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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과 평화를 향해, 잊지 않겠다” 뉴욕 테러 현장의 울림 [9·11 테러 20년,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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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오늘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 하늘이었어요. 세계무역센터(WTC)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처치스트리트 사무실에 출근해 있었는데 큰 폭발음이 들려서 나와 봤죠. 불길에, 연기에, 먼지까지… 정신이 없었어요.”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 110층짜리 WTC 북쪽 타워에 여객기가 날아와 부딪혔다. 17분 뒤 다른 여객기 한 대가 WTC 남쪽 타워에 충돌했다. 화염에 휩싸였던 이 건물은 오전 9시 59분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어 30분 뒤에는 다시 북쪽 타워가 붕괴했다. 이렇게 2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뉴욕에서만 2,752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공격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테러 직후 현장을 목격했던 미국 뉴욕 시민 짐 레퍼넬(66)씨는 지난 20년 동안 9ㆍ11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WTC 건물 두 동이 차례로 무너지고 그 후 2주 동안 구조 복구 작업에 참여했던 기억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라며 “9ㆍ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졌는데 20년 만에 전쟁을 서둘러 끝내는 모습을 보며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라고 토로했다.
미국 노동절 연휴 마지막 날인 6일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옛 ‘그라운드 제로’ 9ㆍ11 추모광장은 초가을 햇살이 따가울 정도였다. 이곳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역사상 최대 테러 사건 9ㆍ11의 악몽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침잠해 있었다. 마치 패배한 듯 서둘러 막을 내린 아프간전,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 20년의 허무한 결과와 맞물려 올해 9ㆍ11은 여느 때보다 의미와 상처가 깊다.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추모공원을 찾은 40대 남성 리우씨도 9ㆍ11 그날 맨해튼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뭔가 폭발이 일어나면서 WTC 옆에 있던 우리 사무실 유리창도 모조리 깨졌어요. 거리에 나왔는데 재와 먼지가 발목까지 쌓였죠. 그 길을 헤치고 집에 가서 며칠간 슬픔에 잠겼어요. 나는 살아남아 이렇게 결혼도 했어요. 어린 아이들에게 왜 그런 일이 생겼나, 역사 현장을 보여주고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말하려고 해요.”
추모광장 인근 스타벅스 매장 벽에도 9ㆍ11을 ‘결코 잊지 않겠다(Never Forget)’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테러 현장은 지난 20년 사이 변화가 컸다. 무너진 WTC 쌍둥이 빌딩 자리에는 건물을 다시 세우는 대신 눈물처럼 폭포가 쏟아지는 사각형 인공 연못인 ‘메모리얼 풀(Memorial Pools)’을 만들었다.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진 청동 난간이 두 연못 주위를 두르고 있다. WTC에서 숨진 소방ㆍ경찰 등 구조대원은 물론 워싱턴 국방부 청사 펜타곤 희생자, 테러범과 싸우다 펜실베이니아주(州) 생크스빌에 추락했던 유나이티드 93편 여객기 탑승자, 1993년 WTC 폭탄테러 희생자 6명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또 6개의 고층 빌딩과 함께 교통 허브, 추모박물관도 들어섰다. 연휴를 맞아 추모광장에는 관광객들도 넘쳐났다. 자원봉사자 배니씨는 “슬픈 역사의 현장인데 너무 관광지처럼 보이는 건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다.
또 다른 봉사자 카렌 라즈씨는 희생자 R씨의 이름을 가리키며 “시신에서 이 이름을 확인하는 데 3년이나 걸렸다”라며 "9ㆍ11 상흔 치료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9ㆍ11 희생자 유해 중 신원이 정확히 정리되지 않은 사망자만 1,106명에 달한다.
미국은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9ㆍ11 추모박물관도 만들었다. 추모광장 옆 박물관 입구를 지나 지하로 내려가면 WTC 건물이 무너지기 전부터 있었던 기둥과 초석 등이 눈에 들어온다. 3,000명 가까운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담은 전시실, 테러 발생 직후 구조작업에 투입됐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함께 깔렸던 소방차도 아픈 기억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공간은 박물관 끝에 위치한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 전시물이다. 9ㆍ11 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 수장 빈라덴은 2011년 5월 파키스탄에서 미군에 사살됐다. 테러의 시작과 마무리. 그래서 박물관 마지막 전시물로 빈라덴 사살 작전 ‘넵튠 스피어’ 성공 결과를 내걸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빈라덴의 죽음이 국제 안보와 세계의 사건들에 어떤 의미일지 염려했다.” 빈라덴 사살 작전 성공을 설명하는 전시물의 한 문구다.
미국은 9ㆍ11 직후 탈레반이 빈라덴을 숨기고 있다는 이유로 2001년 10월 아프간을 침공했다. 그리고 10년 뒤 빈라덴 사살 목표를 달성해놓고도 아프간전을 10년 더 끌었다.
결국 이때 전쟁을 끝내지 못한 후과가 지난달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 작전 혼란과 카불 공항 테러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텍사스에서 온 곤잘레스씨는 “2011년 그때 전쟁을 끝내야 했다”라고 말했다.
20년 가깝게 아프간에 머물렀지만 일방적으로 미국식 민주주의와 시스템을 이식하려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는 미국 내 자성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2003년 이후 이라크 전쟁까지 일으키며 미국이 장악하는 듯했던 중동은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해 알 카에다 못지않은 극렬 테러 조직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아프간 철수 작전 종료를 선언하면서 “다른 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군사작전시대는 끝났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핵심 국가안보 이익’은 꼭 챙기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다짐을 볼 때 언제든 같은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9ㆍ11이 남긴 과제는 세계의 안전과 평화다. ‘미국과 세계는 더 안전해졌을까. 세계에는 평화가 찾아왔을까.’ 9ㆍ11 추모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이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제로 미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이 안전해졌느냐는 질문에 ‘더 안전해졌다’라고 답한 비율은 49%에 그쳤다. 이는 10년 전 같은 조사에서 64%가 안전해졌다고 답한 것과 비교하면 미국의 안보 자신감이 하락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9ㆍ11 이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끔찍한 테러의 교훈 속에서 공존과 평화를 향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야 한다는 열망도 느껴졌다. 현장에서 만난 레퍼넬씨는 “9ㆍ11 때 이곳에 비행기가 부딪혔다는 비극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슬픔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우선 모두가 알아야 한다. 또 나라와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서로에게 감사하고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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