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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집단 항거한 덴마크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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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4월 9일 덴마크에 나치가 진주했고, 당시 내각은 곧장 항복·협력 의사를 천명했다. 경찰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이 나치 주둔군 사령관 지시를 받게 된 거였다. 나치는 5월 12일, 57개 군수사업장에 대한 특별 경비를 경찰에 지시했다. 1만여 덴마크 경찰은 조직적으로 명령 이행을 거부했다.
나치는 게슈타포를 앞세워 9월 19일부터 경찰관 체포 작전을 시작했다. 나치에 동조한 경찰과 치안보조요원을 대거 투입했다. 설은 엇갈리지만 1940년 한 해 동안 경찰 수천 명이 체포돼 부헨발트 등 집중수용소와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적십자사 중재하에 덴마크 내각과 독일 주둔군 당국은 전쟁 종료 직전 병자 등 일부 경찰 수감자를 풀어줬지만, 대부분은 수감된 채 종전을 맞이해야 했다. 1968년 집계에 따르면 수용소 수감 중 경찰 약 90명이 질병과 부상 등으로 숨졌고, 약 40명이 후유증으로 희생됐다. 9월 19일은 그 항거와 희생을 추모하는 덴마크 경찰의 공식 기념일이다. 공권력은 정권이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날이기도 하다. 덴마크 작가 유시 아들레르올센의 매혹적인 범죄 스릴러 '유리병 편지'에 이 사건이 스치듯 언급된다.
1981년 뉴욕타임스 한 칼럼니스트(Whitney North Seymour Jr.)가 공권력과 범죄에 대한 글을 쓰면서, 1940년 덴마크 경찰의 대규모 해고·축출 사건과 그 여파를 예시로 들었다. "독일 점령군에 의해 코펜하겐 경찰이 모두 투옥되자, 도시는 즉각 범죄 파도에 휩쓸렸다. 체포-기소-처벌의 위험이 사라지자마자 강도사건 발생률은 10배가량 증가했다."
뉴욕 덴마크 총영사가 그 칼럼을 반박했다. 그는 당시 범죄 대부분은 친나치 경찰과 그의 조력자들에 의해 사실상 약탈로 저질러졌으며, 시민들은 경찰을 숨겨주며 레지스탕스에 합류하거나 스웨덴 등 인근 국가로 피신하는 걸 적극 도왔다고. 실제로 나치에 체포돼 수감된 경찰은 1,700여 명이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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