "알고리즘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인 만큼 적정 수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맞춰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아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국장은 "쿠팡의 경우 고용을 빌미로 산업재해 신청을 사실상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런 사례들만 제대로 감독해도 건강과 안전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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