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개 무차별 포획 길 열어주는 야생생물법 개정 막아주세요

입력
2021.09.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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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야생생물법 개정안 막아달라는 '누렁이'

편집자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경기 과천시 갈현동 재개발지역에서 지내던 떠돌이 개들. 독자 제공

경기 과천시 갈현동 재개발지역에서 지내던 떠돌이 개들. 독자 제공

저는 올해 4월 서울 청계천을 떠돌다 시민들의 도움으로 구조된 '누렁이'입니다. (▶관련기사: 청계천 떠돌던 '누렁이', 19명의 시민이 살렸다) 시민들이 오픈채팅방에 모여 십시일반 비용을 모아 보호자를 찾기 위한 전단지도 붙이고 전문구조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새 삶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떠돌이 개를 직접 겨냥한 건 아니지만 떠돌이 개의 무분별한 포획 가능성을 열어주는 내용이 담긴 관련 법이 개정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중앙행정권한 및 사무 등의 지방 일괄이양을 위한 48개 법률 일부개정을 위한 법률'(지방일괄이양법)을 입법예고하고 15일까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는데요. 동물보호단체들은 이 가운데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개정안에 '야생화된 동물의 지정?고시'와 '수렵 강습기관의 지정'을 지자체에 이양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청계천을 떠돌던 누렁이(빨간 원안)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구조됐다. 독자 제공

청계천을 떠돌던 누렁이(빨간 원안)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구조됐다. 독자 제공

현재 야생화된 동물 관리는 환경부가 맡고 있습니다. 야생생물법 제24조에 따르면 생태계 교란 등의 우려가 있을 때 환경부 장관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해 가축이나 반려동물을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고시하고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제24조(야생화된 동물의 관리)
① 환경부장관은 버려지거나 달아나 야생화(野生化)된 가축이나 반려동물로 인하여 야생동물의 질병 감염이나 생물다양성의 감소 등 생태계 교란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그 가축이나 반려동물을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ㆍ고시하고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② 환경부장관은 야생화된 동물로 인한 생태계의 교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야생화된 동물의 포획 등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하지만 이번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각 시·도 역시 야생화된 동물의 지정?고시가 가능해집니다. 즉 지자체가 야생화된 동물을 지정해 포획할 수 있게 된다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동물로 인한 민원 발생 시 지자체가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해 총포를 이용한 포획과 사살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된 동물은 들고양이 1종(야생동물 및 그 알?새끼?집에 피해를 주는 개체)인데요, 법이 개정되면 떠돌이 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동물단체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들은 떠돌이 개를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하지 않은 지금도 해당 개체의 공격성 여부와 관계없이 민원이 들어오면 포획을 하고 있습니다. 인천 등에서는 1마리 당 50만 원씩 포상금까지 내걸며 떠돌이 개를 마구잡이로 포획해 논란이 되기도 했죠.

2018년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에 살던 떠돌이 개 상암이는 어깨 부위에 마취총을 맞고 쇼크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당시 유기동물 포획방법에 대한 비판이 빗발쳤고, 유기견 포획 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만2,000여 명이 서명하기도 했다. 인스타 zooin2013 캡처

2018년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에 살던 떠돌이 개 상암이는 어깨 부위에 마취총을 맞고 쇼크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당시 유기동물 포획방법에 대한 비판이 빗발쳤고, 유기견 포획 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만2,000여 명이 서명하기도 했다. 인스타 zooin2013 캡처

지자체에 야생화된 동물 지정 권한을 이양하는 것과 별도로 2017년 서울시는 포획의 어려움을 근거로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에 떠돌이 개를 '야생화된 유기견'이라고 규정하고 야생생물법상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후에도 농식품부는 환경부에 떠돌이 개를 '야생화된 유기견'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해왔습니다.

반면 환경부의 입장은 다릅니다. 유기견을 생태계를 교란하는 동물로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고 떠돌이 개의 야생화된 동물 지정을 반대해 왔습니다. 환경부는 떠돌이 개를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하기 위한 판단 기준이 모호한 데다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될 경우 결국 무분별한 포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번 개정안과 관련해 부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천에서는 개체당 포상금 지급으로 특별히 피해를 주지 않는 강아지들까지 민간업체가 모두 포획해 주민들의 비판이 거셌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인천에서는 개체당 포상금 지급으로 특별히 피해를 주지 않는 강아지들까지 민간업체가 모두 포획해 주민들의 비판이 거셌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는 야생화된 동물은 해당 개체로 인한 생태계 교란 발생 여부 등을 면밀하게 파악해 결정해야 하지만 각 지자체별 야생화된 동물이 다를 경우 정책에 혼선이 생기고 동물을 과도하게 포획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특히 개정안은 지자체가 떠돌이 개를 '손쉽게 처리'하는 데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합니다. 총기 사용에 따른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한 수렵강습기관 역시 철저한 검증하에 지정해야 할 사안으로 지자체에 이양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행안부에 개정안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는 한편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떠돌이 개의 무분별한 포획, 사살이 가능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는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떠돌이 개의 무분별한 포획, 사살이 가능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야생화된 동물 지정은 해당 동물과 지역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입니다. 생태계 교란 등의 우려에 대한 판단은 각 지자체가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합니다. 떠돌이 개를 포함해 지역 동물들의 과도한 포획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은 야생생물법 개정에 반대하며 포획, 사살이 아닌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도록 근본적 해결방안을 요청합니다.

떠돌이 개의 과도한 포획 가능성을 열어주는 내용이 담긴 야생생물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누렁이'가 낸 청원에 동의하시면 포털 사이트 하단 '좋아요'를 클릭하거나 기사 원문 한국일보닷컴 기사 아래 공감 버튼을 눌러주세요. 기사 게재 후 1주일 이내 500명 이상이 동의할 경우 해당 전문가들로부터 답변이나 조언, 자문을 전달해 드립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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