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훼손범들, 총격살해에 해외도주도..."경각심 저하 가장 큰 애로"

입력
2021.09.11 19:00
강윤성 사건으로 돌아본 전자발찌 제도
2008년 성범죄자 대상 시행... 살인·강도범 등 확대
전자발찌 훼손 잇따라 6차례 개선했어도
훼손 후 경찰 총격 살해, 해외도주 사건도 발생
보호관찰관 "경각심 저하·자포자기 가장 큰 애로"
전문가 "장관이 의지 갖고 교정업무 우선 추진해야
옛날식 교정프로그램 개선 등 패러다임도 바꿔야"

'전자발찌 살인' 피의자 강윤성이 7일 오전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면서 기자들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강씨는 지난달 31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러 가다가 취재진을 향해 발길질을 했지만 이날은 시종일관 고개를 숙인 채 피해자들에게 사죄한다는 발언을 하는 등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왕태석 선임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8시 서울 송파경찰서로 차량 한 대가 들어섭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절단하고 도주한 강윤성(56)이 자수하려고 제 발로 경찰을 찾아 온 것이었죠. 그가 타고 온 차량 뒷좌석에는 도주한 뒤 두 번째로 살해한 50대 피해 여성의 시신도 실려 있었습니다. 이틀 뒤인 이달 1일에는 전남 장흥에서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나 12일째 행방이 묘연한 마창진을 잡지 못해 공개 수배한다는 소식도 들렸지만, 다행히도 6일 붙잡혔죠.

전과 경력이 있는 감시대상자들이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하는 사건이 최근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3일 직접 고개 숙여 사과한 뒤 대책을 내놨습니다.

①보호관찰소에 신속수사팀을 설치해 외출제한 등 준수사항 위반 시 심야시간대 조사와 주거지 진입, 현행범 체포 등 실시간 수사 ②전자발찌 훼손 사건 발생 시 대상자 주거지 바로 압수수색 ③위험성 큰 성폭력 살인 강도 미성년자 유괴범 등 4대 사범의 위치정보 수신자료 경찰과 상시 공유 등이 주요 내용이었는데요.

그런데도 국민들의 불안은 쉬이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전자발찌범들의 감시장치 훼손 및 도주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고, 그때마다 대책을 내놨지만 이번 강윤성처럼 또다시 시민들이 경악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찾아보니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해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경찰을 살해하고, 또 해외로 도피한 사례도 있었네요. 시행 13년이 된 전자발찌 제도, 해법은 없는 걸까요?


전자발찌, 용산 초등생 성폭행 살해사건 계기로 2008년 시작

2006년 서울 용산 초등생 납치살해 사건을 저지른 부자. 연합뉴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자발찌는 전자감시제도(electronic monitoring system)의 수단입니다. 법이 정한 감시대상 범죄자가 특정한 시간에 특정된 장소에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범죄자의 손목 또는 발목 등에 전자감응장치(전자팔찌 또는 전자발찌라고 부름)를 달아 착용자의 위치를 확인하거나 이동 경로를 탐지함으로써 범죄자를 원격 감시하는 방식이죠.

전자발찌는 2006년 2월 발생한 '용산 초등생 성폭행 살해사건'을 계기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해요. 당시 10세 초등학생 A양이 집 앞 비디오 가게에 테이프를 반납하러 갔다가 실종됐는데, A양은 실종 신고 16시간 만에 경기 포천시의 한 창고 옆 공터에서 목 주변이 흉기에 찔리고 온몸이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되는 잔혹한 사건이 벌어졌죠.

A양을 살해한 범인은 인근 신발 가게 주인 김장호(당시 53세)로 밝혀집니다. 김장호는 A양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목을 졸라 살해하고, 아들 김범진과 함께 시신을 옮겨 불태웠던 겁니다. 김장호는 사건 발생 7개월 전에 4세 어린이를 성추행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였어요.

이 사건으로 인해 성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위치추적제 도입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형을 마친 자에게 전자발찌를 착용하면 가중 처벌이다' '인권침해다' 등의 반대 의견도 없지 않았지만, 다수의 시민들이 제도 시행을 원했죠.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4월 '특정성폭력범죄자에대한위치추적전자장치부착에관한법률(성범죄자 전자발찌법)'이 제정돼 법률적 근거가 마련됐고,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9월 1일부터 전자발찌 제도가 시작됐습니다.


성범죄자 외 살인·강도범에도 전자발찌 적용

전자발찌 주요 위반사항. 법무부

처음 시행될 때 전자발찌 착용 대상은 두 번 이상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거나 13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람이면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만기 전에 가석방되는 사람 등 성범죄자로 제한했습니다. 당시 법무부에 따르면 성폭력 재범률이 13.6%였고, 재범자 가운데 6개월 이내 재범률이 28.1%로 재범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죠.

착용 기간은 최대 10년이었습니다. 당초에는 5년이었지만, 제도 시행 전인 2007년 12월 경기 안양시에서 초등학생 2명을 동시에 납치해 토막 살해한 정성현 사건으로 인해 강화되었고, 제도 시행도 10월 28일에서 2개월 정도 앞당겨졌던 겁니다.

