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로켓배송에 '갈리는' 노동자 ... 10명 중 7명 "근육통·전신피로"

입력
2021.09.16 09:00
단순 육체 노동자보다도 두 배 이상의 노동강도
탈수 증상에 신부전까지 ... "더한 증상 나올 수도"

편집자주

물류센터는 추석을 앞두고 가장 붐비는 곳이다. 하루 수백만 개의 택배가 몰린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까지 늘어 물류회사들은 연일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빠른 배송'을 앞세우며 속도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수만 명의 노동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물건을 옮기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그들의 현실을 직접 들여다봤다.

추석을 일주일여 앞둔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단지에서 택배사 직원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물류센터에서 물품을 실어 나르거나 포장 등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 10명 중 7명이 상·하체 근육통에 시달리고, 전신피로 증상을 호소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0명 중 6명은 자신이 하는 일이 건강을 해치거나 위험한 일로 여기고 있고, 5명은 육체적으로 '항상 지친다'고 답했다.

노동 강도와 근무 중 심박수 등을 고려하면 하루 적정 근무시간은 4.5시간이었으나, 실제 평균 근무시간은 9시간으로 두 배에 달했다. 조사를 맡은 연구진은 "유사한 육체노동을 하는 농어업인이나 건설노무직보다 건강상 문제를 호소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며 "긴급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란 진단을 내렸다.

서울성모병원 김형렬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와 쿠팡 물류대응 연구팀은 7월 26일부터 한 달 동안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356명을 대상으로 설문·실태조사를 실시한 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만들었다. 물류센터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울감·불안감, 다른 직업군보다 10배 많아"

그래픽=송정근 기자

15일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보고서 초안을 보면 '12개월 동안 겪은 건강상 문제'를 묻는 질문에 노동자 73.6%가 상지 근육통, 71.6%가 전신피로, 68.8%는 하지 근육통을 겪었다고 답했다. 세 질병 모두 응답자의 93%가 '업무로 인한 발생'으로 판단했다. 두통(57%)과 요통(44.7%), 피부 문제(43%), 소화장애(37.6%) 등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많았다.

이는 육체노동을 하는 타 직업군에 비해 물류센터 노동자가 두 배 이상의 고통을 받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안전보건공단이 같은 방식으로 2017년 실시한 5차 근로환경조사를 보면, 단순노무 종사자들은 35.4%가 상지근육통을, 26%는 하지근육통, 30.2%는 전신피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농어업 종사자들의 경우 53%가 상지근육통을, 49%가 하지근육통, 38.4%가 전신피로를 느낀다고 했다.

정신건강에도 적신호가 감지됐다. 356명의 노동자 중 34.3%가 우울감을, 36%는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들 중 70%는 '업무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고 했다. 앞서 살펴본 5차 근로환경조사를 보면, 우울감과 불안감이 가장 높게 나타난 직군은 예술·스포츠 종사자였는데, 그 비율이 4.8%였다.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얘기다. 연구진은 "우울감이 거의 대부분 직군들보다 10배 이상 높게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류센터 근로자 절반 "휴식시간에도 쉴 곳이 없다"

작업의 힘든 정도

연구팀은 과도한 노동 강도에서 원인을 찾았다. '작업의 힘든 정도'를 묻는 질문에 73%가 '빨리 걷는 수준 이상의 힘듦'이라 답했고, 이 가운데 28.4%는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마라톤을 해서 체력이 고갈되는 정도'라는 답도 7%나 됐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또한 35.3%는 '근무시간 대부분'을, 12.4%는 '근로시간 내내' 매우 빠른 속도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 역시 5차 근로환경조사의 단순노무 종사자보다 세 배가량 높은 수치다. 작업 후 육체적으로 지치는 경우가 '항상 있다'는 응답은 50.8%에 달했고, 정신적으로 항상 지친다는 비율은 31.7%였다.

제대로 된 휴식이 보장되지 못하고 지나친 통제나 감시가 존재한다는 점도 드러났다. 23%는 관리자의 허락이나 작업 속도 저하 방치 등을 이유로 화장실 이용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고, 27%는 이로 인해 수분 섭취를 제한받는다고도 했다. 휴식시간에도 44%는 쉴 곳이 마땅치 않거나 일하는 공간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연구팀 "예상보다 심각한 결과... 긴급한 대책 나와야"

추석을 일주일 여 앞둔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단지에서 택배사 직원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번 조사는 김형렬 교수의 외래 환자 진료 경험이 계기가 됐다. 쿠팡 고양 물류센터에서 일한 이 환자는 새벽까지 실내 온도가 34도를 웃도는 곳에서 일하다 쓰러졌다. 김 교수는 "탈수 증상에 의한 급성 신부전이 원인이었는데 그 더운 공장에서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몇 시간을 뛰어다녔던 것"이라며 "열악한 근로 환경으로 인해 집단적으로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전형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상을 뛰어넘은 조사 결과라고 했다. 그는 "근로자 8명의 근무 중 평균 심박수를 측정해봤는데 적정한 노동시간이 4.5시간이란 분석이 나왔다"며 "하지만 대부분은 9시간가량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편한 자세로 무거운 짐을 계속 옮겨야 하는 여건에다 더위와 추위, 먼지로 인한 호흡 문제까지 가중되고 있는 만큼 긴급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더 심각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는 물류센터 노동자 1,000명에게 무작위로 설문, 응답한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여성이 53%로 조금 더 많았고, 연령대는 20대 36%, 30대 29%, 40대 20%, 50대가 15%였다. 57%가 일용직, 43%는 계약직이었다. 평균 근무기간은 계약직 21개월, 일용직 14개월이었으며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8.65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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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환구 기자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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