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47톤 옮기는 물류센터 노동자의 절규 "우린 기계가 아니다"

입력
2021.09.16 04:30

편집자주

물류센터는 추석을 앞두고 가장 붐비는 곳이다. 하루 수백 만개의 택배가 몰린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까지 늘어 물류회사들은 연일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수 만 명의 노동자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는 물건을 옮기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그들의 현실을 직접 들여다봤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와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물류센터 내 휴대전화 반입을 금지하는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인권위에 민원을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47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하루에 취급하는 물건의 무게다. 절반 정도는 장비의 도움을 받지만, 나머지는 맨몸으로 옮긴다. 근로복지공단 산하 병원에서 일하는 한 의사는 ‘허리가 나가서’(요추 염좌) 산업재해를 신청한 환자의 작업환경을 확인하러 물류센터를 찾았다가 47톤이란 숫자를 들었다고 했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던 그는 "이러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일반 물품을 비롯해 농·축·수산물, 식품, 화학물 등을 보관하는 물류센터(전체 면적 4,500m² 이상)는 총 4,658개에 이른다. 작년 한 해에만 728개가 새로 생겼다.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택배 주문이 급증하자 국내 온라인 배송시장 1위 업체 쿠팡을 필두로 네이버와 CJ 신세계 롯데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전국 곳곳에 유통센터를 짓고 있다.

크게 늘어난 최첨단 물류센터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숫자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에만 8만여 명이 일하고 있다. 삼성·현대차 등에 이어 고용 4위 기업이다. 고용시장이 얼어붙은 와중에 물류업체들이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설립된 물류센터들은 더 이상 먼지가 날리는 창고가 아니다. 인공지능(AI) 시스템을 도입해 상품을 배치·관리하는 등 '빠른 배송'에 최적화된 첨단 IT 공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 너머엔 짙은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사실 물류센터는 철저히 은폐된 공간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 흔한 연구 보고서도 하나 없을 정도로 내부 작업 환경이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다"고 했다. 일용직 계약직이 절대 다수여서 노동 현실을 알릴 주체가 없었고, 작업 시스템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해 학계나 노동계에서도 현실을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올 들어 산재 사망사고와 대형 화재,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잇따라 발생하며 물류센터의 노동 환경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건설 노동자보다 더 혹사당하는 물류센터 노동자

드러난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다.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등이 쿠팡 물류센터 근로자 356명을 대상으로 첫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10명 중 7명이 근육통과 전신피로를 호소했다. 건설현장의 근로자보다도 번아웃(탈진) 증상이 훨씬 심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냉난방 시설이 없어 더위나 추위에 매우 취약하다는 문제도 있다. 김 교수는 "과거 중미에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긴 상황과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노동계에선 19세기 후반의 자동차 공장을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온다. 노동권이 확립되기 이전의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상황이란 말이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물류센터는 사람을 부품처럼 쓰고 버리는 21세기형 공장"이라며 "전태일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15일 첫 실태조사 결과를 단독 입수하고, 하루 동안 일용직으로 취업해 물류센터 내부의 깊고 어두운 현실을 직접 들여다봤다. 그곳의 노동자들은 말했다. "우리는 물건을 옮기는 기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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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환구 기자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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