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타워 없는 정부 '건설노조 갑질 방치', 법도 유명무실

입력
2021.09.15 04:30
<3> 정부 뒷짐에 무법천지 건설현장
건설업체 95% 채용절차법 예외 30인 미만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도 제재필요
현행법 '건설기계노조 불공정' 사실상 못 잡아

호남지역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 설치된 타워크레인의 모습. 이 현장의 타워크레인 임대업체는 자기노조 소속 기사들의 채용을 강요하는 건설노조원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윤현종 기자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건설노조의 채용 강요 행위에 대한 지난 2년간의 실태 조사 결과를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경찰청에 요청했지만 관련 자료를 받지 못했다. 특히 건설기계분야 노조 집회 때 발생한 불법행위 단속 결과에 대해선 정부에서 수집된 자료가 전혀 없었다. 권익위 관계자는 “정부의 어느 부처도 건설노조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 없고 컨트롤타워도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전국 건설현장에서 지난 5년간 하루 평균 23회꼴로 집회가 열리고 있을 정도로 현장 분위기가 어수선하지만 당국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노조의 채용 강요를 못 이겨 특정 노조만 채용하겠다는 불법 합의서 작성이 잇따르고, ‘사장님 노조원’이 비노조 기사의 일감을 버젓이 뺏고 있는데도 당국의 제재는 거의 없었다. 법이 있어도 유명무실했기 때문이다.

건설업체 95% 채용절차법 예외 30인 미만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은 누구든지 채용 공정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할 수 없고 채용에 관한 부당한 청탁, 압력, 강요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설노조에서 자기 노조원만 고용하라고 업체에 강요해선 안 되고, 사측도 이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2019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상시 근로자 3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는 맹점이 있다.

고용노동부 사업체 노동실태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건설업 사업체는 12만110개로, 이 가운데 30인 미만 사업체는 11만3,600개(95%)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건설업체 10곳 중 9곳 이상은 노조의 ‘자기 노조 우선 채용’ 요구가 있어도 채용절차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해당 법령으로 건설노조가 처벌 받은 사례는 단 1건뿐이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법적 미비와 함께 일선 감독청이 건설노조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꺼리는 것도 문제”라며 “채용절차법을 개정해 3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도 제재해야

사업주가 파업을 막기 위해 노조의 채용 강요에 응했다가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다. 수원지법은 2019년 4월 경기도 안양의 한 사업주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혐의로 벌금 200만 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업주가 2017년 10월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특정 노조 조합원만 채용한다는 협약을 체결한 뒤 이를 고용 조건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했다. 다만 사업주가 파업을 막기 위해 이 같은 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실형이 아니라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노조는 처벌조항 자체가 없어 기소되지 않았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현행 노조법에선 노조 강요로 사업주가 특정 노조원을 채용해도 사업주만 처벌된다”며 “사업주가 노조 강요로 부당노동행위를 한 경우, 사업주를 면책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설기계노조의 불공정’ 못 잡는 공정거래법

영남지역의 덤프트럭 임대업자 A씨는 지난해 6월 지역 공정거래사무소에 건설기계노조를 처벌해 달라며 민원을 제기했다. 현장 하도급업체와 맺은 장비공급계약이 노조의 개입으로 파기돼 1억 원의 매출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사무소는 "노조는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인 사업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심의 종결했다.

공정위는 그러나 국회에는 다른 입장을 전달했다. 노조의 시장 불공정 행위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낸 것이다. 사업자를 조합원으로 둔 노조의 경우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로 규정하도록 한 권은희 의원실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내놓은 답변이다.

공정위는 검토 의견서에서 "건설기계 대여업자 등 사업자 노조가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방해하거나 가격을 결정하는 행위는 금지행위로 규율하고 있다"며 "별도 입법을 안 해도 현행법으로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난 9일 경기 화성에 있는 한 건설중기 회사 앞에 주차되어 있는 노조 명패가 붙은 방송차량. 확성기가 설치된 방송차량 소유주는 건설중기 회사 사업주로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이날도 노조 소속인 사업주는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해 자신의 굴삭기, 덤프트럭을 운영하고, 노조 집회에 참가했다. 화성=김영훈 기자

하지만 공정위가 건설기계노조에 철퇴를 내린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현행법은 노조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권은희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노조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한 경우는 27건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건설기계노조가 조사받은 사례는 25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공정위 의결을 거쳐 과징금이나 시정명령 등 강제성 있는 제재를 받은 적은 없었다. 25건 중 경고가 12건, 주의 촉구가 6건이었으며, 7건에 대해선 심사 자체를 안 하거나 문제가 없다며 종료했다.

노조에 일감을 뺏긴 적이 있다는 경기도의 한 굴착기 기사는 "노조에 공정거래법 적용이 가능했다면 노조에 일감을 뺏긴 민원인들의 하소연이 조금이라도 줄었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건설노조 갑질 방지를 위한 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 그래픽=송정근 기자


윤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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