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정약용이 지금 대통령이었다면

입력
2021.09.13 00:00
26면

편집자주

21세기 당파싸움에 휘말린 작금의 대한민국을 200년 전의 큰어른, 다산의 눈으로 새로이 조명하여 해법을 제시한다.


다산의 눈에 비친 21세기는 '소프트파워'일 것
세계 20위 기업 중 19개가 IT기업 현실
풍부한 상상력으로 미래 이끌 정치인 기대


초대형 IT 기업 아마존(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애플, 구글, 페이스북의 로고. 연합뉴스

초대형 IT 기업 아마존(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애플, 구글, 페이스북의 로고. 연합뉴스

정조대왕이 48세에 급서하면서 다산은 전남 강진으로 유배됐고, 그의 개혁도 좌절됐다. 그는 18년 유배생활의 막바지에 저술한 '경세유표'에 아래와 같은 서문을 실었고 조선은 결국 100년 후에 사라졌다.

"…생각해보건대 터럭 한 끝에 이르기까지 병들지 않은 것이 없으니 지금에 와서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하고야 말 것이다…"<'경세유표' 서문>

203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경제규모로는 기적적으로 세계 10위권에 안착했으나 정치를 필두로 교육, 문화, 금융 등 그 밖의 영역에서는 아직도 OECD 회원국 중 바닥권을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원료를 제품으로 만드는 '하드파워' 경제에서는 그나마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제도를 중심으로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소프트파워' 면에서는 여전히 따라가기 급급한 실정이다. 200년 전의 큰어른이었던 실학자 다산의 눈으로 21세기를 다시 살펴본다면 '경세유표 2021'의 서문을 어떻게 전개했을까 한번 상상해 본다.

시속 10㎞로 달리는 마부는 10m 앞만 주시해도 되지만, 시속 100㎞로 질주하는 운전자는 100m 주변을 두루 살펴야 한다. '데이터 대항해' 시대를 맞아, 세상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데 정치라는 운전자는 오직 10m 앞의 좌우만 보고 갈 뿐이다. 가까운 곳을 눈으로 읽는 것이 하드파워라면 멀리 있는 것도 마음으로 읽어내는 힘이 소프트파워다. 당부하나니 소프트파워가 강한 나라로 거듭나라. 데이터 대항해 시대의 패권자가 되려거든. <'경세유표 2021' 서문>

다산의 눈에 비친 21세기의 놀라움은 자동차, 비행기, 냉장고가 아니라 정작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으나 더 중요한 또 하나의 디지털 세상일 것이다. 온 백성을 하나로 엮어내어 실시간으로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휴머니즘이 정조와 다산의 지향점이었기 때문이다. 당대의 파당들은 왕권을 압도하는 기세였기에 정조는 탕평을 외치며 아버지 사도세자의 관에 침을 뱉은 자들과 함께 나라를 꾸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이었다. 다산은 태어난 지 14년 후에 있었던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의 휴머니즘에 입각한 3권 분립을 알게 되었고, 영국의 산업혁명의 추이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작금의 과학기술에 대해서는 놀라는 대신 대견스러워할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보이지 않으나 엄연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지구, 사이버 세상의 힘이야말로 실학자 다산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발로 딛고 있는 지구에서 유례없는 단기간에 경제기적을 일구었다. 불과 50년 만에 0.07%의 지구면적에서 0.7%의 인구로 전 세계 GDP의 2%를 만들어 세계 10위권 경제를 달성한 저력을 보여준 것이다.

반면, 세상은 또 하나의 지구에서 새로운 경제전쟁을 시작하며 빛의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세계 20대 기업 중에서 존슨앤드존슨 하나를 제외하고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19개 기업은 보이지 않는 사이버 세상에서 상상을 혁신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경제라는 자동차는 빛의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정치라는 운전자는 지평선 너머의 보이지 않는 곳조차도 투시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5년마다 반복되는 리더십의 시기가 왔다. 그간의 리더십이 백미러에 의존하는 저속 차량의 하드파워 리더십이었다면 이제는 가시거리 너머까지도 미리 가보는 풍부한 상상력의 소프트파워 리더십이 필요한 순간에 와 있다.

사막 위에 창업국가를 건설한 이스라엘의 국부, 시몬 페레스 대통령이 남긴 말을 되새겨 보자. "기억은 과거로의 여행, 상상은 안 가 본 미래로의 여행이다. 기억하지 말고 상상하라." 21세기로 모셔온, 가칭 '대통령 정약용'의 메시지로 삼아봄직 하다.

윤종록 한양대 특훈교수
대체텍스트
윤종록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