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스티커 없는 중장비 들어오면 바로 실력행사... '부울경은 민노천하'

입력
2021.09.14 10:30
<2>사장단 모임이 된 건설기계노조
비노조원과 밉보인 노조원 일감 뺏기기 일쑤
하도급업체가 조합원 채용 거부 땐 공사방해
"우리가 법이라며 단협 강요" 드론 띄우기도
"일감 안주면 모든 공사현장 작업 스톱" 통보도

건설기계노조는 굴착기, 덤프트럭, 기중기, 지게차 등 26개 장비 소유주들로 구성돼 있다. 특정 노조가 소속 조합원 장비 외에는 공사장을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가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울산의 한 골프장 공사현장 중장비들에 '민주노총 건설노조' 스티커가 붙은 모습. 이곳에선 이 스티커가 없는 중장비는 공사장에 드나들 수 없다고 한다. 울산=윤현종 기자


"여기에선 민주노총에 밉보이면 밥 벌어 먹고 못 산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울산에서 굴착기(포클레인)를 운전하는 최모(53)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굴착기 1대를 보유하고 있는 그는 건설현장에서 굴착기를 직접 운전하는 개인 사업자로 분류된다. 그는 2014년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에 가입했지만, 최근 노조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명됐고 멀쩡한 일자리마저 잃게 됐다.

최씨는 지난 5월부터 울산의 골프장 공사현장에서 하도급업체와 계약한 뒤 작업에 투입됐다. 근로계약서 없이 일당 40만 원을 받는 '일용직' 구두 계약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초 민주노총 울산지부가 이 업체와 단체협약을 추진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울산지부는 최씨에게 단협을 맺기 전까지 작업을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자신을 다른 조합원으로 바꿀 것을 우려한 최씨가 노조 지시를 거부하자, 노조는 최씨를 제명했다. 하도급업체는 이후 울산지부와 단협 계약을 하면서 조합원 신분이 아니었던 최씨를 해고했다. 울산지부와 업체 사이의 합의서에는 '최씨를 8월 15일까지 출차(내보낸다)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무법인 하율 박사영 노무사는 "합의서 내용은 특정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독소조항이 담겨 있어 무효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그러나 노조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엄두를 못 낸다. 그는 "고소하면 노조가 총 보복에 나설 거고 다시는 이 일을 못 할 수도 있다"고 두려워했다.


건설기계노조 구성 및 공사 계약 흐름도. 그래픽=신동준 기자


하도급업체가 민주노총에 꼼짝 못 하는 건 민주노총이 인근 지역 건설현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업체가 조합원 채용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민주노총은 건설현장에 몰려가 대형 확성기로 공사를 방해하고 사소한 안전 부주의를 문제 삼아 무더기 고발을 이어간다. 최근엔 고발거리를 찾기 위해 드론까지 띄운다고 한다. 하도급업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민주노총의 공사 중단 협박이다. 조합원 파업은 인근 지역 대다수 건설현장의 '올스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조 파업으로 공사가 멈추면 원청인 건설사는 손해 비용을 고스란히 하도급업체에 떠넘긴다.

지난 6월 1일부터 경남 김해시 테마파크 공사현장에서 하도급업체와 계약하고 굴착기를 운전하던 비조합원 신모(52)씨도 출근 1주일 만에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일자리를 뺏겼다. 부산과 경남 지역을 관할하는 민주노총 부산지부 간부들이 하도급업체를 찾아가 '일감을 안 주면 부산과 경남지역 모든 현장의 작업을 멈추겠다'고 통보하자, 겁먹은 하도급업체는 신씨와의 계약을 바로 해지했다.

이처럼 '부울경' 건설현장에선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니거나 조합원이라도 노조에 잘못 보이면 일감을 뺏긴다는 말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 건설업계와 기사들 사이에서 '부울경은 민주노총 천하'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말 굴착기 기사인 최씨가 일하다가 쫓겨난 울산의 골프장 공사현장을 직접 가보니 굴착기와 지게차, 덤프트럭과 불도저 등 현장을 드나드는 모든 중장비에는 연두색 '민주노총 건설노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울산에서 덤프트럭 장비임대업을 하는 이모 대표는 "저 스티커가 없는 중장비가 한 대라도 공사장에 들어오면 바로 공사를 멈추고 민주노총이 실력 행사에 나선다"고 말했다.

울산지역 공사현장 소장들은 심지어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우리 말이 여기선 법'이라며 단협 체결을 강요한다"고도 토로했다. 민노총 울산지부 측은 이에 대해 "건설기계노조가 단체협약을 맺은 건 울산이 최초라는 뜻이었다"며 "의미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해명했다. 민주노총 부산지부는 본보 취재 요청을 거부했다.


지난 9일 경기 화성시 한 건설중기 회사 앞에 주차되어 있는 노조 명패가 붙은 방송차량. 확성기가 설치된 방송차량 소유주는 건설중기 회사 사업주로 민주노총 건설기계노조 조합원이다. 이쪽 지역 외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법인 사업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화성=김영훈 기자


민주노총 울산·부산지부 조합원 가운데 일부가 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법인 사업자라는 점도 문제다. 그러나 조합원이 되면 하도급업체로부터 일감을 따내기 쉽다는 이유로 일부 법인 사업자들은 꾸준히 노조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는 "가입 단계에서 법인 사업자 여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업계에선 노조 해명에 의구심을 나타낸다. 법인 사업자를 통해 조합원 숫자를 늘릴 뿐 아니라 이들의 영업망이나 풍부한 장비가 일감을 따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노조가 사실상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인 사업자와 노조가 사실상 '윈윈' 하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반면 노조의 도움이 필요한 법인 소속 일용직 기사들의 경우, 노조 문을 두드려도 받아주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는 민주노총 부산지부 현직 간부인 박모 대표가 지게차 등 건설장비 17대를 보유한 법인 사업자란 사실을 건설기계등록원부를 통해 확인했다. 등록원부에 명시된 17대의 채권가액(해당 차량의 가치)은 8억 원에 달했고, 이 중 4대는 박 대표의 친척 명의였다.

한국일보는 작년까지 민주노총 울산지부 소속이었다가 탈퇴한 전직 조합원을 통해 조합원으로 등록된 덤프트럭 소유주 명단도 확인해봤다. 덤프트럭을 두 대 이상 가진 법인 사업자만 30명 가까이 됐다. 민주노총 울산지부 조합원이면서 덤프트럭을 4대 보유한 하모 대표는 "내가 직원만 15명 이상이고 건설회사도 운영한다. 나 같은 (법인사업자) 노조원들이 많이 있다"며 '사장님 노조원'이 적지 않음을 인정했다.

민주노총 울산지부 측은 "법인 사업자 30여 명 중 3분의 1은 이미 탈퇴했고 지금도 발견되면 계속 정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태석 기자
울산= 윤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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