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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실패한 '인구문제 해결', 기업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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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 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 단위로 토요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25>피곤해진 정부 실패, ‘인구해결사로 떠오른 기업’
인류 역사는 문제 해결을 통해 진화해왔다. 또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해법으로 해결된다. 복잡한 인구문제도 달라진 해법이 요구된다. 지금처럼 정부·정책·행정에만 맡기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인구문제 해결은 급하기는 1순위다. 국력의 뿌리, 모태변수다운 파급력 탓이다. 성장·재정의 동반 악화와 맞물린 인구 변화야말로 사회불행의 실타래를 풀어낼 강력한 대응과제다. 데드크로스(출생<사망)를 볼 때 사실 타이밍은 놓쳤다. 지금도 늦었다. 만시지탄을 줄이는 수뿐이다. 구태적 경로 거부와 혁신적 발상 전환이 절실하다.
이대로면 곤란하다. 인구문제를 ‘악재→호재’로 뒤바꿀 혁신은 정부에만 맡길 수 없다. 이해관계를 지닌 전원 참여가 절실하다. 유력 대안은 기업의 역할이다. 정부만큼 강력한 에너지와 잠재력을 지닌 기업이 나설 때다. 혁신에 익숙한 기업이 나설수록 인구문제를 풀어낼 확률은 높아진다. 기업은 해결 능력·이해관계·혁신 경험을 두루 갖췄다. 보유 자원·연결 자산이 탄탄해 정부보다 나은 결과 도출이 가능하다. ‘인구 증가=경제 성장’과 ‘인구 감소=사회 쇠락’이 맞는다면 ‘고객 감소=기업 불황’이라 이해해도 된다. 기업가정신의 내재화로 익힌 혁신 경험이면 효율·지속성은 얼마든 기대된다.
바람직한 건 민관협치적 접근이다. 정부·시장이 제각각 특장점을 발휘·협력하면 사회대타협의 강력한 추동엔진이 확보된다. 이때 ‘정부 주도→기업 참여’의 무게 이동은 대전제다. 기업도 인구문제를 경제적 활용기회를 넘어 사회적 지속 토대로 받아들인다. 사회가 흔들리면 사업은 지속되지 않는다.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등 사회성의 강화 요구는 기업의 자선·시혜가 아닌 숙제·책무란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본시장이 ESG(환경·사회·지배 구조)를 기업평가의 유력잣대로 본 것도 그렇다. 인구문제도 똑같다. 기업이 풀어야 할 선순위 사회과제다. 자본·정보의 독점탐욕이 불평등·양극화와 저출산을 낳았다는 혐의는 부인할 수 없다. 고용·소득이 불안한데 가족·출산카드를 택할 MZ세대는 없다.
정부 실패만큼 시장 실패도 인구문제와 닿는다면 기업이 나서야 할 이유는 명확해진다. 인구 대응은 기업의 의무이자 새로운 기회인 까닭이다. 기업은 고용제공만으로 책임을 다했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더는 아니다. 내부·단기중심적 주주당사자(Stockholder)에서 벗어나 외부·장기적 이해관계자(Stakeholder)로의 방향 전환이 요구된다. 경제적 책임 이상의 법적·윤리적·자선적 책임이 강조된다. 지속사회를 훼손하고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인구문제에의 소극적 방치에서 적극적 개입으로 돌아서란 요구다. 사회도 호응한다. 문제기업은 불매·탈퇴로, 애정기업은 돈쭐·독려로 윤리·공정소비에 올라탄다. 현재 이익보다 사회 미래를 챙길 때 위대하고 착한 기업이라는 뉴노멀의 등장이다.
사실 기업은 혼란스럽다. 성장은커녕 생존조차 불확실한 시대에 인구문제 해결까지 압박하는 건 낯설고 어려운 주문이다. 볼멘소리는 많다. 가뜩이나 신경 쓸 게 많은데 인구문제마저 품으란 건 억지 요구란 쪽이다. 그럼에도 넓고 길게 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 추구지만, 이익도 팔려야 나온다. 고객 없는 매출은 없다. 영·유아, 학생 등 저출산발 고객 감소로 직격탄을 맞은 연령산업의 사양경고를 되새길 때다. 구조조정·사업 재편을 해보지만, 근본원인인 출산 증가만큼의 효과는 없다. 지금은 인구변화의 충격이 저출산발 MZ세대에 한정되나, 갈수록 고령화를 포함한 현역 전체의 인구 악재로 번질 수밖에 없다. 정부 역할로 방치·외면하기엔 영향력이 꽤 포괄적이다. 돌고 돌면 시장 전체를 재편할 거대 흐름이다.
기업이 인구해결사로 나서는 건 당연하다. 전략적인 접근이자 두 수 앞을 내다본 현명한 포석일 수 있다. 인구구조의 양적·질적변화야말로 기존의 고객·욕구·소비 양상을 뒤흔드는 대형 변수다. 기업의 전략 수정은 자연스럽다. 즉 생존·성장은 시장·고객에 달렸다. 인구가 있어야 시장이 열리듯 먹고살 수 있다. 기업의 일상 고민이 고객 확보라면 인구문제에 사활을 거는 건 옳고도 바람직하다. 시선은 높게, 보폭은 멀리 가져감으로써 이해관계자로서의 사회 책임과 이익결사체로서의 본능 실현도 가능해진다. 기업 등판은 습관처럼 부르짖는 눈앞의 고객 확보를 실현하고 광의의 수요 증진에 공을 들이는 그랜드비전이다. 명분과 실리를 함께 챙기는 묘수일 수밖에 없다.