이후 전자발찌 제도는 점점 강화됩니다. 착용 대상은 미성년자유괴범(2009년), 살인범 추가 및 성폭력범 소급적용(2010년), 강도범(2014년) 등으로 확대됐고, 착용기간도 최대 30년(2010년)으로 늘었습니다.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조두순 사건(2008년), 김길태ㆍ김수철 사건(이상 2010년), 김점덕ㆍ고종석 사건(이상 2012년) 등 인면수심의 범죄가 계속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전자발찌 착용자는 제도 시행 첫해 151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7월 기준 4,847명으로 30배 이상 늘었습니다. 다행히 재범 우려가 큰 성폭력 사범이나 강력범에게 채워 온 전자발찌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전자발찌가 도입되기 전인 2004∼2008년 성폭력 사건 중 재범 사건이 14.1%였지만, 지난해 기준 전체 성폭력 사건에서 전자발찌 착용자가 다시 성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1.3%에 불과할 정도로 재범률을 크게 낮춘 것이죠.


전자발찌 재범률 낮췄지만, 훼손사건도 매년 10여 건 발생

서울 오패산터널 총격사건을 보도한 한국일보 2016년 10월 20일자 기사.

문제는 전자발찌를 훼손하는 사례도 증가했다는 겁니다. 2009년 1명에 불과했던 전자발찌 훼손은 2018년 23명, 2019년 21명, 지난해 13명 등 최근에는 매년 두 자릿수를 나타냈습니다.

이번처럼 국민들을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할 정도의 사건도 벌어졌죠. 2016년 10월 19일 서울 강북구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총을 쏴 경찰관 1명을 숨지게 하고, 시민 2명에 부상을 입힌, 성병대 총격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미성년자 성폭행 강간 등 화려한 전과경력을 보유해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는데, 이를 훼손하고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2018년 3월에도 기막힌 일이 벌어집니다. 특수강도강간죄로 징역 12년을 복역한 뒤 2014년 출소하면서 7년 동안 전자발찌를 차라는 명령을 받은 50대 남성이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해외로 도주한 겁니다.

전자발찌를 끊고 해외로 도주한 사례는 이 사건이 처음이었습니다. 전자발찌에서 이상징후(경보)가 감지돼 보호관찰관이 전화를 걸어 경위를 확인했지만, 이 남성이 "대리운전을 했던 손님 차에 추적장치를 놓고 내려 이 장치를 찾으러 가는 중"이라고 둘러댄 변명에 넘어간 것이었죠.

발찌 본체와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휴대장치로 이중 구성돼, 발찌와 추적장치 거리가 5m 이상 떨어지면 경보가 울리는 전자발찌 구조를 악용한 거짓말이었습니다. 통화 후 남성은 김포공항으로 가 일본 오사카행 비행기를 타고 잠적했다가 이후 태국에서 소재가 파악돼 2019년 1월 국내 송환됐습니다.


전자발찌 끊었던 자들, 경찰 총격 살해에 해외 도주도


전자발찌를 끊고 해외로 도주했던 50대가 국내 송환됐다는 소식을 전한 한국일보 2019년 1월 10일자 기사.

재범을 막으려 착용하게 한 전자발찌로 오히려 위협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픈채팅으로 알게 된 미성년자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 전자발찌를 보여 주며 “여자친구를 때려서 찬 것”이라고 공포감을 조성, 성폭행한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 12년을 선고한 게 대표적이네요.

이쯤 되면 아마 "전자발찌가 무엇으로 만들어졌길래 이렇게 쉽게 끊어질까"라고 의문을 가질 겁니다. 사실은 법무부도 지금까지 여러 차례 성능을 개선했다고 합니다. 도입 당시에는 착용자의 피부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연한 '우레탄' 재질로 만들었다가 자주 훼손되니까 강도가 더 높은 '스프링강'으로 용접된 전자발찌로 바꿨고, 스프링강 재질의 전자발찌도 공업용 니퍼로 끊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자 단단한 '강화 스테인리스 판'을 넣어 웬만하면 절단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강윤성이 착용한 전자발찌는 지난해 10월 개선된 2020년형으로, 스트랩 부위를 통판형 스테인리스 판에서 스테인리스 일곱 겹으로 더 두껍게 만들었던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도 이를 절단했던 겁니다.


"전자발찌 부착 기간 길어 경각심 옅어지거나 자포자기"

2018년형과 2020년형 전자발찌. 법무부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없는 걸까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6년 펴낸 '전자감독제도 운영성과 분석 및 효과적인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참고할 만한 대목이 나옵니다.

전자발찌 착용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24시간 감독하는 전자감독 담당 직원들을 설문 조사한 결과 지도?감독 관련 애로사항으로 '부착 기간이 너무 길어서 대상자의 경각심이 옅어지거나 자포자기한다'(78.2%)는 점을 가장 많이 지적했습니다.

이는 '업무시간과 휴식시간이 구분되지 않아 피로가 누적된다'(73.7%), '인력부족으로 관리대상자가 너무 많아 내실 있는 지도?감독에 한계가 있다'(73.4%), '각 보호관찰소에 전자감독 전담부서(특정범죄자관리과)가 없어 병행해야 하는 업무가 많다'(63.2%), '대상자 관리에 소요되는 예산 등 지원이 부족하여 효과적인 지도?감독이 힘들다'(55.2%) 등 자신들의 처우나 복리후생과 관련한 답변보다 더 높았습니다.

보고서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범죄자들의 재범을 막고 사회복귀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전자발찌 대상자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대상자들이 준수사항을 잘 지키고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게 다양한 유인 방안과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10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전자감독제도의 기본 전제는 '전자발찌를 채워놨으니 재범 않겠지'라고 범죄 전력자를 믿는 것"이라며 "범죄자의 악성(惡性)이 교화되지 않는 한 사회로 나오면 범죄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법무부 장관이 의지를 갖고 범죄자들의 교화 갱생 등 교정 업무를 정책의 우선 순위에 놓고 여론이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꾸준히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밀화한 교정시설 확충, 옛날식 교정프로그램 개선 등 교정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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