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가 남긴 어두운 유산... '고문'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입력
2021.09.13 21:00
NYT, 前 관타나모 수감자 '슬라히' 조명
수면·물고문 후유증으로 PTSD 시달려
"CIA의 자백 강요가 신뢰성 떨어뜨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십자가 조형물 뒤에서 세계무역센터(WTC) 건물이 테러 공격으로 무너지는 모습. 미국 비밀경호국(SS) 트위터 캡처

물고문을 당했다. ‘잠 안 재우기’는 일상이었다. 심지어 가족에 대한 성범죄 위협까지 받았다. 인권 유린이 만연해 있는 나라에서, 또는 잔혹한 무장집단에 의해 벌어진 일이 아니다. ‘세계의 인권 수호자’를 자임해 온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용의자들을 상대로 거리낌없이 자행한 범죄다.

3,000명에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테러가 발생한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으나, 미국이라는 ‘국가’에 의해 용의자로 지목돼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고문을 받았던 이들은 9·11의 ‘어두운 유산’으로 오늘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리 9·11 테러의 피해자라 하지만, 당시 미국은 테러에 연루됐다고 볼 만한 흔적이 한줌이라도 있으면, 뾰족한 증거가 없다 해도 누구든 마구 잡아들였다. 어쨌든 테러범은 응징했고 아프간 전쟁도 이제 끝났으나, 미국의 이 같은 반인권적 행위가 남긴 상처는 조금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테러범의 입을 열겠다는 명목으로 벌인 고문과 그 결과가 되레 현재 미 안보당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문 뒤 이어지는 후유증

12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9·11 테러 용의자로 몰려 14년(2002~2016년)간 ‘인권침해의 대명사’로 악명 높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던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50)는 출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 불면증은 기본이고, △부주의 △환청 등 청각 장애 △만성적 허리 통증 △일정 기간 동안의 기억상실 등 증세는 사라지지 않는다.

원인은 수감 당시 받았던 끔찍한 고문에 있다. 슬라히는 2001년 12월, 그러니까 9·11 테러 3개월 후 고향인 서아프리카 모리타니공화국에서 갑자기 미 정보기관 요원들한테 끌려갔다. ‘테러 용의자’라는 이유였다. 증거는 1998년 말쯤 알카에다 일원이던 그의 사촌이 조직 수장 오사마 빈라덴의 위성 전화로 그에게 건 전화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1999년 독일 유학 당시 이슬람 남성 3명에게 식사를 대접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9·11 테러 핵심 용의자인 람지 빈 알 시브라였다는 것 등이다.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 트위터 캡처

엄밀히 말해 그냥 ‘약한 수준’의 정황 증거였을 뿐이다. 슬라히의 테러 가담 의혹을 뒷받침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2, 3년 전 일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9·11 사태 직후 비이성적 분노로 들끓었던 미국의 상황 탓에 그는 정식 기소도, 재판 절차도 없이 2002년 8월 관타나모에 갇혔다.

그 이후는 ‘고문의 나날’이었다. 족쇄 착용과 폭행으로 갈비뼈 등이 부러지는 건 다반사였다. 사나운 개로 위협하거나, 강제로 옷을 벗긴 뒤 성적 모욕을 가하는 일도 흔했다. 특히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어머니를 끌고 와 성적 학대를 하겠다”는 협박까지 이어졌다. 수일간 잠을 재우지 않기 위해 폭발음이나 시끄러운 음악, 강한 불빛, 차가운 물 등도 동원됐다. 그 결과가 지금의 고문 후유증이라는 게 NYT의 설명이다.

슬라히는 14년 만인 2016년에야 ‘자유의 몸’이 됐다. 수감 당시 그의 자백은 국제법과 미국법에 반하는 고문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진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라히에게 가해진 폭력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안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정부가 뚜렷한 증거도 없이 한 사람을 무작정 구금해도 되는 것인지, 인류 보편의 윤리와 인권을 짓밟는 고문을 하는 게 과연 온당한 처사인지를 두고서다. NYT는 “9·11 테러 발생 20년이 지난 지금도 고문의 유산이 복잡하고 다면적으로 남아 있다”며 “미국은 안보라는 미명하에 진행된, 잔인한 심문의 결과를 두고 여전히 씨름하고 있다”고 평했다.

美 당국 발목잡는 고문 역사

사실 관타나모 수용소의 비인간적 실태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이미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001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이 수용소를 비롯해 아시아, 유럽 등 기밀 시설에서 테러 용의자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고문을 했다는 보고서가 2014년 미 상원에서 공개됐다. 당시 보고서에는 포로들에게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한 채 최대 180시간에 걸쳐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거나, 수십 차례 물고문을 가했던 사실 등이 적시돼 있다. 미국 정부의 고문 행각은 2009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이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비로소 ‘공식적으로’ 중단됐다.

2001년 9월 14일 조지 W 부시(가운데) 당시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 사흘 후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미국 비밀경호국(SS) 트위터 캡처

그러나 ‘인권 흑역사’ 얼룩은 지워지지 않은 채 오점으로 남았다. 제드 레이코프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 판사는 최근 저서에서 “이(고문)는 문명화된 집단이나 미국 사회가 수행하는 방식이 아니다”라며 “9·11 이후 관타나모에서 벌어진 일로 인해, 법적·도덕적 접근법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올해 6월 미·러 정상회담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했을 때, CIA의 고문 사실을 언급하며 “그게 인권인가”라고 비꼰 것으로 알려졌다.

‘강요된 자백’이 미 안보당국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말았다는 지적도 있다. 20년 전 뉴욕에서 아들을 잃은 아델리 웰티는 “정말로 그들(용의자)이 말하는 게 진짜인지, 단지 고문을 멈추기 위해 (거짓 자백을) 한 것인지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테러 용의자 재판을 위해 만든 ‘관타나모 군사위원회’가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최근 재개된 9·11 테러 용의자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테러 설계자’로 알려진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전 알카에다 작전사령관 등 핵심 용의자 5명은 ‘고문에 의한 자백’을 주장하고 나섰다. 결국 이들에 대한 미 수사당국의 심문 내용이 증거능력을 갖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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