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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검찰에 대한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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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예상대로였다. 푸짐하단 소문이라도 있었던 잔치는커녕, 시끄럽고 요란하기만 했던 텅 빈 수레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6일 열렸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 현안질의 얘기다.
“심각한 국기문란 사건”이라는 여당 의원들 공세가 마냥 빈말은 아니듯, 이번 의혹은 분명 정국을 흔들 만큼의 파급력을 지닌 ‘중대 사건’이다. ‘알려진 바가 그대로 사실’이라는 전제가 있어야겠지만,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측근 현직 검사를 통해 야당에 여당인사를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내용, 검찰총장이 정말 검찰이란 조직을 사유화했다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검찰총장이 바로 현재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 아닌가.
하지만 인터넷매체인 뉴스버스의 의혹 제기로 김오수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감찰부에 진상조사를 지시한 게 지난 2일이었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현재, 엇갈리는 관계자들의 진술과 구멍투성이의 의혹만 확대재생산될 뿐, 사실관계는 뭐 하나 굳어진 것이 없다. 법사위 회의에서 “진상 파악이 안 된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겐 질의할 필요가 없다”는 야당의 ‘장관 패싱’이나 “현안 질의인데 질문 한 번 안 한다”는 박 장관의 항의가 촌극인 동시에 당연해 보인 광경이기도 했다.
기실 의혹을 다루는 정치판이란 게 그렇고 그런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의혹이 언론 등에서 제기되면 일단은 목소리부터 높이고 보자는 일종의 ‘정치적 쇼’를 너무 많이 봐왔지 않은가.
윤 전 총장의 ‘친정’인 검찰을 주로 취재하는 탓인지, 윤 전 총장에 대한 질문을 해오는 이들이 많다. “대통령감은 되느냐”는 기본 세평부터, “저대로 대선이나 완주하겠느냐” 또는 “대통령이 진짜 될 것 같으냐”는 등 감당하기 힘든 질문까지, 종류도 참 다양하다.
그럴 때면 “위기를 돌파해나가는 능력은 탁월하지 않겠느냐”는 윤 전 총장 주변인들 얘기를 대신 답으로 내놓는다. 남보다 한참은 뒤늦은 나이에 시작해야 했던 검사 생활, 굵직굵직한 수사를 해나가면서 맞이했을 고난의 순간들, 오랜 좌천 생활 등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익혔을 유연함과 임기응변은 분명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그가 이번에 별다른 머뭇거림 없이 “정치공작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호통에 가까운 대응으로 정면 돌파에 나선 건 그래서 흥미롭다.
어쨌든 의혹의 결판은 검찰의 몫이 됐다. 여당의 요란함을 보자니, ‘사법정의를 망가뜨리는 근본 원인’이자 ‘적폐’ 취급을 해 왔던 검찰의 손을 빌리지 않고선 완강한 윤 전 총장의 벽을 뚫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검찰을 눈엣가시처럼 여기지만, ‘도로 검찰’은 역시나 그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씁쓸함만 커질 뿐이다.
당장 박범계 장관은 “유의미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진상조사로 세월을 그냥 보내기는 어렵다”고 수사 착수의 운을 떼고 있다. 고발장 전달자로 지목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비상식적인 해명으로 수사를 부추기고 있다. 최종 수사 주체가 누가 될지를 두고는 공수처 등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면 떠들썩하게 변죽만 울리지 말고, 조금만 차분히 지켜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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