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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에게 실망 남긴 국민청원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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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는 차마 보기 어려운 고양이 학대 사진과 글이 나흘 연속 올라왔다. 동네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잡아와 구타하고 물에 빠트리고, 던지는 등 학대 과정을 '놀이'처럼 중계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이용자들은 학대 사진을 보며 낄낄댔고, 학대를 부추겼다. 학대자는 나흘 만에 "숨을 안 쉬길래 수영놀이로 확인해보니 고양이 별로 가버렸다"라며 비닐봉지에 담긴 고양이 사체 사진을 올렸다. 사건이 알려지며 비난이 폭주하자 학대자는 게시물을 삭제했고, 해당 게시판은 폐쇄됐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대자를 찾아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올라왔고, 25만559명의 동의를 얻어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는 학대 게시물을 올린 사람과 이에 동조한 10여 명의 누리꾼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수사가 시작되자 시민들은 온라인상에서 동물학대 대응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 3일 박영범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의 국민청원 답변 이후 학대자를 검거해 처벌해줄 것을 간절히 바랐던 청원 참여자와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청원 왜 하는 거냐, 25만 명이 적은 숫자냐", "다시 답변해라" 등의 글이 올라왔다. 그도 그럴 것이 7분간의 답변 가운데 해당 커뮤니티에 관련된 내용은 "문제의 갤러리는 폐쇄되었으며, 시·도 경찰청에서 수사 중이다"는 내용뿐이었다. 나머지는 올해 1월 길고양이, 너구리 등을 살해하고 학대 영상과 사진을 공유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고어전문방' 사건의 수사 결과, 지난해 1월 발표한 동물복지 5개년 종합계획에 대한 엉뚱한 설명이었다.
박 차관의 답변이 나온 이후 각 언론사는 "청와대, 디시인사이드 길고양이 학대 관련 엄정 수사·처벌 강화"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카라는 "경찰서로부터 범인을 특정하지 못하고 이미 수사는 중단된 상태임을 확인했다"라며 "개인적으로 경찰에 사건을 신고한 사람도 이미 해당 사건 수사중지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기자가 서울 경찰청에 확인한 결과 일부 관서에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큰 기대를 갖긴 어려워 보였다. 대한수의사회는 "이번 동물학대 사건과는 무관한 동물병원 표준진료제 등 답변 시간의 대부분을 정부 정책 홍보에 할애했다"며 발끈했다.
온라인상의 동물학대 범죄는 날로 지능화하고, 특히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커뮤니티의 경우 용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온라인상의 동물학대는 사람의 쾌락을 위해 동물을 학대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시민들은 교묘해지는 온라인상의 동물학대 범죄를 어떻게 수사할지, 또 어떻게 예방할지에 대한 답을 기대한 것이지 농식품부의 정책홍보를 듣고자 한 건 아니다.
반려인들의 국민청원 답변에 대한 실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8월 청와대는 '개를 가축에서 제외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대해 "정부가 식용견 사육을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측면도 있어 가축에서 개를 제외하도록 축산법 관련 규정 정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절실한 마음으로 국민청원을 올린다. 청원 내용 상당수가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발표도 나왔다. 하지만 내용과 관계없는 형식적인 답변이나, 답변한 이후 지켜지지 않는 사례는 더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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