기업은 많은 힘을 가졌다. 해결사로서의 필요 자질과 실행 능력을 다 갖췄다. 차라리 정부보다 더 효율적이고 직접적인 파급력을 지닌다. 노동 수요·욕구 실현부터 재정 유지·성장동력의 원동력답다. 사회유지에 필요한 수많은 자원을 생산·연결하는 공급엔진과 같다. 한국처럼 정부복지의 기업위탁형, 즉 기업복지로 성장해온 과거 경험도 중요하다. 정부형(보편복지)과 시장형(선별복지)의 언저리에서 한국형 복지시스템을 실행해왔다. 가령 고도성장기 ‘취업→결혼→출산→승진→은퇴’ 등의 연결 과정에서 필요한 주거·교육·의료·노후의 복지를 기업이 제공했다. ‘젊음’이란 위험자산이 기업복지와 만나 ‘가족 결성’을 안전카드로 만들어줬다. 인구구조는 든든한 보너스가 돼줬다.
더는 아니다. 기업복지는 깨졌다. ‘고용=비용’처럼 복지 붕괴는 현실화됐다. 가족카드는 흔들리고, 출산 포기는 빨라진다. 기업의 변심(?)과 정부의 무능은 인구문제를 더 심각하게 악화시킨다. 최선의 복지는 일자리다. 복지가 풀리면 위험은 줄어든다. 앞날이 보이면 가족 분화·자녀 출산도 수월해진다. 이게 또 기업의 고객 확보로 직결된다. 따라서 ‘고용≠비용=투자’란 개념이 필요하다. 기업복지로 되돌아가진 못해도 그 변용과정은 유효한 수단이다.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인구변화를 포함한 사회문제의 해결 주체로 기업 역할의 재검토는 시대의제가 됐다. 정부도 이만큼 쏟아부었는데 효능이 없다면 과감하게 방향을 바꿀 때다. 실패를 인정하고 잘하는 선수에게 맡기는 게 좋다. 심판이 나선다고 이길 수는 없다. 정부·기업이 얼굴을 맞댈 때 희망은 솟아난다.
인구문제를 위한 대타협과 세밀한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정부는 도화지를 바꾸고, 기업은 물감을 내놓고, 가계는 색칠하는 삼자협력이 권유된다. 시간은 없다. 한국의 인구변화는 전 세계가 지켜본다. 이토록 단시간에 그토록 급변동을 현실화한 사례가 없어서다. 인류역사상 전무후무의 최저기록을 보며 닮지 않으려는 반면교사 차원이다. 피할 수 없다면 먼저 띄우는 수뿐이다. 달라진 운영원칙으로 새로운 한국모델을 선점하는 게 좋다. 정부는 큰형님답게 이해관계·당리당략을 넘어 기업의 인구방책을 유도·응원할 맞춤전략에 나설 때다. 기업은 실효적인 인구해법을 위한 자원 투입·가치 창출을 자사정책으로 제도화할 때다.
일부 기업은 적극적이다. 강압이 아닌 자발적인 접근 사례다. ‘직원 만족=매출 증진’의 수준을 넘어선 실험이다. H사는 아예 다자녀정책을 정식으로 채택했다. 신입직원에게 4명의 출산권고는 물론 3자녀부터는 장려금을 준다. 출산휴가 90일과는 별도로 6개월 육아휴직이 의무다. 자녀 수와 무관하게 대학학자금도 제공한다. 덕분에 출산 장려를 회사 방침으로 정한 기업은 증가세다. 결혼·출산지원은 상식에 가깝다. 난임지원·육아휴직·보육 확충·주거 지원 등 저출산발 생애주기별 지원제도를 강화한다. 인구변화를 낳는 사회이동의 정상화에도 나선다. ‘농촌→도시’로의 인구밀집을 낮추는 차원이다. N사는 농촌지역 초등학교에 도서관을 짓도록 지원한다. 대신 장기간 운영하는 전제조건을 붙인 게 유효했다. 단발지원이 아닌 지속관계를 위해서다. 성과도 나왔다. 학생숫자가 줄자 폐교 위기에 놓였는데, 회사 지원으로 막아냈다. 기업이 소멸지역을 떠받친 사례다.
물론 기업주도형 인구대책은 한계도 적잖다. 유인책이 약하거나 허울뿐인 제도라면 움직이기 어렵다. 실제 양질고용만으로 결혼·출산을 떠받치긴 힘들다. 양립조화가 가족 결성으로 완성되지도 않는다. 낳아 기르라는 신호와 승진하지 않겠다는 모순도 있다. 회사조직의 양면성이 갖는 딜레마다. 그럼에도 폄하 이유는 없다.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편이 훨씬 낫다. 관건은 진정성과 구체성이다. 의지와 능력이 결합될 때 기업 역할은 먹혀든다. 인구 대응도 달라진 시선과 새로운 주체가 필요한 때다. 기업은 둘도 없는 유력한 구원투수다. 만능열쇠는 아니나, 상당부분을 풀 수 있다. 그래야 인구감소발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난다. 기업의 등판으로 우울한 예측도 얼마든 넘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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