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신청 안 하면 바보'... 고무줄 재난지원금이 불 지핀 추가 논란 세 가지

입력
2021.09.12 20:00
재난재원금 이의신청 폭주에 지급 범위 확대 방침
같은 조건인데 이의신청 해야만 받을 수 있어
추가 재원 마련은 어떻게... 정부 신뢰도 타격 불가피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 길음1동 주민센터에서 재난지원금 사전 상담 및 지급 제외 대상자 이의신청 접수가 이뤄지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이의신청 폭주로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소득 하위 88%에서 90% 수준으로 늘리기로 한 당정의 ‘고무줄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명확한 기준 없이 이의신청을 최대한 구제해주기로 해 벌써부터 형평성 논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이의신청 여부에 따라 재난지원금을 수령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급을 시작한 지 1주일도 안 돼 정책을 뒤바꾸면서 정부 정책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은 물론, 3,000억 원 안팎의 추가 재원 마련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①원칙 없는 확대에 형평성 논란 자초

12일 당정에 따르면 정부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이들의 이의신청이 크게 늘자 국민의 88%에게 주려던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약 90%로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이의신청 폭주와 같은 혼란은 재난지원금 편성 논의 때 이미 예고됐었다.

건강보험료로 가구 소득 수준을 파악하기 어렵고, 지급 범위를 어떻게 하든 경계선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계속됐지만, 건강보험료로 기준을 정하면서 혼란을 자초한 셈이다.

이후 대처도 주먹구구식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의신청 폭주 지적에 대해 “판단이 애매모호하면 가능한 한 지원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을 최대한 구제하겠다는 취지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어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크다.

당장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도 이의신청 여부에 따라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재난지원금은 올해 6월 30일 주민등록상 가구를 기준으로 지급하지만, 7월 이후 가구원 수가 변경됐다면 이의신청을 통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예를 들어 30만 원의 건강보험료를 내는 맞벌이 부부가 7월에 아이를 낳았다면 가구원 수가 3명으로 늘어 지급 기준(3인 맞벌이 31만 원)을 충족한다. 같은 조건이라도 이의신청 여부에 따라 누구는 75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긴다고 입을 모았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급 기준 설계가 잘못됐다”며 “지급 범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더는 없도록 당정이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추가 대상자 선정을 위한 행정 비용도 부담이다.


②추가 재원 불용예산 충당한다지만... "재정 편성 원칙 무시" 지적

추가 재원 마련 방안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경계선에 있는 분들이 억울하지 않게 지원금을 받도록 조치하는 게 최대 과제”(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라고 밝힌 여당은 불용예산을 추가 소요재원 해법으로 제시했다. 재난지원금 대상(약 100만 명)이 2%포인트 늘면서 필요한 예산 3,000억 원을 코로나 손실보상금 등 남는 예산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추가 재원 마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당정의 방침에 대해 “재정 편성 원칙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필요에 따라 예산을 짤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다 쓰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용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예산이 남았다면 예산 편성 목적을 살펴 집행률을 높이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③지급 범위 70%→80%→88%→90% 확대... "국민 불신 키워"

정부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면서 정책 신뢰도 타격 역시 상당하다. 정부는 당초 소득하위 70%에게 지급 계획을 세웠지만 당정 협의를 거치면서 80%→88%→90%로 대상이 늘어났다. 이의신청을 최대한 구제하겠다는 방침인 만큼 지급 경계선에 있는 이들이 불만을 쏟아낼 경우 대상이 또다시 확대될 거란 우려도 적지 않다.

김 교수는 “명확한 기준도 없이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확대해 이를 받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 간의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있다”며 “11조 원의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 불신만 커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세종=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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