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이 미국에 남긴 과제도 수두룩 [9·11 테러 20년, 그 후]

입력
2021.09.11 04:30
'무분별 감청' 등 인권침해 논란 20년째?
랜섬웨어 등 사이버 테러에도 대응해야
대통령 '무력 사용 결정' 권한 남용도 문제
탈레반 재집권에 美 도덕적 리더십 타격

2002년 11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테러 대응 주무부처로 국토안보부를 신설하는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앉은 책상에는 '조국을 지킨다(Protecting The Homeland)'라는 글귀가 달려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9·11 테러가 발생한 지 어느덧 20년이 지났어도 세계의 테러 위험도는 그대로다. 아니, 어쩌면 더 높아졌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미국은 더 많은 파생 과제를 떠안게 됐다.

20년 동안 가장 꾸준히 제기된 논란은 평범한 시민들의 인권 침해다. ‘테러 대응’이라는 명분하에 미 연방정부의 정보수집 권한이 너무 강해진 탓이다. 앨런 버틀러 미국 전자개인정보센터 이사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9·11 이후 데이터 분석이 크게 확대됐다”고 짚었는데, 그 중심에는 2001년 10월 제정된 애국자법(Patriot Act)이 있다. 국민의 통신 기록을 아무 제한 없이 열람할 수 있게 하고, 자국민뿐 아니라 외국인에 대한 도·감청마저 영장 없이 가능토록 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비판에 2015년 애국자법은 폐지됐다. 그 공백은 정부 권한을 축소한 자유법(Freedom Act)이 채웠다. 그러나 미국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무소불위 권력을 쥔 정부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게 외신들의 진단이다. 뉴욕타임스는 “경찰이 자동차 번호판 판독기나 안면인식 소프트웨어, 시위대 감시용 드론 등 대테러 장비를 시민들한테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리츠 움백 존제이 형사사법대 역사학 교수는 “테러 방지 목적으로 정부가 개발한 감시 기술이 치안 유지를 위해 재사용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5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벤슨의 한 주유소에서 여성 운전자가 휘발유를 사재기하고 있다. 당시 송유관 업체 콜로니얼파이프라인이 랜섬웨어 공격을 받아 멈춰 서면서 제기된 '공급 부족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 준 장면이다. 벤슨=AFP 연합뉴스

사이버 테러 대응도 만만치 않은 과제로 떠올랐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20년 전 테러는 비행기로 건물을 들이받거나 자살폭탄을 터뜨리는 것이었지만, 지금 미국이 당면한 테러 위협은 해킹”이라고 단언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2006년까지 전 세계에서 벌어진 사이버 테러는 5건에 그친 반면, 올해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총 95건에 달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특히 미국을 타깃으로 삼은 랜섬웨어 공격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5월 사이버 공격을 당한 미 최대 송유관 업체 콜로니얼파이프라인은 동부와 남부 지역에 휘발유를 공급하지 못했다. 한 달 후에는 세계 최대 정육업체 JBS에 대한 랜섬웨어 공격으로 육류 공급이 줄고 가격도 상승했다.

안보 영역에서 대통령 권한이 비대해진 것도 문제다. 9·11 직후 ‘무력사용권한(AUMF)’을 부여받은 미 대통령은 테러 연루자에 대해 의회 승인 없이도 군사력 발동을 명령할 수 있게 됐다. “의회의 대통령 견제 기능이 약화됐다”(브루킹스연구소)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 귀결은 대통령 권한의 남용이었다.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의회와의 상의 없이 리비아 공습을 지시했다. 2020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사살 명령을 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모두 AUMF를 근거로 삼았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도 종말을 고했다. ‘세계의 리더’를 자처하던 미국이 자국 비용 부담을 이유로 아프간 철군을 결정하고,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아프간전도 허무하게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스티븐 베르트하이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미국은 더 이상 세계에서 대체불가능한 국가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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