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할머니의 호랑이 담요 

입력
2021.09.11 04:30
22면

2019년 6월 한국을 방문한 축구선수 폴 포그바가 서울 용산구 아디다스 더베이스 서울에서 열린 '아디다스-폴 포그바 아시아 투어'에서 갓을 선물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6월 한국을 방문한 축구선수 폴 포그바가 서울 용산구 아디다스 더베이스 서울에서 열린 '아디다스-폴 포그바 아시아 투어'에서 갓을 선물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문화이론에 따르면, 처음 타 문화를 만난 사람은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본다고 한다. 온라인 이곳저곳에 ‘신기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외국인의 글이 넘쳐난다. 우선 한국에서는 여름이면 다들 손에 선풍기를 들고, 겨울에는 까맣고 긴 겉옷을 입고 김밥들처럼 걷는다고 이야기한다. 사례 몇몇에 지나지 않지만, 집단주의적 한국 문화를 꽤 잘 알아본 것 같다. 동시에 겨울에도 차가운 음료를 즐기는 사람들,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없어 집에 올 때까지 손에 쓰레기를 들고 다니는 일, 병을 고치러 가는 병원에서 장례식을 하는 것 등 놀라운 이모저모가 소개되어 있다. 여러 특징 중에서도 단연 1위는 ‘빨리빨리 문화’다. 인터넷에서 표를 살 때 한국 사람의 손은 인터넷 속도보다 빠르다고 하고, 한국 생활 중 배달과 택배에 관한 일화 하나쯤은 다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정작 한국인이 잊었던 말들이 존재감을 얻었다. ‘호미, 갓, 호랑이 담요’ 등이 그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시간이 멈춘 듯 한 자리에 오래 있던 약방이 전 세계인의 관광지가 된 형상이다. 갓은 드라마의 이름을 빌려 ‘Kingdom Hat’ 또는 ‘왕조의 모자’라 불린다. 유명한 외국 인터넷 쇼핑몰에는 이 모자를 사서 파티에 한국 전통 의상에 맞춰 쓰고 갔다는 현지인의 후기가 달려 있다. 포대기와 호미는 이름 그대로 ‘Podaegi’, ‘Homi’로 불린다. 영주 호미의 구매자는 ‘잘 팔리는 호미의 대장간 표시를 기억하라’는 후기까지 달아 두었다. 할머니 냄새와 함께 기억되는 호랑이 그림 담요는 ‘Korean Grandma Blanket’, 이름하여 ‘한국 할머니 담요’다. 한때 우리들의 할머니는 이제 전 세계인의 할머니가 되신 것인가? 알록달록한 버선은 ‘요술 버선’, 고기 불판은 ‘KBBQ’로 인기를 끈다. 최근에는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경운기’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이 국제 무대에서 조명을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글이 알려진다. 한글을 보고 한국산임을 짐작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최근 맥도날드가 한글 티셔츠를, 코카콜라가 한글 제품을 출시하였다. 특히 코카콜라에서 ‘오늘도 힘내’, ‘오늘도 사랑해’, ‘두근두근’과 같은 말을 적은 것은 몇 십 년 전 상황과 비교할 때 가히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이제 한국은 오래된 것을 돌아보며 자기 것을 지키는 주체가 되어야 할 때다. 그런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선진국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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