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20년 맞은 날, '상징기' 올린 탈레반... 美 도발?

입력
2021.09.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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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과도정부 업무 시작해 깃발 게양"
WP "탈레반 다시 돌아온 것 상기시킨다"

한 탈레반 전사가 지난달 아프가니스탄 북부 칸다하르주에서 순찰용 차량에 탈레반 깃발을 달고 있다. 칸다하르=EPA 연합뉴스

한 탈레반 전사가 지난달 아프가니스탄 북부 칸다하르주에서 순찰용 차량에 탈레반 깃발을 달고 있다. 칸다하르=EPA 연합뉴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 출범을 알리며 11일(현지시간) 이 나라의 대통령궁에 흰색 탈레반 상징기를 게양했다. 9·11 테러 배후인 극단주의 무장단체 알카에다와 그 수장 오사마 빈라덴(2011년 사망)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줬던 탈레반이 공교롭게도 하필 테러 20년을 맞은 날, 정부 업무 시작을 공식화한 것이다. 의도했던 것인지는 불확실하나,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됐다.

11일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탈레반 대변인은 “아프간 대통령궁에 탈레반 깃발을 걸었다”고 밝혔다. 과도정부 수장을 맡은 물라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 총리대행이 직접 탈레반 상징기를 올렸다. 아마둘라 무타키 탈레반 문화위원회 멀티미디어 국장은 “탈레반 깃발 게양은 과도정부의 업무 시작을 알린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앞서 탈레반이 7일 새 정부 내각 명단을 공개했던 만큼, 사실 대통령궁에 상징기를 내거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면으로 비판할 구석도 딱히 없다. 문제는 시점이다. 이날은 9·11 테러가 발생한 지 딱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2001년 9월 아프간 집권세력이었던 탈레반이 당시 “빈라덴을 넘겨 달라”는 미국 요청에 응하지 않는 바람에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20년 후인 지금 사실상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9·11 테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탈레반 깃발이 아프간 대통령궁에서 이날부터 펄럭이기 시작한 건 그 자체로 상징적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바로 그 시간, 미국에서는 9·11 테러 희생자 추모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탈레반의 깃발 게양은 20년간의 전쟁 끝에 결국 무장단체가 다시 돌아온 사실을 상기시켜 줬다”고 평했다.

검은 천으로 온 몸을 가린 아프간 여성이 11일 친(親)탈레반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검은 천으로 온 몸을 가린 아프간 여성이 11일 친(親)탈레반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탈레반은 9·11 테러 20년을 맞아 별도로 성명을 발표하진 않았다. 현재 이들은 테러 이슈 대응보다는 아프간 내부 권력를 공고히 하고,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 인정을 받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탈레반이 국제적 차원에서 인정받게 되리라는 긍정적 신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도정부가 비(非)탈레반 또는 여성 인사는 단 한 명도 없이 배타적으로 구성됐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탈레반은 온 몸을 검은 천으로 가린 여성들을 시위에 동원하며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날 시위에 나선 여성들이 “우리는 탈레반 정권을 지지한다” “반(反)탈레반 시위 참가자가 모든 아프간 여성을 대표하진 않는다” 등 구호를 외쳤다고 보도했다. 탈레반 교육부는 “여성도 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의 남녀분리를 반기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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