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강윤성이 쏘아올린 공

살인마 강윤성의 영웅놀이를 보면서

입력
2021.09.14 19:00
25면

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윤성이 7일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더 많이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사회가 X같아서 그런(범행한) 것이다.” “보도나 똑바로 하라.”

2021년 9월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후 2명의 여성을 살해한 강윤성의 말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그 가정을 박살 내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한 범죄자가 한 말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어이가 없다.

그저 살인마일 뿐이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서 본인을 대단한 영웅으로 만들고 싶었나보다. 자신의 살인에는 당당한 이유가 있고, 그런 자신이 꽤 멋져보일 것이라 생각했을까?

착각이다. 많은 범죄자들이 다를 바 없다. 그는 감정 조절이 안 되고,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자신의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자이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다른 사람도 화가 나지만 참는다는 것조차 모른다. 자신이 열받는 상황은 못 참으면서 본인이 남을 화나게 하는 것은 전혀 모른다. 그리고 자기는 단지 바른말을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지낸다. 때때로 살인사건을 조명하는 미디어 사업가들이 살인마의 극단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면서 ‘어떤 살인마가 살인에 즐거움을 느낀다’든지, ‘피를 보면서 흥분을 했다더라’는 말로 뭔가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살인자는 충동적이고 감정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일 뿐이다. 강윤성을 만나보지 않았지만 궁금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강윤성이 단지 이런 영웅놀이만을 한 것은 아니다. 강윤성은 우리 사회에 몇 개의 공을 쏘아 올렸다. 전자발찌에 대한 논란, 보호수용에 관한 논란, 그리고 신상정보 등록에 관한 논란까지 어찌 보면 상당히 재점검이 필요한 부분을 잘 터뜨려 준 것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사회가 범죄자 관리에 대하여 무지했던 부분을 건드린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전자발찌가 끊긴 것을 비난하고, 전자발찌 무용론을 이야기한다. 모르는 소리다. 많은 강력범죄자 면담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전자발찌가 범죄자들에게는 최악의 처벌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강윤성이 그러했듯 전자발찌 착용자들은 여름에도 긴바지를 입어야 했고, 같이 운동을 동료들과 한 이후에 샤워도 같이하기 어렵다. 새로운 직장을 얻을 때마다 동료들이 발찌를 인지할까봐 전전긍긍했고, 전자발찌를 풀어준다면 그 어떤 일도 받아들이겠노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전자발찌를 풀고 싶어서 교도소로 다시 가고 싶다는 이가 있을 정도였다.

영원히 다른 곳에 살게 하자는 보호수용의 문제는 이미 이를 실시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 그 부작용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이미 처벌을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격리생활을 한다고 여기는 보호수용자들이 반성은 없으며, 본인을 국가의 희생자라 여기며 오히려 갑질을 한다는 내용도 보고되었다.

신상정보로 등록된 얼굴과 실제 강윤성의 얼굴이 많이 차이가 난다는 것은 신상정보 등록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신상정보 등록은 법무부만의 일이 아니기도 하고 경찰의 협조가 필수적인 사항이다. 경찰이 본인의 업무가 아니라고 여기는 순간, 이 협조는 귀찮은 업무가 될 수밖에 없다. 경찰은 엄청난 수사인프라를 독점할 것이 아니라 치안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무부와 동등한 협력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강윤성의 사건은 사실 중범죄 출소자 관리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사건이다. 수많은 민원인과 예비 범죄자가 아닌 실제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를 관리하는 조직은 보호관찰소다. 그러나 과거 조사 결과 일반인들은 전자발찌와 출소자 관리의 일을 모두 경찰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모르다보니 치안 수요에 대응하는 선거 공약은 경찰에만 집중되고 있다.

우리는 더 많이, 더 제대로 알아야 한다. 보호관찰관이 그 무서운 출소한 범죄자를 관리한다. 그리고 그 출소한 범죄자의 성공적 정착은 때로는 법집행관, 때로는 상담사, 때로는 사회복지가로 변모하는 보호관찰관의 역할이 크다. 범죄자의 재범은 보호관찰의 질과 직결된다. 강윤성은 본인이 무엇을 쏘아 올렸는지 모를 테지만, 그를 보면서 우리는 영웅놀이에 대한 개탄만이 아닌 안전을 위한 보호관찰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이제 보호관찰관의 증원과 조직의 확대를 고민해볼 시기이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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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랑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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