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수산업자 금품수수' 박영수 부인했지만 결국 검찰로 송치

입력
2021.09.09 12:00
수정
2021.09.0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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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5개월여 수사 끝에 9일 결과 발표
청탁금지법 위반…대가성 증거는 없어
현직 검사·중견 언론인·앵커 줄줄이 송치
전 포항경찰서장·주호영 의원 처벌 피해

박영수 전 특별검사. 뉴스1

박영수 전 특별검사. 뉴스1

경찰이 '가짜 수산업자' 김모(43)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부장검사 출신 이모 검사 등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전 포항남부경찰서장 배모 총경과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김씨로부터 받은 선물가액이 형사처벌 기준에 미치지 못해 송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9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공여자 김씨를 비롯해 박 전 특검, 이 검사,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엄성섭 TV조선 앵커, 중앙일간지 기자 이모씨, TV조선 기자 정모씨 등 7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피의자들은 그러나 대부분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은 김씨의 사기 사건을 수사하다가, 지난 4월 1일 검찰에 구속송치되기 직전 면담을 요청한 김씨가 이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하면서 사실 확인에 나섰다. 경찰은 이후 김씨를 포함한 8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고, 주 의원에 대해선 입건 전 조사를 진행했다.

김씨는 그러나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돌연 조사에 불응했다. 경찰은 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5월 24일과 8월 24일 각기 이틀에 걸쳐 조사했다. 두 차례의 옥중 조사에서도 김씨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박영수 전 특검, 현직 검사 송치…뇌물죄는 피해

지난해 10월 31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 등이 핼러윈데이 회동을 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씨 회사 직원, B부장검사, 김씨, 사립대 교수, 사립대 전 이사장 A씨, 사립대 교수. SNS 캡처

지난해 10월 31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 등이 핼러윈데이 회동을 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씨 회사 직원, B부장검사, 김씨, 사립대 교수, 사립대 전 이사장 A씨, 사립대 교수. SNS 캡처

박 전 특검은 김씨로부터 포르쉐 파나메라4 차량을 일주일간 무상 대여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본보 보도를 통해 의혹이 불거지자 박 전 특검은 '특검은 공직자가 아니어서 청탁금지법 대상이 아니다' '대여 3개월 뒤 렌트비를 지급했다'고 반박했지만 경찰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박 전 특검이 공직자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회신, 차량 출입기록, 렌트비를 지체 없이 반환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했다"고 밝혔다.

현직 검사로서는 처음으로 경찰에 압수수색을 당한 이 검사는 김씨에게 명품지갑, 자녀학원 수강료, 수산물 등을 받고 외제차를 무상으로 빌린 것으로 조사됐다. 당초 고가의 IWC 시계를 받았다는 의혹도 있었으나, 증거 부족으로 혐의에선 제외됐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첫 조사에선 시계를 언급했으나, 이후 진술을 거부했다"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 등 모든 것을 확인했음에도 (시계를) 전달했다는 부분에 증거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김씨가 박 전 특검과 이 검사가 받은 선물에 대가성이 없다고 판단해, 뇌물죄를 적용하지는 않았다. 경찰은 김씨가 서울의 유명 사립대 이사장 관련 사건을 무마하는 데 개입했고, 이 과정에서 박 전 특검과 이 검사가 연루됐다는 의혹도 살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주고 받은 메시지, 만난 시기, 사건 처리 절차 등을 살펴봤지만 대가성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해당 이사장 사건과 이번 가짜 수산업자 사건의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끄러운 언론인…거짓말 들통도

가짜 수산업자에게 금품을 받은 의혹으로 입건된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7월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서 조사를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가짜 수산업자에게 금품을 받은 의혹으로 입건된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7월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서 조사를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이동훈 전 논설위원은 김씨로부터 고가의 캘러웨이 골프채와 수산물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논설위원은 의혹이 불거진 뒤 "아이언만 빌려 보관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경찰은 김씨 회사 직원이 골프채 풀세트를 구매한 판매처에 남아있던 상품 코드와 압수한 이 전 위원 골프채의 일련번호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성접대 의혹을 받아온 엄 앵커에 대해선 차량 관련 계약서와 접대비 입금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 무상 대여와 풀빌라 접대 혐의만 인정됐다. 성매매 의혹과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실제 성행위가 이뤄졌는지 여부에 대해선 당사자들이 부인하고 증거가 없기 때문에 별도로 입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앙일간지 기자 이씨는 수입 차량을 무상 대여 받았고, TV조선 기자 정씨는 서울 사립대학원 등록금 일부를 김씨 측으로부터 대납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처벌 피한 주호영·현직 총경…대가성은 입증 못 해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올해 2월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를 통해 보낸 대게 선물을 받은 스님이 머물렀던 경북 소재 한 사찰의 선원 전경. 경북=이유지 기자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올해 2월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를 통해 보낸 대게 선물을 받은 스님이 머물렀던 경북 소재 한 사찰의 선원 전경. 경북=이유지 기자

경찰은 김씨로부터 명품 벨트와 수산물 등을 수수한 배 총경에 대해선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지만 불송치했고, 수산물과 한우 세트 등을 받은 주 의원에 대해서는 불입건하기로 했다. 현행법상 공직자 등 직무에 관계 없이 같은 사람으로부터 1회 100만 원,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경찰은 이들이 받은 금품 가액이 이 같은 기준에 미치지 않는 것으로 봤다. 경찰 관계자는 "배 총경의 경우 과태료 대상에 해당된다고 판단, 감찰에 통보해 절차대로 처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차량 무상대여 의혹이 불거진 김무성 전 국회의원과 관련해선 참고인을 부르는 등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실관계 확인 등 입건 전 조사를 계속해 입건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향후 대상을 불문하고 추가 단서가 포착되면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4월 김씨의 폭로 이후 경찰은 5개월여간 집중적으로 인력을 투입해 수사를 벌였다. 경찰 수사에서 김씨가 전방위적으로 금품을 살포한 정황은 확인됐으나, 정작 뇌물 관련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는 발견하지 못해 결국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만 적용됐다. 이와 관련해 경찰 안팎에선 "수사가 제기된 의혹을 확인하는 선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유지 기자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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