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차기 정권 ‘줄 대기’ 파문에 휘말렸다. 대선 국면에서 고위공직자로서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의심을 살 만한 처신을 했기 때문이다. 8일 알려진 데 따르면 박 차관은 산업부 내부 메신저를 통해 “대선 캠프가 완성된 후면 늦으니, 후보가 확정되기 전에 우리 의견을 많이 넣어야 한다”며 “정치인 입장에서 ‘할 만하네’라고 받아 줄 만하게 제목과 메시지를 다듬은 정책 어젠다를 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국민의힘은 즉각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박 차관이 직원들에게 대선주자가 받아줄 공약을 내라고 지시했다”며 “관가가 벌써 ‘환승 준비’에 몰두하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대변인 입장을 냈다. 박 차관의 지시가 특정 후보를 위한 게 아니고 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를 높이려는 시도라고 해도, 발상과 방식이 매우 잘못됐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즉각 “재발 시 엄중 문책하겠다”며 질책한 배경이기도 하다.
사태의 발단은 최근 열린 산업부 내부의 ‘미래정책 어젠다회의(가칭)’에서 비롯됐다. 내년도 중점 추진 정책과제들을 정리하기 위한 회의였다. 각 부서별로 제출한 어젠다들이 인상적이지 못했던지 박 차관이 보완 지시를 한 정황이 짙다. 정부 부처로서는 정책 순항을 위해 정치권과 수시로 소통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권과의 소통은 통상업무로 볼 수 있으며, 실제로 그게 각 부처 기획조정실의 주요 업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박 차관이 ‘대선 캠프’를 직접 거론하거나, “대선 후보에게 의견을 넣어야 한다”는 말을 한 건 대충 넘길 수 없는 큰 문제다. 적어도 대선을 맞아 정부의 정책논리를 정치권에 ‘주입’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박 차관의 행태는 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각 부처 정책이 청와대와 여당에 휘둘린 데 따른 일탈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정부 기강을 다잡는 차원의 징계가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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